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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 59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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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관 묘
장덕관(1887~1938)은 경기도 안성(安城) 사람으로, 1919년 양성면(陽城面)·원곡면(元谷面) 일대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여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횃불을 들고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경찰 주재소·양성 우편소·양성면 사무소·원곡면 사무소의 건물을 파괴·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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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순 묘
정경순(1892~1959)은 경기도 진위(振威) 사람으로, 1919년 진위군(현, 평택군) 북면 은산리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서울과 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향리인 진위군에서 이에 호응하는 시위운동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4월 1일 거사를 계획 후 동리 사람들에게 시위계획을 알려 동참을 호소하였고, 이에 호응한 많은 이민들이 은산리 뒷산에 집결하자 이들은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에 돌입하였다. 그는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며 주재소로 몰려가 주위를 둘러싸고 기세를 올렸다. 이 일로 인하여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상고, 7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2000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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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창 묘
이규창(1900~1970)은 경기도 안성(安城) 사람으로, 1919년 양성면(陽城面) 원곡면(元谷面) 일대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횃불을 들고 일제에 항거하였으며, 원곡면 사무소의 건물을 파괴·주재소를 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1년 3개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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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위초등학교 3.1운동만세 시위지
1919년 3월 18일 진위공립보통학교(진위초등학교 옛 이름) 학생 20여 명이 진위면사무소 앞으로 달려나가 만세운동을 전개한 곳이다. 특히 진위초등학교와 진위면사무소는 옛 평택을 아우르던 진위현의 관아터가 있던 자리이자 3.1 만세운동이 격렬히 일어났던 지역이다.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참여했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3.1운동 만세시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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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위현청
진위면(당시 진위군 북면)의 만세시위는 모두 다섯 차례의 만세시위가 전개됐다. 3월 18일 첫 만세시위는 진위공립보통학교 학생 20여 명이 교내에서 독립만세를 불렸으며, 이어 3월 21일 천도교인과 지역 주민들이 면사무소를 습격했다. 북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만세시위는 3월 31일 전개됐는데, 500여 명의 군중이 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장을 끌어내어 만세를 부르게 할 정도로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했다. 다음날인 4월 1일에는 은산리에서 만세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고, 다음날 4월 2일까지 북면 일대에서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이처럼 북면, 현재의 진위읍은 3.1운동 당시 중심이었다. 2003년 7월 24일 진위소공원이 마련되면서 3.1운동을 기리고 옛 진위현의 현청이 있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비석과 안내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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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면사무소 3.1운동 만세시위지
북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진위군 북면(현 진위면) 주민들이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한 곳이다. 진위군 북면 시위는 봉남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3월 11일에 봉남리에서 천도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시위하였고 3월 21일에는 봉남리와 야막리 주민 500여 명이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3월 31일에도 박성백, 최구홍, 유동환, 전영록 등 봉남리 주민 400여 명이 면사무소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박성백, 유동환, 전영록 등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와 같은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역사를 기리고자 안내판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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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리 3.1운동 만세 시위지
은산리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진위군 북면 은산리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4월 1일에 은산리 사는 정경순은 비밀리에 정문학·정재운을 만나 “지금 전국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도 만세를 불러 사람 구실을 하자”고 권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이 주민 30여명을 이끌고 마을 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치자 산 아래에서도 많은 주민이 호응하여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어 최선유가 봉남리주재소로 가서 만세를 부르자고 선동하여 시위대는 면소재지인 봉남리로 행진하였다. 시위를 주도한 정경순과 최선유는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위와 같은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본 안내판과 동판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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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역 3.1운동 만세 시위지
평택역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병남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11일, 4월 1일, 4월 11일 등 세 차례 벌어졌다. 3월 11일 만세 시위는 이도상의 주도로 일어났다. 이도상은 서울 등지에서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목준상·심헌섭·한영수·민응환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3월 11일 장날을 이용하여 평택역 앞에서 대대적으로 만세 시위를 벌였으며, 이로 인해 이도상 등은 체포되어 징역 1년~8월의 선고를 받았다. 한편 4월 1일에는 평택역과 인근 지역 곳곳에서 3,0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4월 11일에도 평택역 앞 사거리에서 수십 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위와 같은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역사를 기억하고자 본 안내판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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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산 3.1운동 만세 시위지
부용산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진위군 부용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9일 진위군 전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현덕면과 오성면 등지의 만세 시위 소식을 들은 부용면 주민들은 4월 1일 밤 부용산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평택으로 행진하다가 안성천교 부근에서 만세 시위를 시작하였는데 이 시위로 진위군 병남면·송탄면·고덕면까지 만세 시위가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역사를 기념하고자 본 안내판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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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창 집
원심창(1906~1971)은 경기도 진위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무정부주의 사회실현운동과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고향에서 전개된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를 수용하여 항일운동을 벌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흑우회·흑풍회·흑우연맹·흑색공포단 등 주로 무정부주의 계열의 단체에서 활동하는 한편 의열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32년 중국 천진에 있는 일본영사관 등 주요 기관을 폭파할 것을 모의하였고, 항일선전문을 등사하여 상해의 한국 동포에게 배포하기도 하였다. 1933년 3월 17일에는 상해에서 주중 일본공사인 아리요시 처단을 추진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1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풀려났다.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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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3.1독립만세운동 봉기도 비
평택 지역 3,1운동 항쟁은 1919년 3월 9일 현덕면 일원을 시작으로 팽성읍, 안중읍, 포승읍, 진위면, 서탄면, 고덕면, 오성면, 청북면, 평택 북부 동지역, 평택남부 동지역 등 평택 전지역에서 한 달여에 걸쳐 수천 명이 일제에 항거했고, 많은 애국지사들이 목숨을 걸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평택 지역의 만세운동을 기리고, 자랑스러운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자주독립 의지를 계승하여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평택3.1독립만세운동 봉기도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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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3.1운동 첫만세운동 터 기념비
이 곳은 조국의 자주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해 3.1운동을 전개한 평택지역 첫 만세운동 터이다. 1919년 3월 9일 현덕면을 시작으로 전개된 평택지역 3.1만세운동은 평택 전역에서 모두 5,800명이 참가해 64명이 사망하고, 127명이 부상 당했으며, 257명이 체포되는 등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3.1만세 운동의 항쟁지로서 시작점이 된 바로 이곳 계두봉에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고자 2012년 3월 9일에 기념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