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두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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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205-1 순교자김범우기념성모동굴성당 뒤편
탐방로그
묘 안내판에서는 본 묘의 위치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100-1로 가리키고 있으나, 본 주소는 묘가 있는 넓은 산 전체를 포괄한다. 대신,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205-1 순교자김범우기념성모동굴성당 뒤편의 흰 울타리 너머의 자갈길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찾을 수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 김성두 선생의 묘
(위치 : 삼랑진읍 용전리 100-1번지)
- 1km 전방 -
밀양시장
애국지사 김성두 선생의 묘
- 성모동굴성당 뒷길 100m -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100-1 순교자 김범우 기념 성모동굴성당 뒤편 애국지사 김성두의 묘를 찾아가고 있다.
순교자 김범우 기념 성모동굴성당 뒤편인, 이 문 너머 자갈길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안내판과 함께 김성두 선생의 묘소가 보인다.
愛國志士 錦灘 金成斗 之墓(애국지사 금탄 김성두 지묘)
애국지사 김성두 선생의 묘(愛國志士 金成斗 先生 之墓)
이 곳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인 김성두(金成斗), 1885.8.15~1952.12.1) 선생을 모셔 놓은 묘소이다. 김병두(金昞斗)라는 이름도 사용하였다. 선생은 1913년 9월 임병찬((林炳瓚) 등을 중심으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가 조직되자, 1914년 5월 그도 이에 참가하였다. 고종은 비밀리에 칙령을 내려, 그를 '독립의군부 육군정위 및 경상남도 소모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독립의군부의 조직 및 활동이 일제에 탐지되어 체포령이 내려지자, 1916년까지 강원도 통천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1917년 4월 만주로 망명하였다가 다시 국내로 잠입하여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각지를 옮겨 다니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2011. 9 밀양시장
愛國志士 錦灘 金成斗 之墓(애국지사 금탄 김성두 지묘)
애국지사 금탄 김해김공 묘갈명 병서
대의는 태산보다 중하고 생명은 홍모보다 경함은 고금 의사의 본분이 아니었던가. 저 낙동강 한 굽이 우뚝 선 만어산 기슭에 고고히 탄생한 그 분이 바로 지사 금탄 김선생이다. 공은 가락왕 및 흥무왕 유신의 후예로 이조 임란시 창의하여 많은 전공을 세워 양산 세덕사에 봉안된 판서공 휘 영호와 참의공 휘 의상의 19대손이다. 고의 휘는 창일이며 비는 광주김씨요 공의 휘는 성두요 자는 기찬이며 금탄은 그의 호이다. 이조 고종 22년 을유 8월 25일에 생하고 초배는 밀양박씨이며 후배는 단양
우씨이다. 공은 본래부터 강직한 천성과 개결한 지조와 명철한 재예로서 경사에 소양이 깊었으며 소시로부터 우국애족에 관심을 가졌다. 1907년경 한말을 당하여 민족은 도탄에 빠지고 국가는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 이때 경기 양주에서 창의대장 이인영의 대일항쟁에 분연히 참가하여 활동하였으며 그 익년에는 순국한 이강년의 유지를 받아 소백산을 중심하여 의병간의 많은 연락을 계속했다. 그러나 국운의 부진으로 한일합병이 늑성되자 누년간 망명생활로서 국내외를 왕래하였으니 만주에서 부민단의 이상룡 등과 활동을 같이하고 국내에서는 독립의군부를 창설하여 국권반환을 왜정에 항의했던 임병찬 등과 제휴하여 항일투쟁에 심혈을 다함에 고종황제로부터 가선대부 독립의군부 소모관의 칙지를 받았고 급기 3.1운동이 전개되자 오세창 권동진과 깊은 유대를 맺었다. 이로서 공은 7년간 의병투쟁과 8년간 지하운동과 수십년간 피신생활로서 청장기를 남김없이 조국광복에 기여하였고 또 오매의 숙제이던 8.15 해방을 생전에 맞이하고 68세를 일기로 영면하셨으며 1980년에는 독립유공으로 국가의 훈전에 등록되었으니 오- 그 의지 그 생애 참으로 거룩하시어라. 공의 묘는 삼랑진 용화동 을좌원이요, 배 우씨와 쌍분하다. 슬하에는 3남 3녀가 있으니 다 우씨 출이다. 남에는 용규 용순 용단이요. 서에는 손기태 신현재 이구범이며 용규의 자는 우곤이요. 용순의 자는 형준 학준 범준 희준 홍준이요. 용단의 자는 치준이다. 명왈
天賊人材(천적인재)에 各以時適(각이시적)이라. 治日寛柔(치일관유)요 亂世剛直(난세강직)이라. 公生韓末(공생한말)에 視死如職(시사여직)이라. 匪鐡其膓(비철기장)이며
匪火其魄(비화기백)가 國之將兦(국지장무)에 顛倒風雲(전도풍운)하고 國乃云兦(국내운무)에 跋渉南北(발섭남북)하니 以國使命(이국사명)이라. 遑恤寝食(황휼침식)가 星霜二十(성상이십)에 夜行晝伏(야행주복)이라. 毅烈血集(의열혈집)에 天日乃復(천일내복)이라. 頑彼滔滔(완피도도)는 能不羞絶(능불수절)가 庭有継武(정유계무)에 不墜柯則(불추가칙)이라. 公家忠義(공가충의)는 弓箕之業(궁기지업)이라. 邦典是崇(방전시숭)에 永褒淸績(영포청적)하니 貞珉煌煌(정민황황)에 不滅其光(불멸기광)이로다.
서기 1983년 8월 30일
대한광복회장 김상길 근찬
벽진 이언철 근서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산 129-3 김범우 묘 안내석 옆 애국지사 김성두 묘소 안내판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