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 507-1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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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눌 노상직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선비로서 지조와 양심을 지키며, 수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던 분이다. 소눌 선생이 1913년 만주에서 돌아와 저술과 강학을 펼쳤던 자암서당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무릉리 354에 있으며 문화재자료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마을은 대눌 노상익(盧相益 1849~1941)과 소눌 노상직(盧相稷 1855~1931) 형제를 배출한 마을이다. 두 분의 호에는 말 더듬을 눌(訥)이 있는데 두 형제의 스승이었던 성재 허전(1797~1886)이 가르친 "달변보다는 더듬는 게 낫다"며 말을 아끼고 실천은 중시하려 했던 다짐을 엿 볼 수 있다.
마을 입구에 못미쳐 소눌의 묘비가 있으며 마을 뒤편으로는 대눌이 여생을 마친 천산재와 광주 노씨 문중의 선산이 있다. 대눌 선생과 소눌 선생은 1910년, 고령의 나이에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에서 유민을 가르치고 인재를 키웠다.
대눌 선생은 74살에 금곡마을로 돌아와 천산재(天山齋)를 짓고 두문불출하다 93살인 1941년 11월 12일에 돌아가 천산재 뒤 산비탈에 묻혔으며 아우인 소눌 선생은 1919년에 3·1만세운동의 주동에서 소외됐던 전국 유림이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의 '파리장서'에 서명해 제자 14명과 함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밀양에는 소눌 선생이 강학하던 자암서당도 있고 저술의 목판도 있으며 학술대회가 개최되기도 하지만, 정작 고향인 김해엔 마을입구의 노거수들과 동구 밖에 혼자 남은 묘비밖에 없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處士 小訥 盧先生 之墓(처사 소눌 노선생 지묘)
處士 小訥 盧先生 之墓(처사 소눌 노선생 지묘)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 507-1 쇠실마을 정자나무 들어가기 전 소눌 노상직의 구 묘비를 찾아왔다.
노상직 선생의 유택을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 후 예전 묘비를 이곳에 모셔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