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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홍주의병 주둔지(홍주아문)
홍주의진(洪州義陣)은 1895년 및 1906년 충청남도 홍주군 일대에서 결성된 반일 의병부대이다. 두 차례에 걸쳐 결성된 의병부대로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에 전국적인 항일 의병운동을 선도해 간 대규모 무장투쟁이다. 의병장 김복한(金福漢)과 민종식(閔宗植)은 의진(義陣)을 결성함과 동시에 각국 공사(公使)에게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여 대내외에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독립전쟁의 성격을 공표하였다. 홍주의진의 활동은 1910년 국권 상실 이후 독립전쟁으로 계승되어 1910년대 국내외의 독립전쟁과 3 · 1운동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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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기념관
유관순(1902 - 1920)은 일제강점기 아우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에 태어나 1920년에 사망했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1916년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했다. 을사늑약 이후 조국독립을 위한 기도회와 시국토론회·강연회 등에 적극 참여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 소식을 전한 후 4월 1일 병천시장에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검거되어 투옥 중에도 옥중만세운동을 벌였고,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1947년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으며, 1951년 순국의열사 심사위원회에서 순국의열사로 선정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201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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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비석거리(함덕리)
김재동(1910~1932)은 1931년 1월 고향인 북제주군 신좌면 함덕리에서 일본 동경에 유학 중 사망하여 유해가 운구되어 온 향리 출신 독립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의 장례를 김두성(金斗性) 등과 함께 동지장으로 치르면서, 「그대는 죽었지만 그대의 주의 정신은 동지인 우리들에게 계승되어 분투할 것이니 고이고이 진좌하라」라고 쓴 조기 40여 개를 만들어 사용하고 혁명가를 고창하였다. 이와 아울러 추모비를 만들어 동리 공동 샘터 부근에 세웠는데, 그 앞면에는 「동지적광(同志赤光) 한영섭」, 뒷면에는 「차디찬 백색 밑에 눌리인 무리들아 고함쳐 싸우다 피뿌린 동지였다」라는 문구를 새겼다. 이에 일경이 비석의 문구가 불온하여 안녕질서를 방해하였다는 이유로 비석을 뽑아 내어 압류하고 그와 5명의 동지는 붙잡혔다. 그 후 1931년 8월 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공소하여 대구형무소에서 재판 대기 중 옥사(獄死) 순국하였다. 대구복심법원의 이른바 공소기각 결정문은 그의 사망일자를 1932년 3월 14일로 기록하였으나, 다른 동지 5명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이미 1931년 12월 8일에 있었고 그 판결문에는 그의 이름도 관련사실도 적기되어 있지 않다. 이로써 보면, 그의 실제 사망 일자는 1931년 8월 5일 이후 12월 8일 이전의 어느 날인데 일제 법원이 그의 옥중 사망 사실을 은폐하려다 뒤늦게야 공표한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부생종(1909~1936)은 1931년 1월 제주도에서 김일준(金日準)과 함께 죽은 애국자를 애도하는 기념비를 건립하려다가 비문에 독립사상이 있다하여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1933년 2월에 김일준과 함께 항일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향동회(鄕同會)와 민풍진흥회(民風振興會)를 조직하여 입회하고 농민조합(農民組合)을 조직하여 애국동지 포섭에 활동하였다. 1934년 3월에 김원근(金元根)의 집에서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여 국문과 민족역사를 가르치며 구국운동을 전개하다가 1934년 8월에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잔혹한 고문을 받고 1936년 6월 29일 목포형무소에 옥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일준(1911~1960)은 일본 동경에 유학하여 동향인 한영섭(韓永燮)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의 감시에 쫓겨 귀국한 다음 청소년과 문맹자를 모아 교육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동경에서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한영섭의 병사(病死)를 추모하고 그의 애국혼을 기리기 위하여 향리에 추모비를 세워 그 비문에 「차디찬 흰빛 밑에 눌리인 무리들아 고함쳐 싸우라고 피뿌린 동지였다」라고 썼다가 독립사상을 가졌다고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31년 12월 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출옥 후에 향리에서 다시 사학(私學)을 열어 주민들을 교육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했으며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유사시에 봉기하기 위한 준비를 하다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함경북도 나진(羅津)으로 피신했으나 그곳에서 붙잡혀 압송된 후 1937년 4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다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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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홍주의병 주둔지(조양문, 홍주읍성)
홍주의진(洪州義陣)은 1895년 및 1906년 충청남도 홍주군 일대에서 결성된 반일 의병부대이다. 두 차례에 걸쳐 결성된 의병부대로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에 전국적인 항일 의병운동을 선도해 간 대규모 무장투쟁이다. 의병장 김복한(金福漢)과 민종식(閔宗植)은 의진(義陣)을 결성함과 동시에 각국 공사(公使)에게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여 대내외에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독립전쟁의 성격을 공표하였다. 홍주의진의 활동은 1910년 국권 상실 이후 독립전쟁으로 계승되어 1910년대 국내외의 독립전쟁과 3 · 1운동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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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병항쟁기념탑
2010년 5월 강릉시가 지역 항일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민족정기를 살리기 위해『강릉항일기념공원』을 조성하였으며, 한말 을미·정미의병 당시 치열했던 항일 투쟁사 속의 구국정신과 그분들의 혼을 기리고 후세에 선열들의 얼을 계승하기 위해 「강릉의병항쟁기념탑」을 건립했다. 강릉의병은 을미의병 시기에는 민용호 의병장의 관동구군도창의소를 중심으로 항쟁을 펼쳤고, 정미의병 시기에는 원주진위대의 장교였던 민긍호 의병장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항전을 이어갔다. 공원 내에는 기념탑을 비롯하여 강릉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한 민용호, 민긍호, 권인규, 권종해, 권기수, 권익현 등 의병장 6명의 흉상이 건립되어 있으며, 흉상과 함께 어록, 항일 의병 참여자 120명의 명단, 의병항쟁약사가 새겨진 조형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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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돈호 기공비
최돈호(1870 - 미상)는 강원도 정선 사람으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강원도 강릉군 구정면에서 부하 150여 명을 인솔하고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다. 1907년 11월 28일에는 민긍호·한갑복 등 약 6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강릉에서 일군경과 교전하면서 정선·평창 등지에서 세력을 펴다가 전사 순국하였다.「강릉 최돈호 기공비(江陵 崔燉浩 記功碑)」는, 1936년 12월 12일 박월리 마을의 발전에 기여한 공을 기리기 위해 마을 주민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비의 규모는 높이 110cm, 폭 44cm, 두께 15cm 규모이다. 정부에서는 최돈호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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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재 묘
최선재(1895 - 1953)는 강원도 강릉(江陵) 사람으로, 1919년 4월 2일 강릉에서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 후 100여 매의 태극기를 창호지와 곶감 꼬지로 만들어 장터에 모인 시위군중에게 배포하면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같은 해 4월 14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본 공적비는 2009년 7월 12일 국가보훈처 및 광복회 강원도지부와 강릉항일운동 얼 선양회의 후원을 받아 세웠다. 1992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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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3.1독립만세운동 기념탑
강릉 3·1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일 읍내에서 시작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었고, 이후 5월까지 연 인원 1만 명이 독립을 열망하며 만세운동을 계속 전개했다. 강릉보통학교와 강릉청년회 강릉감리교회 등 비밀결사조직이 상호 연계해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펼쳐졌다. 100년 전 항일운동의 선봉에 섰던 선열들과 강릉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항일운동을 기리기 위해 3·1독립만세운동 80주년을 맞아 1999년 4월 13일 상해임시정부수립기념일에 「강릉 3·1독립만세운동 기념탑」을 건립했으며, 6.2m 높이의 주탑과 애국지사 10인의 흉상, 약사탑, 헌시가 각인된 12m의 병풍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릉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항일운동을 기리는 기념탑이 경포호수 옆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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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3.1독립만세운동 기념탑(횃불을 들다)
동해안 최초 3·1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발원지로서 고성군 애국지사(85명)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되새기고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고성군에서 3·1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조성과 기념탑 「횃불을 들다」를 2020년 4월 3일 건립했다. 3·1운동을 의미하는 3개 주탑의 유려한 곡선으로 그날의 횃불을 표현하였고, 기념탑 중심은 독립운동이 이루어진 장소를 의미하며, 바닥은 무궁화 패턴을 적용하였고, 주탑 양옆으로는 동상을 세워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독립운동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상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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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한용운기념관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불교인이자 저항 시인이다. 1894년의 동학혁명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만주 간도성 등을 다니며 광복 운동을 하다가, 1905년에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 33인을 대표하여 그가 인사말을 함으로써 독립선언식을 끝내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여 저항문학에 힘썼고, 1927년에는 신간회에 가입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경성지회장을 겸임했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의 건봉사 입구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기념관』은 독립운동가이자 불교사상가인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전시관으로, 조선 선조 임진왜란 때 승장으로 활약했던 사명대사를 기념관인 사명당 의승병 기념관과 함께 있다. 만해 한용운의 영정과 일대기를 알 수 있는 연보 및 사용했던 물건이나 도구 등의 유물, 건봉사와 부속말사에 대하여 기록한 「건봉사급건봉사본말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事蹟)」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홀로그램을 통한 시낭송 및 입체영상 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다. 만해 한용운은 1907년 건봉사에서 만해라는 당호를 받았고, 이학암 강백으로부터 화엄경과 반야경을 배움으로써 건봉사와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건봉사 입구 기념관 앞에는 만해당 대선사 시비 「사랑하는 까닭」, 「오도송」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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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마을 동학 사적 기념비
왕곡리 마을은 1887년 동학(천도교)가 전파되었으며, 1889년년 2월 제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이 동학을 포교하며 제자들을 교화한 곳이다. 1894(갑오)년 9월에 동학혁명 기포령(총동원령)을 내렸을 때에는 양양 거진지역까지 동학군이 궐기하여 이 마을 함일순 집에서 10여 일 간 머물면서 전력을 가다듬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해월 최시형의 인내천 사상과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97년 6월 2일에 천도교중앙총부와 동학민족통일회 고성군지부가 후원하여 고성군문화원에서 세운 동학사적지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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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독립선언문 조형물
본 조형물은 일제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족의 독립운동을 통해 세계만방에 우리나라가 주권을 가진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한 1919년 3월 1일의 「기미독립선언문」을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고 이희승 박사의 우리말 번역본을 각자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해 그 숭고한 뜻을 알고 후세에도 나라사랑 정신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해 고성군 토성면 숭모공원 내에 건립하였다. 가로 4.5m, 세로 3.1m 규모의 기미독립선언서 기념비는 아래 성곽 모형의 기단은 조국을 수호하는 철통 방위를, 양 옆의 기둥은 민족의 굳은 의지를, 횃불은 인류 광명의 불꽃을 나타내며, 위에는 무궁화와 태극기를 조각하여 영원히 후손만대까지 숭고한 뜻을 이어가고자 했다. 이 장소에서 매해 숭모제가 개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