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동동리 산59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용이랴 하시며 경신년 동문 전영수 남상순 등을 규합 비밀결사 충성회를 조직코 국권회복을 위해 암약타 계미 엄동 왜경에 피체되어 혹독한 고문으로 연여(年餘)의 옥고를 겪고 폐환(肺患)으로 운신불능에 이르니 왜경이 가석방으로 고가로 강제 송환하였으되 보호의 미명으로 항시 수명의 경찰을 배치코 동정을 일일히 감시케 하니 공은 물론 가족도 연금지화를 불면케 되다. 오호 드디어 을유(乙酉) 8월 15일 연합국의 승리로 일제가 패망하니 공은 남다른 감개(感慨)로 한없이 오읍(嗚唈)하였도다. 이로부터 병원에 입원 가료(加療) 10년 공의 병세는 소강케 되었으되 기간(其間) 풍유(豊裕)했던 가산은 경진(傾盡)되어 빈한(貧寒)에 처하매 공은 불완(不完)한 몸으로 의령 농지개량조합에 취직하게 되었고 승참사(陞參事)하고는 신병의 중재(重再)로 자사(自辞)하여 요양(療養)타 환력(還曆)을 맞은 이듬 을축 3월 3일 서거하셨다. 공의 배위는 청주한씨 재동의 녀요. 계배는 한양전씨 맥수의 녀로 4남 1녀를 득하니 남은 준 청 강 건이요. 초계 변종완은 여서니라.
을묘년 정부의 건국공로훈장이 있자 겸사하다. 수수하는 손양지덕을 보이신 공은 천성이 자인신근○묵하고 매사에 성실철저하였으니 만인이 손지시민지사로 추앙하는 바이라. 근연수려한 사굴의 정기와 청정남강의 영기와 더불어 만고에 방복하리라.
서기 1985년 을축 7월 일
광복회경상남도지회장 순흥 안정삼 찬
을묘년 정부의 건국공로훈장이 있자 겸사하다. 수수하는 손양지덕을 보이신 공은 천성이 자인신근○묵하고 매사에 성실철저하였으니 만인이 손지시민지사로 추앙하는 바이라. 근연수려한 사굴의 정기와 청정남강의 영기와 더불어 만고에 방복하리라.
서기 1985년 을축 7월 일
광복회경상남도지회장 순흥 안정삼 찬
용이랴 하시며 경신년 동문 전영수 남상순 등을 규합 비밀결사 충성회를 조직코 국권회복을 위해 암약타 계미 엄동 왜경에 피체되어 혹독한 고문으로 연여(年餘)의 옥고를 겪고 폐환(肺患)으로 운신불능에 이르니 왜경이 가석방으로 고가로 강제 송환하였으되 보호의 미명으로 항시 수명의 경찰을 배치코 동정을 일일히 감시케 하니 공은 물론 가족도 연금지화를 불면케 되다. 오호 드디어 을유(乙酉) 8월 15일 연합국의 승리로 일제가 패망하니 공은 남다른 감개(感慨)로 한없이 오읍(嗚唈)하였도다. 이로부터 병원에 입원 가료(加療) 10년 공의 병세는 소강케 되었으되 기간(其間) 풍유(豊裕)했던 가산은 경진(傾盡)되어 빈한(貧寒)에 처하매 공은 불완(不完)한 몸으로 의령 농지개량조합에 취직하게 되었고 승참사(陞參事)하고는 신병의 중재(重再)로 자사(自辞)하여 요양(療養)타 환력(還曆)을 맞은 이듬 을축 3월 3일 서거하셨다. 공의 배위는 청주한씨 재동의 녀요. 계배는 한양전씨 맥수의 녀로 4남 1녀를 득하니 남은 준 청 강 건이요. 초계 변종완은 여서니라.
을묘년 정부의 건국공로훈장이 있자 겸사하다. 수수하는 손양지덕을 보이신 공은 천성이 자인신근○묵하고 매사에 성실철저하였으니 만인이 손지시민지사로 추앙하는 바이라. 근연수려한 사굴의 정기와 청정남강의 영기와 더불어 만고에 방복하리라.
서기 1985년 을축 7월 일
광복회경상남도지회장 순흥 안정삼 찬
을묘년 정부의 건국공로훈장이 있자 겸사하다. 수수하는 손양지덕을 보이신 공은 천성이 자인신근○묵하고 매사에 성실철저하였으니 만인이 손지시민지사로 추앙하는 바이라. 근연수려한 사굴의 정기와 청정남강의 영기와 더불어 만고에 방복하리라.
서기 1985년 을축 7월 일
광복회경상남도지회장 순흥 안정삼 찬
전면 예서 김해 허후 서, 본문 나주 임재동 서
차 묘비 및 묘역 일절 시설물은 정부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훈시책으로써 교부된 국고금 및 도군비 보조금으로 이룩하다
차 묘비 및 묘역 일절 시설물은 정부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훈시책으로써 교부된 국고금 및 도군비 보조금으로 이룩하다
GPS 주소는 의령군 의령읍 동동리 415-3 도로변.
愛國志士 金海許公 諱 萬準 之墓(애국지사 김해허공 휘 만준 지묘)
愛國志士 金海許公 諱 萬準 之墓(애국지사 김해허공 휘 만준 지묘)
愛國志士 月汀 金海許公 諱 萬準 之墓(애국지사 월정 김해허공 휘 만준 지묘)
愛國志士 月汀 金海許公 諱 萬準 之墓(애국지사 월정 김해허공 휘 만준 지묘)
약관의 학도로 망국의 한을 씻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독립운동에 체혼(體魂)을 받쳤던 애국지사인 공의 휘는 만준이요, 호는 월정이다. 가락국 수로왕의 후(后)이니 관(貫)은 김해요, 진주목사 휘 윤강(允康)의 14세손이며 고 휘 상도 비 진양 강씨의 장자로 갑자 10월 16일 묘시에 세장(世庄)인 의령(宜寧) 무전(茂田)의 세제(世第)에서 출생하였다. 자유(自幼)로 공은 총명하고 영특하였으니 고공(考公)의 각별하신 기애(嗜愛)와 촉망(囑望)을 받었다. 공이 喪考後(상고후) 14세시 의령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무인년 청운의 뜻을 품고 단신 負笈(부급) 현해탄을 건너 만리이역 대판(大阪) 중학교에 진학 수학 중 일본의 민족 차별과 수모를 지각(知覺) 차분(嗟憤)하고서 나의 독립없이 위기지학(爲己之學)이 무슨 소
약관의 학도로 망국의 한을 씻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독립운동에 체혼(體魂)을 받쳤던 애국지사인 공의 휘는 만준이요, 호는 월정이다. 가락국 수로왕의 후(后)이니 관(貫)은 김해요, 진주목사 휘 윤강(允康)의 14세손이며 고 휘 상도 비 진양 강씨의 장자로 갑자 10월 16일 묘시에 세장(世庄)인 의령(宜寧) 무전(茂田)의 세제(世第)에서 출생하였다. 자유(自幼)로 공은 총명하고 영특하였으니 고공(考公)의 각별하신 기애(嗜愛)와 촉망(囑望)을 받었다. 공이 喪考後(상고후) 14세시 의령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무인년 청운의 뜻을 품고 단신 負笈(부급) 현해탄을 건너 만리이역 대판(大阪) 중학교에 진학 수학 중 일본의 민족 차별과 수모를 지각(知覺) 차분(嗟憤)하고서 나의 독립없이 위기지학(爲己之學)이 무슨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