한봉근, 한봉인 집
사적지 개요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한봉인(1898-1968)은 경남 밀양 사람으로, 한봉근의 남동생이다. 그 또한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 11월 길림성(吉林省) 호림(虎林)에서 의열단(義烈團)에 참여함으로써 무력투쟁을 통한 조국 독립을 결의하였다.1920년 12월, 국내에 입국하여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면서 동지인 김원석(김상윤) 등과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에 관여하였다. 1925년에는 의열단의 군자금 모집의 밀양 지역 담당으로 활약하면서, 동지 이종암과 함께 모종의 거사를 위해 반입하려던 무기와 폭탄과 관련하여 일경에게 붙잡혔다. 1926년 12월, 징역 8개월 형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탐방로그
밀양시 가곡동에는 의열단과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한봉근, 한봉인 선생 형제 외에
한봉삼, 이병철 애국지사의 탄생지이지만 관련 안내판 존재하지 않았다.
인물정보
- 성명
- 곽재기
- 한자명
- 郭在驥
- 운동계열
- 의열투쟁
- 생몰년도
- 1893 ~ 1952
- 본적
- 충청북도 청주
- 포상훈격
- 독립장
- 포상년도
- 1963
공적개요
곽재기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김구
- 한자명
- 金九
- 운동계열
- 임시정부
- 생몰년도
- 1876 ~ 1949
- 본적
- 황해도 벽성
- 포상훈격
- 대한민국장
- 포상년도
- 1962
공적개요
김구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김상윤
- 한자명
- 金相潤
- 운동계열
- 의열투쟁
- 생몰년도
- 1897 ~ 1927
- 본적
- 경상남도 밀양
- 포상훈격
- 애족장
- 포상년도
- 1990
공적개요
김상윤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김창숙
- 한자명
- 金昌淑
- 운동계열
- 임시정부
- 생몰년도
- 1879 ~ 1962
- 본적
- 경상북도 성주
- 포상훈격
- 대한민국장
- 포상년도
- 1962
공적개요
김창숙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나석주
- 한자명
- 羅錫疇
- 운동계열
- 의열투쟁
- 생몰년도
- 1892 ~ 1926
- 본적
- 황해도 재령
- 포상훈격
- 대통령장
- 포상년도
- 1962
공적개요
나석주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신철휴
- 한자명
- 申喆休
- 운동계열
- 의열투쟁
- 생몰년도
- 1898 ~ 1980
- 본적
- 경상북도 고령
- 포상훈격
- 애국장
- 포상년도
- 1990
공적개요
신철휴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유석현
- 한자명
- 劉錫鉉
- 운동계열
- 중국방면
- 생몰년도
- 1900 ~ 미상
- 본적
- 충청북도 충주
- 포상훈격
- 독립장
- 포상년도
- 1977
공적개요
유석현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이성우
- 한자명
- 李誠宇
- 운동계열
- 의열투쟁
- 생몰년도
- 1900 ~ 미상
- 본적
- 함경북도 경원
- 포상훈격
- 독립장
- 포상년도
- 1968
공적개요
이성우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이종암
- 한자명
- 李鍾巖
- 운동계열
- 중국방면
- 생몰년도
- 1896 ~ 1930
- 본적
- 경상북도 대구
- 포상훈격
- 독립장
- 포상년도
- 1962
공적개요
이종암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이현준
- 한자명
- 李賢俊
- 운동계열
- 중국방면
- 생몰년도
- 1902 ~ 미상
- 본적
- 경상북도 달성
- 포상훈격
- 애국장
- 포상년도
- 1995
공적개요
이현준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이화익
- 한자명
- 李化翼
- 운동계열
- 중국방면
- 생몰년도
- 1900 ~ 1978
- 본적
- 황해도 장연
- 포상훈격
- 독립장
- 포상년도
- 1963
공적개요
이화익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한봉근
- 한자명
- 韓鳳根
- 운동계열
- 중국방면
- 생몰년도
- 1894 ~ 1927
- 본적
- 경상남도 밀양
- 포상훈격
- 독립장
- 포상년도
- 1980
공적개요
한봉근의 발자취
인물정보
- 성명
- 한봉인
- 한자명
- 韓鳳仁
- 운동계열
- 중국방면
- 생몰년도
- 1898 ~ 1968
- 본적
- 경상남도 밀양
- 포상훈격
- 애국장
- 포상년도
- 1990
공적개요
한봉인의 발자취
3.1운동
사건설명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일본 도쿄의 2.8 독립선언, 고종의 인산일 등을 계기로 계획되어, 마침내 3월 1일 서울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에 의한 독립선언서 낭독과 더불어 탑골공원에서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시위행진을 벌이며 거행되었다. 이날의 거사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만주, 북미 등 해외 등지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세계에 우리 민족의 실상을 알림과 동시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자주 독립사상 고취 등의 의의를 거두었으나, 동시에 일제가 민족 분열을 위해 무단통치 방법을 문화통치로 바꾸는 원인이 되었다.
애국계몽운동
사건설명
이와 같은 애국계몽단체의 활동으로는 <제국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신문과 <대한자강회월보>, <대한협회회보> 등 기관지 또는 학회지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이 있다. 또한 보광학교, 한남학교 등 학교 설립과 <보통교과동국역사>, <동국사략>, <대동역사략> 등 교과서 편찬을 통한 교육계몽운동, 그리고 국채보상운동 등의 경제구국운동 등을 펼치며 국력을 키우고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한국 광복군
사건설명
한말 의병운동
사건설명
1895~1896년의 을미의병은 조선 말기 최초의 대규모 항일의병으로, 을미사변 후 왕후폐위조칙 발표, 단발령 시행을 계기로 일어났다.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여 대개 그 지방의 유명한 유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대표적으로 유인석, 이필희, 서상렬을 비롯하여 춘천의 이소응, 이천과 여수의 박준영과 김하락, 강릉 여주의 민용호 등이 활약하였다.
1905~1906년의 을사의병은 러일전쟁 발발, 한일의정서 체결 등으로 고조된 항일의식이 1905년 을사늑약 강제 체결을 계기로 폭발한 구국항일의병이다.
대표적으로 최익현 의병진, 신돌석 의병진과 더불어 민종식과 안병찬 등이 주축이 된 홍주의병, 그리고 정환직, 정용기 부자의 산남의진 등이 있다.
1907~1910년의 정미의병은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7조약 체결, 대한제국군대 강제해산 등을 계기로 발생하였다. 특히 1907년 8월 강제로 해산된 군인들의 대일항전에서 비롯되었고, 1906년 후반으로 접어들며 기세가 누그러졌던 을사의병이 이를 계기로 하여 거국적으로 확대 및 발전하였다. 원주진위대 해산군인 민긍호와 박준성, 경상북도의 이강년과 신돌석, 경기도의 허위와 연기우, 장성의 기삼연, 함평의 김태원과 심남일, 무주의 문태수, 임실의 이석용 등이 활약하였다.
의열단/의열투쟁
사건설명
의열단은 의열투쟁을 전개한 대표적인 단체이다.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된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로, 김원봉, 윤세주, 황상규 등이 활동하였다. 1919년의 거족적인 3.1운동을 겪은 뒤, 해외로 독립운동기지를 옮긴 애국지사들은 강력한 일제의 무력에 대항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보다 조직적이고 강력한 독립운동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계기로 1919년 11월 의열단이 조직되어 1920년대에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조국 독립을 위해 과격한 적극 투쟁과 희생정신을 강조하였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조선총독부 투탄의거, 종로경찰서 폭탄누척의거 등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건설명
학생독립운동
사건설명
구한말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국권 수호를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섰으며, 농촌계몽 및 야학 등의 활동으로 국민의 자주 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 2월 8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그 영향을 받은 3.1운동 또한 유관순, 어윤희 등 학생들을 주체 세력으로 전개되었다. 1926년에는 학생 중심의 6.10만세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전문학교 학생 이병립, 이병호, 이천진, 박두종 등과 중앙고보와 중동학교 학생 박용규, 곽대형, 김재문 등의 학생들이 주도하여 전개되었다. 1929년 10월에는 나주역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박기옥, 이금자, 이광춘 등을 희롱하는 사건을 계기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났고, 이것이 확산되어 대구, 부산 등 주변 지역에서도 학생항일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밖에도 부산의 노다이사건, 대구사범학교 왜관사건 등 학생들이 주도하여 일어난 여러 항일운동으로 하여금 학생들의 조선독립정신은 지속되어 왔다.
동학농민혁명
사건설명
국내 항일 운동
사건설명
해외 항일 운동
사건설명
독립지사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항일의식교육을 펼치고 독립군 양성을 도모하였다. 또한 프랑스의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고 유럽 등지에 우리 민족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는 등, 여러 방면에서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기타
사건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