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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구국충정 숭모비
고성군 토성면 운봉리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인 이근옥(애국장, 1991년), 김연수(애족장, 1990년), 문명섭(애족장, 1990년)등은 3·1운동 당시 토성면 운봉리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임시정부의 선전 활동과 재정자금의 조달 등 상해임시정부의 국내 조직 활동을 주로 수행한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펼쳤다. 고성군 운봉리 애국지사 구국충정 숭모비 건립위원회에서 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넋을 기리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자체 성금 모금을 통해 2007년 6월 30일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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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새긴돌
장준하(1915~1975)는 1944년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됐다 탈영해 1945년 광복군에 가담,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김구의 비서, 비상국민회의 서기 등을 역임했으며, 1949년 6월 한신대를 졸업했다. 1953년부터 월간 『사상계』를 발행했고,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서울 동대문(을)구)에 옥중 당선됐다. 1974년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다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혐의 제 1호로 구속돼 투옥된 바 있으며, 1975년 8월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장준하 선생 새긴돌」은 1989년 통일운동가 백기완이 경기도 파주시 장곡리 검문소 앞에 세웠다가 동해시 이기동으로 옮겨온 것으로, 독립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인 장준하의 약력이 새겨져 있다.1962년, 생전에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으며 사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 및 제1회 한신상,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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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기념비(냉천공원)
1919년 4월 17일 송정보통학교 학생 주하영, 김진수, 홍학현이 주동이 되어 동교생 50여 명이 외친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동해문화원이 1990년 9월 30일 옛 송정담안(현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 근처)에 「3.1만세기념비」를 제작 설치한 비석이다. 김시래 전동해문화원장의 글, 민병두 서예가의 글씨로 제작되었으며 본래 위치는 옛 송정담안(현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 근처)이었으나 일대에 항만 건설공사가 진행되면서 1997년 송정지역의 다른 비석들과 함께 시유지인 천곡동 냉천공원으로 임시 이전했다. 그러던 중 2018년 송정 초교 동문들의 ‘송정초교가 송정보통학교의 후신’이라는 주장에 따라 송정초교 교정으로 옮겨 설치했다. 그러나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3인 중 한 분인 홍학현 지사의 후손 등의 의견으로 2022년 4월 기념비를 천곡동 냉천공원으로 다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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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만세기념비(삼척초등학교)
1919년 4월 15일 삼척보통학교 교정에 집결한 176명 전교생은 학생 대표(김치화, 김봉호, 홍동표, 김달하, 오원모, 심부윤)와 김기덕 선생의 지도 아래 재경유학생 김순화로부터 전해받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조국 독립을 갈구하는 만세를 불렀다. 이틀 뒤 1919년 4월 17일 송정보통학교 학생 50여 명이 만세운동을 일으켰으며, 1921년 11월 9일 태평양 만국회의의 자극을 받은 삼척보통학교 학생들은 심부윤, 김윤달, 최삼용을 주축으로 하여 또다시 일제에 항거하는 동맹휴학, 민족자결의 선전문 배포 등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광복 45주년을 맞아 3.1운동의 정신과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독립만세운동의 진원지였던 삼척초등학교 내에 1990년 3월 1일 세운 기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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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대 추모비
정석대(1908 - 1945)는 삼척보통학교(12회)를 졸업하고 서울 배재고보를 거쳐 삼척 대평리 보통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고, 1933년 노동공작위원회를 결성해 집회를 갖고 일제의 근덕면 도로공사 부역에 항거하기 위해 비밀결사대(일명 K회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이를 통해 근덕면사무소를 습격하고자 1,000여 명의 면민을 동원시켜 거사하고, 1934년 음력 4월 집회를 마치고 나오다가 삼척경찰서에 검거되었다. 1934년 11월 강릉검사국 지청에 송치되어 1935년 1월 함흥형무소로 이감,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언도받고 1935년 11월 출옥하였으며, 일경의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인하여 1944년 5월 20일 3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애국지사 정석대공 추모비」는 삼척보통학교 4·15만세운동기념사업회가 2004년 3월 1일 삼일절에 건립하였다.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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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소 묘
이기소(1905 - 1970)는 삼척청년동맹(三陟靑年同盟)의 맹원으로 청년운동을 통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31년 5월 삼척청년동맹 해체 후 삼척지역의 혁명적 농조·노조운동을 준비, 지도하는 전위조직의 성격을 띈 비밀결사대(일명 K회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에서 강제 부역과 공사비를 강제로 징수하자, 1931년 11월 30일 장날을 기해 동지들과 함께 도로공사 반대를 위한 면민대회 개최 및 반대투쟁과 함께 면사무소를 점거, 일경과 대치하여 격렬하게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이 일로 그는 일경에 붙잡혀 1932년 7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1995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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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묘
김동호(미상 - 미상)는 강원 삼척(三陟) 사람이다. 그는 1910년대 국내의 대표적 혁명단체였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회원으로 활약했다.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통합하여 1915년에 7월 대구(大邱)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는 비밀·폭동·암살·명령을 행동강령으로 삼고 군자금을 조달하여 국내의 혁명기지를 확보하는 한편 만주의 독립군 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함으로써 적시에 폭동으로 독립을 쟁취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국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에 관한 포고문을 발송했는데, 이때 그는 강원도 지역의 자산가들을 조사하여 포고문을 발송하는 등 강원도지역의 활동을 주관했다. 1918년 대한광복회가 발각될 때 붙잡힌 그는 고초를 치르다가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고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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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사당
김동호(미상 - 미상)는 강원 삼척(三陟) 사람이다. 그는 1910년대 국내의 대표적 혁명단체였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회원으로 활약했다.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통합하여 1915년에 7월 대구(大邱)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는 비밀·폭동·암살·명령을 행동강령으로 삼고 군자금을 조달하여 국내의 혁명기지를 확보하는 한편 만주의 독립군 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함으로써 적시에 폭동으로 독립을 쟁취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국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에 관한 포고문을 발송했는데, 이때 그는 강원도 지역의 자산가들을 조사하여 포고문을 발송하는 등 강원도지역의 활동을 주관했다. 1918년 대한광복회가 발각될 때 붙잡힌 그는 고초를 치르다가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고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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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집
김동호(미상 - 미상)는 강원 삼척(三陟) 사람이다. 그는 1910년대 국내의 대표적 혁명단체였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회원으로 활약했다.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통합하여 1915년에 7월 대구(大邱)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는 비밀·폭동·암살·명령을 행동강령으로 삼고 군자금을 조달하여 국내의 혁명기지를 확보하는 한편 만주의 독립군 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함으로써 적시에 폭동으로 독립을 쟁취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국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에 관한 포고문을 발송했는데, 이때 그는 강원도 지역의 자산가들을 조사하여 포고문을 발송하는 등 강원도지역의 활동을 주관했다. 1918년 대한광복회가 발각될 때 붙잡힌 그는 고초를 치르다가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고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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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향정
육향정(六香亭)은 광복 뒤인 1947년 12월 당시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 김진구가 중심이 되고 김진원의 발의로 김몽순, 김형국 등 지방 유지들이 조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공, 1948년 5월에 준공한 정자로 육향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국광복기념 건립 정자이다.「육향정(六香亭)」이란 현판은 애국지사 오세창의 전자체 휘호를 받아 새겨 걸은 것이며, 바로 밑에 「대한평수토찬비(大韓平水土贊碑)」가 들어 있는 비각 우전각(禹篆閣)이 있으며, 「우전각(禹篆閣)」이란 현판 휘호는 독립투사 지청천(池靑天) 장군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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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만세운동기념관
대포만세운동은 대포항 일대에서 1919년 4월 5일 물치장날을 맞아 벌였던 대규모 만세운동으로서, 당시 참여했던 시민이 원산감옥에 투옥되거나 태형을 받는 등의 옥고를 치른 대규모 독립운동이다. 당시 만세운동 대열에 합류한 중도문, 대포리, 물치리 주민들 1,000여 명이 대포리 일본 경찰 주재소를 찾아 시위를 이어갔으며, 당시 주재소 책임자로부터 침략 등에 관한 사과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100년 전 대포항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의미를 되새기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해 당시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순사주재소(속초시 대포항1길 20, 옛 대포항개발사업소 부지) 자리에 「대포만세운동기념관」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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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만세운동기념마을
대포만세운동은 이석범의 주도로 시작되었는데, 고종 황제 인산식에 참석했다가 독립선언서를 버선 속에 숨겨와 동생 이국범 등과 만세운동을 계획 후, 만세운동 계획이 발각돼 이석범은 구속됐지만 김영경·박사집·이종순 등은 계획대로 1919년 4월 5일 중도문리, 대포리 등에서 만세운동을 진행했다. 당시 만세운동 대열에 합류한 중도문, 대포리, 물치리 주민들 1,000여 명이 대포리 일본 경찰 주재소로 몰려가, 주재소 책임자로부터 침략 등에 관한 사과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속초 대포지역에서 일어난 대포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기념비를 건립하였으며, 대포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유공자 이국범(애족장, 2005), 이능렬(애족장, 1990), 이동렬(대통령표창, 2006), 이종국(애족장, 1992년), 이춘재(대통령표창, 1992년)의 생가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