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10-1
- 탐방로그
- 후포마을입구 오른쪽 언덕에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경남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10-1 후포마을입구 오른쪽 언덕 의사 용강 최현호 선생 기적비를 찾아왔다.
義士 龍岡 崔公 紀蹟碑(의사 용강 최공 기적비)
희라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조국 강산이 경술년 국치를 당하여 국권과 예의문물이 일조에 간악한 왜노들의 마수에 약탈당하니 이에 항거하여 구국일념에 불타는 수 많은 애국지사들은 혹은 해외에서 혹은 국내에서 국권회복을 위하여 와신상담하며 우국애정으로 암약하였으며 이에 상응하여 우리 민중은 적수공권으로 총인을 무릅쓰고 기미 3월 고종 인산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일제히 봉기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독립선언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함에 그 함성이 전 강토에 메아리치니 이는 왜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을 뿐 아니라 우리 단일 백의민족의 의분이 왜적들의 불의에 항거하는 장거로서 이는 곧 세계민족사에도 찬란히 빛나는 우리나라의 3.1독립운동이다. 이때 이 고장에도 한의사 있으니 성은 최씨요 휘는 현호이며 자는 성호요 호는 용강이라. 자유시로 천품이 강직하고 풍의가 장엄하여 군계 중에 일학이요 당당한 대의와 열열한 정신은 그의 기절이라.
때마츰 상경하였든 김종훤 공이 독립선언문을 의금에 비장 귀향한지라 이에 공은 홀연 분발하야 지방 천여 동지와 의거책을 모의하고 그 중 명망이 고매한 김승태 옹을 총지휘자로 추대하여 4월 12일 정오 장유면 대청천에서 용략거사하니 불시에 수천 명 군중이 문풍 운집하여 고창한 만세성은 산천을 진동시켰다. 이에 출동한 잔인무도한 일헌들은 군중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무자비한 흉탄에 3인의 동지가 불행하게도 현장에서 순국하고 공은 왜경에게 체포되여 혹독한 고문에도 강장한 의지는 백절불굴하고 1년 간의 옥고를 치르니 이것이 곧 전국에서도 가장 치열했든 본 고장의 3.1독립운동이다. 차부라 공은 출옥 후에도 왜경의 가혹한 감시로 고토안착이 불가능하여 서울 만주 등지로 유리 방랑하며 포부에 사모친 망국의 한을 달래며 장구한 이십여 성상을 즐풍목우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공의 사적은 경상남도 운동사와 용두산 3.1기념탑에 소재되였으며 서기 1983년 8월 31일에 대통령 표창장이 하달되였다. 최씨 본관은 경주이니 문창후 고운 선생 치원의 후예라 고조는 주우이며 증조는 사용이며 조는 세순이며 고는 준수이니 통정대부 삼품관의 과자를 제수하였다. 비는 숙인 김해김씨 여홍의 녀이다. 공은 총훈공의 제5남으로 고종 을축년에 탄생하여 갑인 10월 2일에 서거하시니 향수 86세라. 장유면 유하리 후보산 울곤 좌원에 안장하섰고 배는 김해김씨 상인의 녀이니 공묘와 쌍분이시다. 2남에 해윤 해근이며 서에 여산 송장옥이다. 7손 남에 동운 동환 동벽은 장방출이요. 동필 동수 동정 동식은 차방출이라. 자고 이래로 우국지사들의 업적이 대소의 차는 있어도 그 숭고한 애국정신이야 엇지 다르리요. 한 민족의 충간의장이 한결같이 공과 같으면 방국의 치욕은 아예 없었으리라. 아- 영령이시여. 구원에서도 이 조국강산을 묵우하시라. 공의 후손이 사단법인 삼일동지회 김해지부의 동의 협찬을 얻어 고장인 후포대로방에 기적비를 건립하고 공의 유적을 추모하고저 그 장남 해윤과 종자 영홍이 삼일동지회를 대표한 신현도 권영섭을 동반하고 나에게 비문을 청함에 가장과 독립운동사 및
지방 전체에 의거하여 삼가 집필 찬문한다. 명왈
偉哉我公(위재아공)은 賦性明剛(부성명강)이라. 風儀磊落(풍의뇌락)하고 氣海汪洋(기해왕양)이라. 邦運不幸(방운불행)에 島倭跳跟(도왜도근)이라. 己未三一(기미삼일)은 風雨東方(풍우동방)이라. 高唱復國(고창복국)하니 義憤執腔(의분집강)이라. 或絏以因(혹설이인)하고 或殉以邦(혹순이방)이라. 公苦泰獄(공고태옥)이 經歲鐵窓(경세철창)이라. 山河黪黷(산하참독)하고 倭奴獗猖(왜노궐창)이라. 放浪遼野(방랑요야)에 卄有星霜(입유성상)이라. 圖復國權(도복국권)에 敵愾堂堂(적개당당)이라. 事雖未就(사수미취)나 其志猶彰(기지유창)이라. 事載紀史(사재기사)하고 且下褒章(차하포장)이라. 凡我鄕黨(범아향당)이 慕思孔長(모사공장)이라. 伐石揭辭(벌석게사)하야 以詔無窮(이조무궁)이라.
대한민국 67년 3월 1일 전주 이우섭 찬, 안동 권응룡 서
偉哉我公(위재아공)은 賦性明剛(부성명강)이라. 風儀磊落(풍의뇌락)하고 氣海汪洋(기해왕양)이라. 邦運不幸(방운불행)에 島倭跳跟(도왜도근)이라. 己未三一(기미삼일)은 風雨東方(풍우동방)이라. 高唱復國(고창복국)하니 義憤執腔(의분집강)이라. 或絏以因(혹설이인)하고 或殉以邦(혹순이방)이라. 公苦泰獄(공고태옥)이 經歲鐵窓(경세철창)이라. 山河黪黷(산하참독)하고 倭奴獗猖(왜노궐창)이라. 放浪遼野(방랑요야)에 卄有星霜(입유성상)이라. 圖復國權(도복국권)에 敵愾堂堂(적개당당)이라. 事雖未就(사수미취)나 其志猶彰(기지유창)이라. 事載紀史(사재기사)하고 且下褒章(차하포장)이라. 凡我鄕黨(범아향당)이 慕思孔長(모사공장)이라. 伐石揭辭(벌석게사)하야 以詔無窮(이조무궁)이라.
대한민국 67년 3월 1일 전주 이우섭 찬, 안동 권응룡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