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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역 3.1운동 만세 시위지
평택역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병남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11일, 4월 1일, 4월 11일 등 세 차례 벌어졌다. 3월 11일 만세 시위는 이도상의 주도로 일어났다. 이도상은 서울 등지에서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목준상·심헌섭·한영수·민응환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3월 11일 장날을 이용하여 평택역 앞에서 대대적으로 만세 시위를 벌였으며, 이로 인해 이도상 등은 체포되어 징역 1년~8월의 선고를 받았다. 한편 4월 1일에는 평택역과 인근 지역 곳곳에서 3,0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4월 11일에도 평택역 앞 사거리에서 수십 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위와 같은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역사를 기억하고자 본 안내판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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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산 3.1운동 만세 시위지
부용산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진위군 부용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9일 진위군 전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현덕면과 오성면 등지의 만세 시위 소식을 들은 부용면 주민들은 4월 1일 밤 부용산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평택으로 행진하다가 안성천교 부근에서 만세 시위를 시작하였는데 이 시위로 진위군 병남면·송탄면·고덕면까지 만세 시위가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역사를 기념하고자 본 안내판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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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창 집
원심창(1906~1971)은 경기도 진위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무정부주의 사회실현운동과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고향에서 전개된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를 수용하여 항일운동을 벌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흑우회·흑풍회·흑우연맹·흑색공포단 등 주로 무정부주의 계열의 단체에서 활동하는 한편 의열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32년 중국 천진에 있는 일본영사관 등 주요 기관을 폭파할 것을 모의하였고, 항일선전문을 등사하여 상해의 한국 동포에게 배포하기도 하였다. 1933년 3월 17일에는 상해에서 주중 일본공사인 아리요시 처단을 추진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1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풀려났다.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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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3.1독립만세운동 봉기도 비
평택 지역 3,1운동 항쟁은 1919년 3월 9일 현덕면 일원을 시작으로 팽성읍, 안중읍, 포승읍, 진위면, 서탄면, 고덕면, 오성면, 청북면, 평택 북부 동지역, 평택남부 동지역 등 평택 전지역에서 한 달여에 걸쳐 수천 명이 일제에 항거했고, 많은 애국지사들이 목숨을 걸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평택 지역의 만세운동을 기리고, 자랑스러운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자주독립 의지를 계승하여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평택3.1독립만세운동 봉기도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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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3.1운동 첫만세운동 터 기념비
이 곳은 조국의 자주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해 3.1운동을 전개한 평택지역 첫 만세운동 터이다. 1919년 3월 9일 현덕면을 시작으로 전개된 평택지역 3.1만세운동은 평택 전역에서 모두 5,800명이 참가해 64명이 사망하고, 127명이 부상 당했으며, 257명이 체포되는 등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3.1만세 운동의 항쟁지로서 시작점이 된 바로 이곳 계두봉에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고자 2012년 3월 9일에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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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독립운동 선열추모비
평택에서는 1919년 3월 9일 현덕면 계두봉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평택 전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수원 이남지역 최초의 평택 3·1만세운동은 안성, 화성, 천안 등 남한의 3대 만세운동 항쟁지보다 앞서 일어났는데, 일제가 「광포(狂暴)」하다는 표현으로 기록했을 만큼 격렬하게 전개되었으며, 각계각층에서 대규모로 전개되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기념비는 2019년 3월 9일에 평택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시민들의 모금으로 평택 3·1독립운동선양회에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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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3.1독립운동기념비
평택에서는 1919년 3월 9일 현덕면 계두봉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평택 전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수원 이남지역 최초의 평택 3·1만세운동은 안성, 화성, 천안 등 남한의 3대 만세운동 항쟁지보다 앞서 일어났는데, 일제가 「광포(狂暴)」하다는 표현으로 기록했을 만큼 격렬하게 전개되었으며, 각계각층에서 대규모로 전개되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기념비는 2019년 3월 9일에 평택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시민들의 모금으로 평택 3·1독립운동선양회에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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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두봉 3.1운동 만세 시위지
계두봉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평택 지역에서 1919년 3월 9일부터 4월까지 진행되었으며, 최초로 만세 시위가 벌어진 곳이다. 1919년 3월 9일에 진위군 현덕면 권관리, 기산리, 황산리, 도대리, 방축리 주민들이 계두봉과 옥녀봉에 모여 횃불 시위를 벌였다. 이후 3월 22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던 이민도 등이 다시 시위를 준비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본 경찰은 12명을 진위경찰서(현 평택경찰서)에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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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영 묘
이범영(1890~1955)은 경기도 포천(抱川) 출신의 독립지사·교육자로, 보성전문 법과 졸업 후 향리에 청성학교를 설립, 충의를 교훈으로 민족혼을 고취했고 3.1운동 후 중국에 망명하여, 3.1학당 설립 운동과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 결성에 참여하여 항일 지하운동을 전개했다. 1928년 민족자본의 육성을 위해 포천소비조합 창립 및 강화학교, 김천 광명학교, 밀양 정진학교, 영등포 영창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민족교육에 전념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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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영 송덕비
이범영(1890~1955)은 경기도 포천(抱川) 출신의 독립지사·교육자로, 보성전문 법과 졸업 후 향리에 청성학교를 설립, 충의를 교훈으로 민족혼을 고취했고 3.1운동 후 중국에 망명하여, 3.1학당 설립 운동과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 결성에 참여하여 항일 지하운동을 전개했다. 1928년 민족자본의 육성을 위해 포천소비조합 창립 및 강화학교, 김천 광명학교, 밀양 정진학교, 영등포 영창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민족교육에 전념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이범영 송덕비는 그의 항일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 사업에 바친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82년 포천 출신 독립 유공자 공적비 건립위원회가 주최가 되어 포천 유지들의 정성을 모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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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채 행적비
이규채(1884~1947)는 경기도 포천(抱川) 출신으로, 청성학교 교원으로 재직하고, 3·1운동 후 중국에 망명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한국독립당 정치부위원, 신한독립당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32년에 그는 한국독립당의 총무위원장(總務委員長)에 피선되었으며, 본부를 만주(滿洲)에서 북경(北京)으로 옮기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고, 본부를 옮김에 따라 한국독립당군은 해체하게 되었다. 1933년에는 중국 길림(吉林) 육군 제3군 상교참모(上校參謀)가 되어 활약하였으며, 그 이듬해에는 남경(南京)에 본부를 두고 있던 한국혁명당(韓國革命黨)과 한국독립당이 제휴하여 신한독립당(新韓獨立黨)을 조직하게 되자 그는 감찰위원장(監察委員長)으로 피선되어 활동하였다. 1935년 9월 25일에 중국 상해(上海)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받고 경성형무소(京城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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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기념비
관인면의 3·1만세운동은 면민 대다수가 참여한 대규모의 만세운동으로, 1919년 4월 10일 당시 19세였던 기독교 감리교회 청년신도 조아당과 조국독립에 뜻을 두었던 박용길의 주도로 일어났다. 상노리 신포동에서 시작한 만세운동 행렬이 총 14Km를 행진하며 남창동으로 600여 명이 진입하자 일본군 중리 헌병 분견대 등에 의해 평화적 시위가 무력 진압되었으며, 조아당과 박용길 등 31명이 검거되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일제의 폭압과 무력에 맞서 관인면민 모두가 평화적으로 항거하였던 고귀한 자주독립 정신을 널리 알리고 영원히 계승하기 위해 관인면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순수 관인면민의 자발적 모금에 의해 2019년 4월 10일 3·1만세운동기념비를 세웠으며, 관인문화체육센터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