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 960-21
- 탐방로그
- 경남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 960-21 근린공원 양산 항일독립운동기념탑.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헌시
천성산 깊은 자락 민족혼 서렸으니
이곳에 자란 의인들 태극기 높이 들고
잃었던 주권 찾으려 앞장서서 외쳤다
외치는 만세소리 칼끝에 찢어지고
총탄에 박힌 선혈 흰 옷에 배어들어
언젠가 씻어 줄 후손 기다렸던 그 날을
왜적이 밥솥 들고 마당에 내던져도
울분 억누르고 참아 낸 백의민족
총칼로 막을 수 없는 겨레의 자존심
독립을 찾으려는 조상의 얼을 새겨
압록강 건너가 밤낮없이 터 닦아
이제는 자주독립 찾아 놓은 이 광영
오봉산 병풍 아래 안온한 청풍등에
당신의 희망들이 젊은 날에 꺾였어도
선열로 길이 섬기려 받쳐 드는 헌사를
2009년 3월 1일
덕오 이광수 짓다
천성산 깊은 자락 민족혼 서렸으니
이곳에 자란 의인들 태극기 높이 들고
잃었던 주권 찾으려 앞장서서 외쳤다
외치는 만세소리 칼끝에 찢어지고
총탄에 박힌 선혈 흰 옷에 배어들어
언젠가 씻어 줄 후손 기다렸던 그 날을
왜적이 밥솥 들고 마당에 내던져도
울분 억누르고 참아 낸 백의민족
총칼로 막을 수 없는 겨레의 자존심
독립을 찾으려는 조상의 얼을 새겨
압록강 건너가 밤낮없이 터 닦아
이제는 자주독립 찾아 놓은 이 광영
오봉산 병풍 아래 안온한 청풍등에
당신의 희망들이 젊은 날에 꺾였어도
선열로 길이 섬기려 받쳐 드는 헌사를
2009년 3월 1일
덕오 이광수 짓다
첫번째로 찾은 경남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 960-21 근린공원 양산 항일독립운동기념탑.
"하나의 빛이 되어"
양산 4대 항일독립운동을 상징하는 4개의 탑신(柱)을 연출하여 우리 민족의 우주관인 天地人(천지인) 사상을 바탕으로 한 조형물
天(천) - 양산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상징 / 人(인) - 양산인의 굳건한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상징 / 地(지) - 양산인의 나라사랑 정신을 태극과 4패로 상징
① 구(球): 양산인의 애국심과 애향심이 하나로 결집되어 화합과 발전의 빛으로 승화됨을 상징
② 주탑: 두팔 벌려 만세하는 군중의 모습
⦁ 4개의 탑신 : 3.1독립만세운동, 농민운동, 의병 활동, 임시정부활동 및 학생운동 등의 독립운동 상징
③ 위패벽 :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내용 추모의 글, 독립운동 희생자 명단, 님을 추모하는 헌시
④ 좌측부조 : 양산장터 독립만세운동과 양산농민운동의 활약상
⑤ 우측부조 : 의병활동과 임시정부 및 광복군의 활약상
⑥ 기단 : 태극의 4괘로 대한독립의 일념으로 투쟁하신 선열들의 나라사랑정신을 상징
양산 4대 항일독립운동을 상징하는 4개의 탑신(柱)을 연출하여 우리 민족의 우주관인 天地人(천지인) 사상을 바탕으로 한 조형물
天(천) - 양산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상징 / 人(인) - 양산인의 굳건한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상징 / 地(지) - 양산인의 나라사랑 정신을 태극과 4패로 상징
① 구(球): 양산인의 애국심과 애향심이 하나로 결집되어 화합과 발전의 빛으로 승화됨을 상징
② 주탑: 두팔 벌려 만세하는 군중의 모습
⦁ 4개의 탑신 : 3.1독립만세운동, 농민운동, 의병 활동, 임시정부활동 및 학생운동 등의 독립운동 상징
③ 위패벽 :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내용 추모의 글, 독립운동 희생자 명단, 님을 추모하는 헌시
④ 좌측부조 : 양산장터 독립만세운동과 양산농민운동의 활약상
⑤ 우측부조 : 의병활동과 임시정부 및 광복군의 활약상
⑥ 기단 : 태극의 4괘로 대한독립의 일념으로 투쟁하신 선열들의 나라사랑정신을 상징
기념탑을 세우면서
우리고장 양산은 항일 투쟁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내린 충절의 고장입니다. 여기 모신 선열은 양산 출신의 선각자로 한말로부터 일제 식민기에 조국광복을 위하여 그 귀중한 명예와 재산과 생명마저도 초개같이 버리신 분입니다. 일제가 남긴 깊은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에 연이은 민족분단 등 시대적 광풍에 휩싸이다 보니 님들의 유업을 제대로 기리지 못한 점. 때늦은 통한 가슴이 아픕니다.
지난 1993년 재부 양산향인회에서 양산 3·1운동 기념탑 건립을 위한 발의가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2002년 봄 양산의 원로 자연인의 모임에서 다시 발의되어 우선적으로 선열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를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자는 결의에 따라 2004년 말 양산 항일독립 운동사를 발간하였습니다. 이어서 2006년 봄 양산 항일독립운동 기념탑 건립 추진 발기인대회를 자연인의 모임에서 갖고, 그해 가을 범시민적인 추진위원회가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예산은 국가보훈처와 양산시의 지원 아래 추진위원의 성금을 모으고 25만 양산시민의 정성을 다지면서 오늘 여기 높고 거룩한 탑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양산 항일독립 운동에 이바지한 모든 분을 다 함께 여기 추모비에 새겨 모시지 못하고 국가보훈처에서 서훈된 분들로 한정하였습니다. 배열 순위는 사건의 경증과 훈격 순위로 모시고, 다음에 서훈될 분들로 모실 여백을 남겼습니다. 아!! 영원한 양산의 번영을 위하여 님들이 남긴 고귀한 뜻 헛되지 않도록 가슴 깊이 새기면서 그간의 내력을 이 돌에 새겨 기념하고자 합니다.
2009년 3월 1일
양산 항일독립운동 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
[고문] 양산시장 오근섭. 국회의원 허범도. 시의회의장 정재환
[자문위원] 도의원 박규식, 성계관, 시의원 김일권, 김지석, 나동연, 박말태, 박인, 박인주, 박정문, 이채화, 최영호, 허강희, 김덕자, 박윤정, 재경향우회장 배재욱, 재무향인회장 주종기,
재부구말기인 최해군. 김대상, 김준연, 박상윤, 안감원, 이종훈, 최병길
[추진위원회] 위원장 이형우, 부위원장 정진화, 감사 류득원, 정규화, 총무이사 정동찬, 재무이사 박정수, 조형이사 안윤한
위원 - 권용진, 김동원, 김상걸, 김상삼, 김상완, 김영돈, 김재락, 김정구, 김정진, 김중청, 김진규, 류도옥, 박옥수, 박필호, 박희일, 서영택, 서춘계, 성병달, 손규영, 손세택, 안경일. 안창수, 양희복, 우국대, 유웅길, 윤정웅, 윤종진, 이동화, 이상철, 이장우, 이태환, 장성진, 정규화, 정금모, 정연곤. 정연주, 정임성, 정진옥, 정진택, 지명구, 하덕성, 황순현
시행자 : 양산 항일 독립운동 기념탑건립 추진위원회
시공자 : 아름다운세상 조형연구소
작가 : 이경순
이 탑은 국가보훈처와 양산시의 지원을 받아 건립하였다.
우리고장 양산은 항일 투쟁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내린 충절의 고장입니다. 여기 모신 선열은 양산 출신의 선각자로 한말로부터 일제 식민기에 조국광복을 위하여 그 귀중한 명예와 재산과 생명마저도 초개같이 버리신 분입니다. 일제가 남긴 깊은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에 연이은 민족분단 등 시대적 광풍에 휩싸이다 보니 님들의 유업을 제대로 기리지 못한 점. 때늦은 통한 가슴이 아픕니다.
지난 1993년 재부 양산향인회에서 양산 3·1운동 기념탑 건립을 위한 발의가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2002년 봄 양산의 원로 자연인의 모임에서 다시 발의되어 우선적으로 선열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를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자는 결의에 따라 2004년 말 양산 항일독립 운동사를 발간하였습니다. 이어서 2006년 봄 양산 항일독립운동 기념탑 건립 추진 발기인대회를 자연인의 모임에서 갖고, 그해 가을 범시민적인 추진위원회가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예산은 국가보훈처와 양산시의 지원 아래 추진위원의 성금을 모으고 25만 양산시민의 정성을 다지면서 오늘 여기 높고 거룩한 탑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양산 항일독립 운동에 이바지한 모든 분을 다 함께 여기 추모비에 새겨 모시지 못하고 국가보훈처에서 서훈된 분들로 한정하였습니다. 배열 순위는 사건의 경증과 훈격 순위로 모시고, 다음에 서훈될 분들로 모실 여백을 남겼습니다. 아!! 영원한 양산의 번영을 위하여 님들이 남긴 고귀한 뜻 헛되지 않도록 가슴 깊이 새기면서 그간의 내력을 이 돌에 새겨 기념하고자 합니다.
2009년 3월 1일
양산 항일독립운동 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
[고문] 양산시장 오근섭. 국회의원 허범도. 시의회의장 정재환
[자문위원] 도의원 박규식, 성계관, 시의원 김일권, 김지석, 나동연, 박말태, 박인, 박인주, 박정문, 이채화, 최영호, 허강희, 김덕자, 박윤정, 재경향우회장 배재욱, 재무향인회장 주종기,
재부구말기인 최해군. 김대상, 김준연, 박상윤, 안감원, 이종훈, 최병길
[추진위원회] 위원장 이형우, 부위원장 정진화, 감사 류득원, 정규화, 총무이사 정동찬, 재무이사 박정수, 조형이사 안윤한
위원 - 권용진, 김동원, 김상걸, 김상삼, 김상완, 김영돈, 김재락, 김정구, 김정진, 김중청, 김진규, 류도옥, 박옥수, 박필호, 박희일, 서영택, 서춘계, 성병달, 손규영, 손세택, 안경일. 안창수, 양희복, 우국대, 유웅길, 윤정웅, 윤종진, 이동화, 이상철, 이장우, 이태환, 장성진, 정규화, 정금모, 정연곤. 정연주, 정임성, 정진옥, 정진택, 지명구, 하덕성, 황순현
시행자 : 양산 항일 독립운동 기념탑건립 추진위원회
시공자 : 아름다운세상 조형연구소
작가 : 이경순
이 탑은 국가보훈처와 양산시의 지원을 받아 건립하였다.
추모의 글
충·효·열의 고을 양산은 신라시대 이래 항일. 호국의 오랜 전통을 이어온 고장이다.
만고충신 삼량주의 박제상은 눌지왕 2년(418) 왜국에 인질로 있던 왕제(王弟) 미사흔(未斯欣)을 구출. 귀국시키고 왜왕의 고문에 의연한 자세로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노라" 하며 충의를 드높여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고려시대 왜구 방어에 큰 공을 세운 양주방어사 김원현(金元鉉). 임진왜란시 동래성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조영규(趙英圭) 군수 등의 호국정신은 양산 사람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내리고 있다. 한말 일제는 총칼로 조국 강토를 유린하고 우리말과 성(姓)을 말살하였으니, 식민역사 35년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으로 잊어서는 안 될 절망과 분노의 상흔을 남기고 있다.
1907년 서병희(炳炳熙) 의병장은 일체가 고종황제를 강제퇴위 시키고 군대를 해산하자 의문을 참지 못해 생업을 버리고 서울로 상경. 허위(許蔿) 의병장 휘하에서 조국 독립의 꿈을 키웠다. 이후 의병 50여명을 인솔하여 경상도 일원을 무대로 일본수비대 · 관공서 일본상인 등을 공격하여 큰 전공을 세우고 결국 일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양산의 엄주태(嚴柱泰). 전병건 등은 3월 27일 양산장터에서 3천여 군중과 함께 태극기 높이 들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 헌병 경찰의 총칼에 맨손으로 맞서 싸웠다. 4월 1일에도 양산장터에서 2천여 군중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항거하였다. 또한 3월 13일 하북면 신평장터에서도 통도사 승려와 지방학림 학생들이 주동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춘제(春齊) 김철수(金喆壽)는 일본 동경 2.8 유학생 독립선언서 낭독사건의 선도자로 활약하였으며, 우산(右山) 윤현진(尹顯振)은 상해임시정부 재무차장으로서 사재 및 벽산상회 자금 30만원을 헌납, 어려운 임정의 재정을 도맡아 오다가 애석하게도 약관 30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1932년 양산농민조합의거 또한 청사에 빛날 일이다. 당시 일인 대지주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작료 과잉징수를 반대하던 농민조합간부가 일경에 구속되자 농민조합장 전병건(全秉健)의 지휘 하에 조합원 300여명이 총궐기하여 양산 경찰서를 습격, 구속간부의 석방을 요구하다가 조합원 2명이 현장 에서 총격을 받아 숨지고 200여명은 피체되어 혹독한 고문과 옥고에 시달렸다.
1941년 통도중학교의 배일교육 사건으로 김말복(金末福) 선생과 학생들은 일경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고 학교는 1944년 폐교당하였다. 이외에도 양산 출신 애국지사들은 범어사만세운동, 철원애국단, 대한독립단, 대동단, 흥업단, 노동운동, 군자금지원 등에서 많은 활약을 하다가 투옥되거나 순국하였다.
오늘 양산시민의 정성을 모아 선열의 얼을 기리는 높고 거룩한 기념탑을 여기 세운다. 지금 세계 속에 우뚝 선 조국. 웅비하는 양산의 발전상도 이 모두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한 애국선열들이 흘린 피의 대가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양산의 형제자매여! 옷깃을 여미고 그날의 선열들이 펼친 고귀한 희생을 가슴에 새기며 명복을 빌자. 님들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2009년 3월 1일 솔뫼 최해군 짓다
독립운동 유공 포상자 명단
◎ 의병활동
서병희(徐熙) 건국훈장 독립장 / 김성렬(金聖烈) 건국훈장 애국장 / 서두성(徐斗成) 건국훈장 애국장
◎ 임정과 2·8선언
윤현진(尹顯振) 건국훈장 독립장 / 김철수(金喆壽) 건국훈장 애국장
◎ 3·1운동
오택언(吳澤彦) 건국훈장 애족장 / 김형기(金炯璣) 건국훈장 애족장 / 엄주태(嚴柱泰) 건국훈장 애족장 / 전병건(全秉健) 건국훈장 애족장 / 이상환(李相煥) 건국훈장 애족장 / 김상기(金相琦) 건국훈장 애족장 / 차상명(車相明) 건국훈장 애족장 / 김영규(金永奎) 건국훈장 애족장
정주봉(鄭周奉) 건국포장 / 안덕원(安元德) 대통령표창 / 강재호(姜在鎬) 대통령표창 / 류경문(柳敬文) 대통령표창 / 박문영(朴文瑛) 대통령표창 / 박임갑(朴壬甲) 대통령표창 / 손군호(孫君浩) 대통령표창 / 황원석(黃元錫) 대통령표창 / 지용준(池龍俊) 대통령표창 / 박민성(朴敏成) 대통령표창
◎ 농민운동
윤복이(尹福伊) 건국훈장 애국장 / 김장호(金章浩) 건국훈장 애족장 / 김외득(金外得) 건국훈장 애족장 / 정진영(鄭鎭永) 건국포장 / 최달수(崔達守) 건국포장 / 김태근(金泰根) 대통령표창
◎ 개별단체활동
김상헌(金祥憲) 건국훈장 애국장 / 이석윤(李錫允) 건국훈장 애국장 / 김덕봉(金德峰) 건국훈장 애족장 / 이규린(李奎麟) 건국훈장 애족장 / 김인규(金麟圭) 건국훈장 애족장 / 김말복(金末福) 건국훈장 애족장 / 조병구(曺秉球) 건국훈장 애족장 / 서장주(徐璋珠) 건국훈장 애족장 / 김덕조(金德祚) 건국포장
◎ 추록 (2010 이후)
양만우(梁滿佑) 대통령표창 / 한동선(韓東善) 대통령표창
충·효·열의 고을 양산은 신라시대 이래 항일. 호국의 오랜 전통을 이어온 고장이다.
만고충신 삼량주의 박제상은 눌지왕 2년(418) 왜국에 인질로 있던 왕제(王弟) 미사흔(未斯欣)을 구출. 귀국시키고 왜왕의 고문에 의연한 자세로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노라" 하며 충의를 드높여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고려시대 왜구 방어에 큰 공을 세운 양주방어사 김원현(金元鉉). 임진왜란시 동래성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조영규(趙英圭) 군수 등의 호국정신은 양산 사람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내리고 있다. 한말 일제는 총칼로 조국 강토를 유린하고 우리말과 성(姓)을 말살하였으니, 식민역사 35년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으로 잊어서는 안 될 절망과 분노의 상흔을 남기고 있다.
1907년 서병희(炳炳熙) 의병장은 일체가 고종황제를 강제퇴위 시키고 군대를 해산하자 의문을 참지 못해 생업을 버리고 서울로 상경. 허위(許蔿) 의병장 휘하에서 조국 독립의 꿈을 키웠다. 이후 의병 50여명을 인솔하여 경상도 일원을 무대로 일본수비대 · 관공서 일본상인 등을 공격하여 큰 전공을 세우고 결국 일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양산의 엄주태(嚴柱泰). 전병건 등은 3월 27일 양산장터에서 3천여 군중과 함께 태극기 높이 들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 헌병 경찰의 총칼에 맨손으로 맞서 싸웠다. 4월 1일에도 양산장터에서 2천여 군중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항거하였다. 또한 3월 13일 하북면 신평장터에서도 통도사 승려와 지방학림 학생들이 주동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춘제(春齊) 김철수(金喆壽)는 일본 동경 2.8 유학생 독립선언서 낭독사건의 선도자로 활약하였으며, 우산(右山) 윤현진(尹顯振)은 상해임시정부 재무차장으로서 사재 및 벽산상회 자금 30만원을 헌납, 어려운 임정의 재정을 도맡아 오다가 애석하게도 약관 30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1932년 양산농민조합의거 또한 청사에 빛날 일이다. 당시 일인 대지주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작료 과잉징수를 반대하던 농민조합간부가 일경에 구속되자 농민조합장 전병건(全秉健)의 지휘 하에 조합원 300여명이 총궐기하여 양산 경찰서를 습격, 구속간부의 석방을 요구하다가 조합원 2명이 현장 에서 총격을 받아 숨지고 200여명은 피체되어 혹독한 고문과 옥고에 시달렸다.
1941년 통도중학교의 배일교육 사건으로 김말복(金末福) 선생과 학생들은 일경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고 학교는 1944년 폐교당하였다. 이외에도 양산 출신 애국지사들은 범어사만세운동, 철원애국단, 대한독립단, 대동단, 흥업단, 노동운동, 군자금지원 등에서 많은 활약을 하다가 투옥되거나 순국하였다.
오늘 양산시민의 정성을 모아 선열의 얼을 기리는 높고 거룩한 기념탑을 여기 세운다. 지금 세계 속에 우뚝 선 조국. 웅비하는 양산의 발전상도 이 모두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한 애국선열들이 흘린 피의 대가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양산의 형제자매여! 옷깃을 여미고 그날의 선열들이 펼친 고귀한 희생을 가슴에 새기며 명복을 빌자. 님들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2009년 3월 1일 솔뫼 최해군 짓다
독립운동 유공 포상자 명단
◎ 의병활동
서병희(徐熙) 건국훈장 독립장 / 김성렬(金聖烈) 건국훈장 애국장 / 서두성(徐斗成) 건국훈장 애국장
◎ 임정과 2·8선언
윤현진(尹顯振) 건국훈장 독립장 / 김철수(金喆壽) 건국훈장 애국장
◎ 3·1운동
오택언(吳澤彦) 건국훈장 애족장 / 김형기(金炯璣) 건국훈장 애족장 / 엄주태(嚴柱泰) 건국훈장 애족장 / 전병건(全秉健) 건국훈장 애족장 / 이상환(李相煥) 건국훈장 애족장 / 김상기(金相琦) 건국훈장 애족장 / 차상명(車相明) 건국훈장 애족장 / 김영규(金永奎) 건국훈장 애족장
정주봉(鄭周奉) 건국포장 / 안덕원(安元德) 대통령표창 / 강재호(姜在鎬) 대통령표창 / 류경문(柳敬文) 대통령표창 / 박문영(朴文瑛) 대통령표창 / 박임갑(朴壬甲) 대통령표창 / 손군호(孫君浩) 대통령표창 / 황원석(黃元錫) 대통령표창 / 지용준(池龍俊) 대통령표창 / 박민성(朴敏成) 대통령표창
◎ 농민운동
윤복이(尹福伊) 건국훈장 애국장 / 김장호(金章浩) 건국훈장 애족장 / 김외득(金外得) 건국훈장 애족장 / 정진영(鄭鎭永) 건국포장 / 최달수(崔達守) 건국포장 / 김태근(金泰根) 대통령표창
◎ 개별단체활동
김상헌(金祥憲) 건국훈장 애국장 / 이석윤(李錫允) 건국훈장 애국장 / 김덕봉(金德峰) 건국훈장 애족장 / 이규린(李奎麟) 건국훈장 애족장 / 김인규(金麟圭) 건국훈장 애족장 / 김말복(金末福) 건국훈장 애족장 / 조병구(曺秉球) 건국훈장 애족장 / 서장주(徐璋珠) 건국훈장 애족장 / 김덕조(金德祚) 건국포장
◎ 추록 (2010 이후)
양만우(梁滿佑) 대통령표창 / 한동선(韓東善) 대통령표창
추모의 글
충·효·열의 고을 양산은 신라시대 이래 항일. 호국의 오랜 전통을 이어온 고장이다.
만고충신 삼량주의 박제상은 눌지왕 2년(418) 왜국에 인질로 있던 왕제(王弟) 미사흔(未斯欣)을 구출. 귀국시키고 왜왕의 고문에 의연한 자세로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노라" 하며 충의를 드높여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고려시대 왜구 방어에 큰 공을 세운 양주방어사 김원현(金元鉉). 임진왜란시 동래성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조영규(趙英圭) 군수 등의 호국정신은 양산 사람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내리고 있다. 한말 일제는 총칼로 조국 강토를 유린하고 우리말과 성(姓)을 말살하였으니, 식민역사 35년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으로 잊어서는 안 될 절망과 분노의 상흔을 남기고 있다.
1907년 서병희(炳炳熙) 의병장은 일체가 고종황제를 강제퇴위 시키고 군대를 해산하자 의문을 참지 못해 생업을 버리고 서울로 상경. 허위(許蔿) 의병장 휘하에서 조국 독립의 꿈을 키웠다. 이후 의병 50여명을 인솔하여 경상도 일원을 무대로 일본수비대 · 관공서 일본상인 등을 공격하여 큰 전공을 세우고 결국 일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양산의 엄주태(嚴柱泰). 전병건 등은 3월 27일 양산장터에서 3천여 군중과 함께 태극기 높이 들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 헌병 경찰의 총칼에 맨손으로 맞서 싸웠다. 4월 1일에도 양산장터에서 2천여 군중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항거하였다. 또한 3월 13일 하북면 신평장터에서도 통도사 승려와 지방학림 학생들이 주동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춘제(春齊) 김철수(金喆壽)는 일본 동경 2.8 유학생 독립선언서 낭독사건의 선도자로 활약하였으며, 우산(右山) 윤현진(尹顯振)은 상해임시정부 재무차장으로서 사재 및 벽산상회 자금 30만원을 헌납, 어려운 임정의 재정을 도맡아 오다가 애석하게도 약관 30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1932년 양산농민조합의거 또한 청사에 빛날 일이다. 당시 일인 대지주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작료 과잉징수를 반대하던 농민조합간부가 일경에 구속되자 농민조합장 전병건(全秉健)의 지휘 하에 조합원 300여명이 총궐기하여 양산 경찰서를 습격, 구속간부의 석방을 요구하다가 조합원 2명이 현장 에서 총격을 받아 숨지고 200여명은 피체되어 혹독한 고문과 옥고에 시달렸다.
1941년 통도중학교의 배일교육 사건으로 김말복(金末福) 선생과 학생들은 일경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고 학교는 1944년 폐교당하였다. 이외에도 양산 출신 애국지사들은 범어사만세운동, 철원애국단, 대한독립단, 대동단, 흥업단, 노동운동, 군자금지원 등에서 많은 활약을 하다가 투옥되거나 순국하였다.
오늘 양산시민의 정성을 모아 선열의 얼을 기리는 높고 거룩한 기념탑을 여기 세운다. 지금 세계 속에 우뚝 선 조국. 웅비하는 양산의 발전상도 이 모두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한 애국선열들이 흘린 피의 대가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양산의 형제자매여! 옷깃을 여미고 그날의 선열들이 펼친 고귀한 희생을 가슴에 새기며 명복을 빌자. 님들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2009년 3월 1일 솔뫼 최해군 짓다
충·효·열의 고을 양산은 신라시대 이래 항일. 호국의 오랜 전통을 이어온 고장이다.
만고충신 삼량주의 박제상은 눌지왕 2년(418) 왜국에 인질로 있던 왕제(王弟) 미사흔(未斯欣)을 구출. 귀국시키고 왜왕의 고문에 의연한 자세로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노라" 하며 충의를 드높여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고려시대 왜구 방어에 큰 공을 세운 양주방어사 김원현(金元鉉). 임진왜란시 동래성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조영규(趙英圭) 군수 등의 호국정신은 양산 사람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내리고 있다. 한말 일제는 총칼로 조국 강토를 유린하고 우리말과 성(姓)을 말살하였으니, 식민역사 35년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으로 잊어서는 안 될 절망과 분노의 상흔을 남기고 있다.
1907년 서병희(炳炳熙) 의병장은 일체가 고종황제를 강제퇴위 시키고 군대를 해산하자 의문을 참지 못해 생업을 버리고 서울로 상경. 허위(許蔿) 의병장 휘하에서 조국 독립의 꿈을 키웠다. 이후 의병 50여명을 인솔하여 경상도 일원을 무대로 일본수비대 · 관공서 일본상인 등을 공격하여 큰 전공을 세우고 결국 일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양산의 엄주태(嚴柱泰). 전병건 등은 3월 27일 양산장터에서 3천여 군중과 함께 태극기 높이 들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 헌병 경찰의 총칼에 맨손으로 맞서 싸웠다. 4월 1일에도 양산장터에서 2천여 군중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항거하였다. 또한 3월 13일 하북면 신평장터에서도 통도사 승려와 지방학림 학생들이 주동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춘제(春齊) 김철수(金喆壽)는 일본 동경 2.8 유학생 독립선언서 낭독사건의 선도자로 활약하였으며, 우산(右山) 윤현진(尹顯振)은 상해임시정부 재무차장으로서 사재 및 벽산상회 자금 30만원을 헌납, 어려운 임정의 재정을 도맡아 오다가 애석하게도 약관 30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1932년 양산농민조합의거 또한 청사에 빛날 일이다. 당시 일인 대지주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작료 과잉징수를 반대하던 농민조합간부가 일경에 구속되자 농민조합장 전병건(全秉健)의 지휘 하에 조합원 300여명이 총궐기하여 양산 경찰서를 습격, 구속간부의 석방을 요구하다가 조합원 2명이 현장 에서 총격을 받아 숨지고 200여명은 피체되어 혹독한 고문과 옥고에 시달렸다.
1941년 통도중학교의 배일교육 사건으로 김말복(金末福) 선생과 학생들은 일경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고 학교는 1944년 폐교당하였다. 이외에도 양산 출신 애국지사들은 범어사만세운동, 철원애국단, 대한독립단, 대동단, 흥업단, 노동운동, 군자금지원 등에서 많은 활약을 하다가 투옥되거나 순국하였다.
오늘 양산시민의 정성을 모아 선열의 얼을 기리는 높고 거룩한 기념탑을 여기 세운다. 지금 세계 속에 우뚝 선 조국. 웅비하는 양산의 발전상도 이 모두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한 애국선열들이 흘린 피의 대가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양산의 형제자매여! 옷깃을 여미고 그날의 선열들이 펼친 고귀한 희생을 가슴에 새기며 명복을 빌자. 님들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2009년 3월 1일 솔뫼 최해군 짓다
독립운동 유공 포상자 명단
◎ 의병활동
서병희(徐熙) 건국훈장 독립장 / 김성렬(金聖烈) 건국훈장 애국장 / 서두성(徐斗成) 건국훈장 애국장
◎ 임정과 2·8선언
윤현진(尹顯振) 건국훈장 독립장 / 김철수(金喆壽) 건국훈장 애국장
◎ 3·1운동
오택언(吳澤彦) 건국훈장 애족장 / 김형기(金炯璣) 건국훈장 애족장 / 엄주태(嚴柱泰) 건국훈장 애족장 / 전병건(全秉健) 건국훈장 애족장 / 이상환(李相煥) 건국훈장 애족장 / 김상기(金相琦) 건국훈장 애족장 / 차상명(車相明) 건국훈장 애족장 / 김영규(金永奎) 건국훈장 애족장
정주봉(鄭周奉) 건국포장 / 안덕원(安元德) 대통령표창 / 강재호(姜在鎬) 대통령표창 / 류경문(柳敬文) 대통령표창 / 박문영(朴文瑛) 대통령표창 / 박임갑(朴壬甲) 대통령표창 / 손군호(孫君浩) 대통령표창 / 황원석(黃元錫) 대통령표창 / 지용준(池龍俊) 대통령표창 / 박민성(朴敏成) 대통령표창
◎ 농민운동
윤복이(尹福伊) 건국훈장 애국장 / 김장호(金章浩) 건국훈장 애족장 / 김외득(金外得) 건국훈장 애족장 / 정진영(鄭鎭永) 건국포장 / 최달수(崔達守) 건국포장 / 김태근(金泰根) 대통령표창
◎ 개별단체활동
김상헌(金祥憲) 건국훈장 애국장 / 이석윤(李錫允) 건국훈장 애국장 / 김덕봉(金德峰) 건국훈장 애족장 / 이규린(李奎麟) 건국훈장 애족장 / 김인규(金麟圭) 건국훈장 애족장 / 김말복(金末福) 건국훈장 애족장 / 조병구(曺秉球) 건국훈장 애족장 / 서장주(徐璋珠) 건국훈장 애족장 / 김덕조(金德祚) 건국포장
◎ 추록 (2010 이후)
양만우(梁滿佑) 대통령표창 / 한동선(韓東善) 대통령표창
◎ 의병활동
서병희(徐熙) 건국훈장 독립장 / 김성렬(金聖烈) 건국훈장 애국장 / 서두성(徐斗成) 건국훈장 애국장
◎ 임정과 2·8선언
윤현진(尹顯振) 건국훈장 독립장 / 김철수(金喆壽) 건국훈장 애국장
◎ 3·1운동
오택언(吳澤彦) 건국훈장 애족장 / 김형기(金炯璣) 건국훈장 애족장 / 엄주태(嚴柱泰) 건국훈장 애족장 / 전병건(全秉健) 건국훈장 애족장 / 이상환(李相煥) 건국훈장 애족장 / 김상기(金相琦) 건국훈장 애족장 / 차상명(車相明) 건국훈장 애족장 / 김영규(金永奎) 건국훈장 애족장
정주봉(鄭周奉) 건국포장 / 안덕원(安元德) 대통령표창 / 강재호(姜在鎬) 대통령표창 / 류경문(柳敬文) 대통령표창 / 박문영(朴文瑛) 대통령표창 / 박임갑(朴壬甲) 대통령표창 / 손군호(孫君浩) 대통령표창 / 황원석(黃元錫) 대통령표창 / 지용준(池龍俊) 대통령표창 / 박민성(朴敏成) 대통령표창
◎ 농민운동
윤복이(尹福伊) 건국훈장 애국장 / 김장호(金章浩) 건국훈장 애족장 / 김외득(金外得) 건국훈장 애족장 / 정진영(鄭鎭永) 건국포장 / 최달수(崔達守) 건국포장 / 김태근(金泰根) 대통령표창
◎ 개별단체활동
김상헌(金祥憲) 건국훈장 애국장 / 이석윤(李錫允) 건국훈장 애국장 / 김덕봉(金德峰) 건국훈장 애족장 / 이규린(李奎麟) 건국훈장 애족장 / 김인규(金麟圭) 건국훈장 애족장 / 김말복(金末福) 건국훈장 애족장 / 조병구(曺秉球) 건국훈장 애족장 / 서장주(徐璋珠) 건국훈장 애족장 / 김덕조(金德祚) 건국포장
◎ 추록 (2010 이후)
양만우(梁滿佑) 대통령표창 / 한동선(韓東善) 대통령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