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제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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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83
탐방로그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83 설뫼충효테마파크에 항일고난체험관과 백산 안희제 기념관이 위치한다. 기념관에는 선생의 동상과 각종 설명 안내판, 선생이 운영했던 백산무역주식회사의 모형 등 여러 전시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또 선생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던 인물들인 백범 김구, 문파 최준, 그리고 친척이던 안효제, 안창제와의 일화도 살펴볼 수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83 설뫼충효테마파크
설뫼충효테마파크
항일고난체험관이 있어서 찾았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백산 안희제기념관도 있었다.
설뫼충효테마파크안내지도에 표되어있던 백산 안희제기념관
백산 안희제 기념관
백산 안희제선생
"차시양백오등양인"
백범 김구
● 모스크바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귀국길에 상하이에 들러 대한민국임시정부 용인들을 만난 안희제.
이때 김구 주석은 안희제에게 국내정세에 대해 물었고 안희제는 "국내의 기장은 해이하고 변절자가 많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며, 애국사상이 있다는 사람도 [정감록]의 '양백지간에 가활만인' 만 안일하게 찾고 앉았다"고 대답하며, "세인구구 양백지간(세상 사람들이 말끝마다 양백지간 운운한다)" 이라고 하자, 김구는 안희제의 손을 잡으며 "차시양백오등양인(양백지간은 바로 우리 둘이다)"라고 하면서 "백범의 '백'과 백산의 '백'을 합하면 양백이니 우리 두 사람이 장차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구하자"고 말했다.
● 해방이 되고 임시정부가 환국한 후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은 안희제와 유가족의 안부부터 물었다고 한다. 백범은 백산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목놓아 통곡을 했다. "상해임시정부와 만주독립운동자금의 약 60%가 백산 안희제의 손을 통해 나왔다"
"백산, 준을 용서해주게"
문파 최준
● 독립유공자, 경주 최부자 12대손. 독립군에 군자금을 대고 백산상회를 설립하는 등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해방 후에는 전재산을 기부하여 현재의 영남대학교를 설립.
● 최준은 자신이 안희제에게 건넨 독립운동자금이 어려운 역경속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정확하게 전달된 사실을 그가 순국한 후에야 알게되었다.
● 6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준은 마침내 통곡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경교장 2층 마루로 나가 남쪽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경남 의령의 안희제 묘소 쪽을 향해 목놓아 울며 말했다.
"백산! 준을 용서해 주게! 내가 준 자금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절반이라도 전달되었으면 다행으로 늘 생각한 준을 용서해주게"
"임진왜란 의병"
지헌 안기종[1556~1633] : 안희제의 선조
● 자는 응회, 호는 지헌, 본관은 탐진임. 조선중기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봉사에 임명되고 군자감 판관에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곽재우의 지휘를 받아 유곡.영천.화황산에서 전공을 세움.
● 입산마을의 창시자로 전해지며 마을입구 효충원에 안기종 선생의 휴허비인 이충각이 있음.
"독립운동가"
수판 안효제(1850~1916) : 안희제의 친척형
● 한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순흥. 자는 순중임. 1883년(고종 20년) 문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거쳐 사헌부 지평을 지내다 관황녀가 고종의 총애를 받아 군령군에 봉해지는 한편, 위복을 전단하자, 그녀를 벨 것을 상소하여 고종의 분노를 사서 제주 추자도에 유배됨.
● 이후 1894년 전라남도 임자도로 옮겨진 뒤 곧 귀양이 풀리고 을미사변 이후 민비가 시해되고 왕후폐위조칙이 내려지가, 참판 이용원, 최익현과 더불어 민비의 복위를 건의하였고, 또한 단발령을 적극 반대함.
● 1910년 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병탄당하자 산중에 들어가 일제의 은사금을 거부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순국함.
"독립운동가"
송은 안창제(1866~1931) : 안희제의 친척동생
● 송은 공은 1866년(고종 3년)에 출생하였고 자는 중양, 호가 송은이며 18세에 무과 급제하여 용양위사과에 오름.
● 을사늑약 이후 청참오적 상소로 옥고를 겪고 형인 수파공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1931년 65세로 기세하신 애국지사임.
"제헌 국회의원"
군산 안준상(1897~1994) : 안희제의 조카
● 자는 민흥이며 호는 근산이고, 연파문하에서 학문을 수학하고 일본 동경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에 유학하고 신문학을 연수함.
● 조국광복을 위하여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조달책을 맡았으며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배포하고 의령협동조합을 설립하여 12년간 운영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기도 함.
서상일, 곽상훈, 김정설 등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8년 의령에서 제헌 국회의원에 피선되었고, 조국 광복과 민주 정치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 받음.
白山貿易株式會社(백산무역주식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