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홍표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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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476-2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밀양 독립운동의 선구자 을강 전홍표 선생 묘소가는 길이다.
전홍표(全鴻杓, 1869~1929)는 일찍이 한학을 공부하였고, 1906년 밀양향교 명륜당 자리에서 시헌 안희원이 중심이 되어 개교한 진성학교 교사를 거쳐, 동화학교를 설립하여 학생들에게 자주독립과 애국사상을 고취하며 항일교육운동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밀양만세운동 지도자들에게 거사를 지도하였고, 만세운동을 교사한 혐의로 인하여 일제 경찰의 검거를 피해 북간도로 피신하였다.
이 곳에서 일제의 폭력적 3·1운동 진압 아래 조선을 해방시키는 방법은 오로지 무장투쟁이라는 투쟁방법 밖에 없음을 다시 천명하는 내용의「고천문(告天文)」을 지었다. 이후에도 밀양에서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4년 전후 밀양의 향교에 설립된 집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길을 찾으면 안되고, 안내판 뒤쪽 가파른 산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독립운동의 선구자로 되어 있어서, 큰 비석이 서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다.
學生旌善全公諱鴻杓 配密城朴氏合(학생정선전공 휘 홍표 배 밀성박씨 합) 묘

약산 김원봉과 석정 윤세주는 앞뒤집으로 형, 동생하면서 자라났다. 이 두 사람은 같이 서당에 다녔고, 같이 밀양 공립보통학교에 다녔고, 경술국치후 제1차 천황생일날 같이 변소칸 에 일장기를 쑤셔 처넣어 같이 구타를 당하고 같이 자퇴한다.
그리고 같이 사립 동화학교를 다녔고, 같이 신흥무관학교를 다녔고, 같이 의열단을 창단했고, 같이 조선혁명정치군사 간부학교를 만들었고, 같이 조선민족혁명당을 창단했고, 같이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이 두 밀양사람의 일생이야 말로 20세기 무장투쟁에 가장 기나긴 역사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에게 민족정기를 불어넣어준 두 밀양의 선생이 있다.
한분은 사립 동화학교 교장 올강 전홍표(全鴻杓,1869~1929) 또한분은 백민 황상규(黃尙奎,1891~1931)이다.
출처 : 밀양 아리랑 -약산 김원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