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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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57-11
탐방로그
양산 충렬사는 양산시 교동 157-11에 위치하며, 양산의 삼조의열을 비롯 임진왜란 공신 및 항일 독립유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 건립되었다 훼손된 것을 2012년 재건립하였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義烈門(의열문)
忠烈祠(충렬사)
양산시 공식블로그(2019.3.6.)에 따르면, 양산 출신 항일독립유공자는 43명이며, 그 중 39명은 충렬사에 배향되어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서병희(徐炳熙 1867~1909) 윤현진(尹顯振 1892~1921) 김상헌(金祥憲 1893~1945) 김성렬(金聖烈 미상~1909) 김철수(金喆壽 1896~1977) 서두성(徐斗成 미상~1908) 윤복이(尹福伊 1884~1932) 이석윤(李錫允 1899~1986) 김말복(金末福 1909~1985) 이상환(李相煥 1897~1943) 김덕봉(金德峰 1898~1969) 김상기(金相琦 1894~1953) 김영규(金永奎 1899~1952) 김외득(金外得 1912~1993) 김인규(金麟圭 1922~1986) 김장호(金章浩 1913-1939) 김형기(金炯璣 1896~1950) 서장주(徐璋珠 1921~1989) 엄주태(嚴柱泰 1900~1928) 오택언(吳澤彦 1897~1970) 이규린(李奎麟 1856~1937) 전병건(全秉健 1899~1950) 조병구(曺秉球 1907~2003) 김덕조(金德祚 1914~1947) 정주봉(鄭周奉 1901~1959) 정진영(鄭鎭永 1908~1982) 최달수(崔達守 1916~1962) 김태근(金泰根 1915~1963) 박문영(朴文瑛 1871~1943) 박민성(朴敏成 1887~1943) 박임갑(朴壬甲 1902~1990) 손군호(孫君浩 1902-1976) 안덕원(安德元 1898~1922) 양만우(梁萬佑 1897~1968) 지용준(池龍俊 1894~1971) 한동선(韓東善 1915~1966) 황만우(黃滿宇 1901~1952) 강재호(姜在鎬 1901~1986) 류경문(柳敬文 1890~1950)

양산신문(2023.3.3.일자) 기사에 따르면, 아래의 독립유공자 3분을 충렬사에 더 모신다고 나와 있다.

강성옥(姜性玉 1877~미상) 양춘도(楊春到 1902~미상) 이영우(李永雨 1899~1938)

그렇게 되면, 총 42분의 위패를 봉안하게 된다.
양산 충렬사(梁山 忠烈祠)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이 곳 충렬사는 양산 정신의 근간인 삼조의열 3위를 비롯해 임란공신 28위, 항일독립운동유공자 39위의 충혼을 모신 곳으로 조선시대에 건립됐다 훼철된 것을 2012년 장소를 달리하고 규모을 키워 새롭게 건립하였다. 옛 충렬사는 임란공신 조영규(趙英圭)공과 백수회(白受繪) 공을 향사하고자 1696년(숙종 22) 양산읍성 내의 동헌 남쪽에 건립됐으나 1868년(고종 5) 서원들의 철폐령에 의해 훼철(毁撤)되었다. 삼조의열은 신라때 삽량주간이었던 만고충신 박제상(朴堤上)공, 고려 때 양주방어사였던 김원현(金元鉉)공, 조선 임진왜란 때 양산군수 조영규(趙英圭)공을 일컫는다. 이들의 비석이 양산읍성 내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동한 피란신세를 겪었고, 광복 후 지역 원로들이 조성한 춘추원 장충단(奬忠壇)에 모셔져 오다 이곳 새 충렬사 내로 옮겨졌다. 또한 임란공신과 항일독립운동유공자들도 이곳에 함께 모시게 됨으로써 흩어진 양산 선각자들의 혼령을 한 곳에서 모시고 길이 추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우리 시민들은 이곳 충렬사 재건과 함께 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기며, 충렬사를 후손들의 애국애족과 애향심을 일깨우기 위한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獎忠門(장충문)
春秋齋(춘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