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근호 추모비
강근호(1888-1960)는 일제강점기, 청산리 대첩에 참전한 독립운동가이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함흥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6년 ‘반일학생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3 · 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지린성〔吉林省〕 룽징촌〔龍井村〕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후 그해 5월 신흥학교를 확대 개편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에는 무장 독립운동 조직인 북로군정서의 사관양성소에서 제1학도대 제3구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청산리 대첩에서 김좌진(金佐鎭, 1889~1930)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의 제1중대장으로 참전하여 승리를 거두고, 부대원들과 함께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의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1921년 6월 러시아 적군이 사할린의용대를 공격하는 자유시사변이 일어난 이후 고려혁명군에 소속되어 이르쿠츠크(Irkutsk)로 이동한 후 러시아 적군에 예속(隷屬)되었다. 그해 10월 이르쿠츠크에서 고려혁명군이 장교와 사병을 양성하고자 세운 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하였다. 1922년에 반공 투쟁을 벌여 이르쿠츠크 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른 후 만주로 돌아왔다. 만주에서는 룽징촌 영신학교의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43년에는 허룽현 명월구에서 애국동지회 청년군사훈련 교관으로 근무하였다.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수원의 대한민족청년단 중앙훈련소 교관으로 근무하였고, 1949년 2월에는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해 소위로 임관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장교로 참전하였으며, 1956년 중령으로 전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