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항일운동
사건설명
국내항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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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 729 건
허병률 기념비
허병률(1885 - 1943)은 일제강점기 광복회원으로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17년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이 조직한 광복회(光復會)에 가입,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1919년 9월 경 양한위(梁漢緯)·권태일(權泰鎰)로부터 상해판 『독립신문』 및 경고문 등을 전달받아 부호와 관공리에게 발송, 최대한의 지원을 호소하여 모금한 8,000원의 군자금을 1920년 상해(上海)로 가서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그 해 8월에 박용선(朴容善)·조한명(趙漢明)·이동찬(李東燦) 등과 군자금 모집을 모의하고 권총과 탄약을 휴대, 서울 서린동에 사는 엄홍섭(嚴弘燮)을 설득하여 2만원을 군자금으로 교부받아 곧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1921년 6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허동상 기적비
허동상(1908 - 1951)은 경북 경산(慶山) 사람이다. 1930년 1월 경산군 하양서당(河陽書堂)의 훈장(訓長)이던 그는 전년도 11월 광주(光州)에서 발생한 학생항일시위운동의 전국적인 확산에 자극받아, 대구(大邱)에서도 학생들이 항일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촉구하는 격문을 작성하여, 동월 14일과 15일 새벽에 대구고등보통학교,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 대구상업하교 등 시내 각급학교의 담장에 붙이기도 하고 발송하기도 하였다. 이 일로 인해 동월 18일 대구경찰서에 붙잡힌 그는 1930년 2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봉규 집
김봉규(1892 - 1968)는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경주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참여하였다. 1920년 송두환(宋斗煥)·최윤동(崔胤東)·이수영(李遂榮)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대구일대를 중심으로, 일반국민으로부터 직장인·부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그 대상자를 삼아 군자금 조달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김봉규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조달원을 미행하던 일본경찰 카이[甲斐]가 위협하고 체포하려 할 때, 김봉규가 사살하였으나 곧 체포되었다. 1924년 11월 하순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며, 만기로 출옥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김봉규 공적비
김봉규(1892 - 1968)는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경주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참여하였다. 1920년 송두환(宋斗煥)·최윤동(崔胤東)·이수영(李遂榮)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대구일대를 중심으로, 일반국민으로부터 직장인·부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그 대상자를 삼아 군자금 조달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김봉규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조달원을 미행하던 일본경찰 카이[甲斐]가 위협하고 체포하려 할 때, 김봉규가 사살하였으나 곧 체포되었다. 1924년 11월 하순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며, 만기로 출옥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김봉규 묘
김봉규(1892 - 1968)는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경주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참여하였다. 1920년 송두환(宋斗煥)·최윤동(崔胤東)·이수영(李遂榮)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대구일대를 중심으로, 일반국민으로부터 직장인·부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그 대상자를 삼아 군자금 조달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김봉규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조달원을 미행하던 일본경찰 카이[甲斐]가 위협하고 체포하려 할 때, 김봉규가 사살하였으나 곧 체포되었다. 1924년 11월 하순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며, 만기로 출옥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정수기 기념비
정수기(1896 - 1936)는 경북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구국운동을 전개하다 1927년 수감되어 2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고, 고문으로 인해 발병하여 가석방되었으나 41세의 나이로 곧 사망하였다. 1990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준 집
최준(1884 - 1970)은 독립유공자 최완의 형이다. 최준은 영남의 대지주로서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에 군자금을 제공했고, 대한광복회에서 재무를 맡아 항일투쟁을을 전개했으며, 백산 안희제 선생과 함께 백산상회 설립을 결의하고 대표에 취임하고 백범 김구 선생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보냈으며, 경주고적보존회 설립, 동경통지 편찬 등 신라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알리는 데 기여했다. 또한 최준은 해방 직후 나라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모든 재산을 기증하여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하였고 이는 오늘날 영남대학교가 되었다. 최준은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어 심한 옥고를 치렀다. 1990년 정부는 선생의 공적의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상진 묘
박상진(1884 - 1921)의 '휘'는 '상진'이고 '호'는 '고헌'이다. 박상진은 판사시험에 합격하였으나 부임을 거부하고 신의주에 여관을 설치하여 항일운동을 시작했고, 대구에 상덕태상회를 개설하여 만주 이민사업을 추진했다. 1913년 대한광복회를 결성하여 총사령에 추대되면서 상업조직을 8도 각지에 결성했으며 신흥무관학교를 지원했다. 1918년 일경에 체포되어 4년의 옥고 끝에 순국했다. 1063년 정부에서 박상진의사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최준 묘
최준(1884 - 1970)은 독립유공자 최완의 형이다. 최준은 영남의 대지주로서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에 군자금을 제공했고, 대한광복회에서 재무를 맡아 항일투쟁을을 전개했으며, 백산 안희제 선생과 함께 백산상회 설립을 결의하고 대표에 취임하고 백범 김구 선생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보냈으며, 경주고적보존회 설립, 동경통지 편찬 등 신라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알리는 데 기여했다. 또한 최준은 해방 직후 나라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모든 재산을 기증하여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하였고 이는 오늘날 영남대학교가 되었다. 최준은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어 심한 옥고를 치렀다. 1990년 정부는 선생의 공적의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경규 묘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애국지사 일성 조경규 묘소이다. 조경규(1902 - 1988)의 이명은 조인좌이며, '마산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1926년 광복단에 입단하여 자금조달 임무를 맡다가 체포되어 징역 3년 6개월형을 받았다. 한국전쟁 이후 '대자원'을 설립해 전쟁고아를 돌봤다. 광복회 대구, 경북회 연합회장 등을 역임하며 광복과 경주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다가1988년 타계했다. 경주시 석장동 산 입구에 조경규 묘소 표지석이 위치해 있고 묘소는 산속에 있는 금장대 부근에위치해 있다. 경주 황성공원에 조경규 기적비가 설치되어 있다.
조경규 기적비
조경규(1902 - 1988)의 이명은 조인좌이며, '마산3.1운동'을 계기로독립운동에 참여했고, 1926년 광복단에 입단하여 자금조달 임무를 맡다가 체포되어 징역 3년 6개월형을 받았다. 한국전쟁 이후 '대자원'을 설립해 전쟁고아를 돌봤다. 광복회 대구, 경북회 연합회장 등을 역임하며 광복과 경주지역사회발전을 위해 헌신하다가1988년 타계했다.
광복회 활동지(효현교)
효현교는 광복회 활동의 기폭제 배경이 된 다리이다. 광복회는 1913년 고헌 박상진 의사에 의해 결성되었다. 광복회 총사령에는 박상진, 부사령에 이진룡이 선임되었지만 이진룡의 체포로 김좌진이 뒤를 이었다. 광복회는 국권회복과 공화제 실현을 목적으로 일본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해만주에서 독립전사를 양성하고 무기를 구입하는 활동을 했고 이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등 전국으로 조직을 확대했다. 1915년 우재룡과 권영만이 효현교에서 일제가 징수한 세금을 운반하는 우편마차에서 거액의 세금을 탈취했고 이는 광복회원들에게 기폭제가 되었다.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에는 박상진의사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