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177-1
- 탐방로그
- 김명시 장군 생가터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오동동문화광장 주차장 입구 화단에 위치해 있다. 생가는 멸실되고 터만 남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김명시 장군 생가터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린 김명시(金命時 1907~1949)는 중국대륙에서 대일항전에 참전해 총을 들고 싸운 독립운동가이며 혁명가이다. 어머니 김인석, 오빠 김형선, 동생 김형윤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마산공립보통학교(성호초등)를 졸업하고 1925년, 18세에 모스크바 유학을 떠났다. 25세 때 중국에서 국내로 잠입하여 노동운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해방직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활동하다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극렬한 이념갈등으로 인하여 1949년 10월 부평경찰서에서 생을 마감했다.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린 김명시(金命時 1907~1949)는 중국대륙에서 대일항전에 참전해 총을 들고 싸운 독립운동가이며 혁명가이다. 어머니 김인석, 오빠 김형선, 동생 김형윤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마산공립보통학교(성호초등)를 졸업하고 1925년, 18세에 모스크바 유학을 떠났다. 25세 때 중국에서 국내로 잠입하여 노동운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해방직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활동하다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극렬한 이념갈등으로 인하여 1949년 10월 부평경찰서에서 생을 마감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177-1 오동동문화광장 주차장 입구 화단 김명시 장군 집터 표지판을 찾았다.
김명시 장군 생가터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린 김명시(金命時 1907~1949)는 중국대륙에서 대일항전에 참전해 총을 들고 싸운 독립운동가이며 혁명가이다. 어머니 김인석, 오빠 김형선, 동생 김형윤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마산공립보통학교(성호초등)를 졸업하고 1925년, 18세에 모스크바 유학을 떠났다. 25세 때 중국에서 국내로 잠입하여 노동운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해방직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활동하다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극렬한 이념갈등으로 인하여 1949년 10월 부평경찰서에서 생을 마감했다.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린 김명시(金命時 1907~1949)는 중국대륙에서 대일항전에 참전해 총을 들고 싸운 독립운동가이며 혁명가이다. 어머니 김인석, 오빠 김형선, 동생 김형윤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마산공립보통학교(성호초등)를 졸업하고 1925년, 18세에 모스크바 유학을 떠났다. 25세 때 중국에서 국내로 잠입하여 노동운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해방직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활동하다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극렬한 이념갈등으로 인하여 1949년 10월 부평경찰서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