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산99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목적지는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산99로 설정했다.
조금 더 올라오자 묘소가 보였다. 오른쪽 길이 올라온 길이다.
愛國志士 靑松沈公 載仁 之墓(애국지사 청송심공 재인 지묘)
애국지사 청송 심공 재인 묘문
대한독립 애국지사 청송 심공 재인 지묘
천왕산 한자락 양좌원에 자리한 합분은 고 독립지사 심재인 공과 배 강분선 여사 내외의 영면 유택이다. 공은 청송심씨로 세종대왕의 국구이신 청천부원군 익안효공 휘 온의 21세손이며 조의 휘는 상응이요. 1918년 무오 10월 6일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177번지 택에서 부 심수열과 모 김돈선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유시부터 청수한 용모에 재지와 정의성이 이범하였다. 공은 고성 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하고 은사 이구희 선생의 주선으로 1938년 일본 간조농업학교에 입학 재학 중 일본인들의 한국인 학생에 대한 심한 차별대우로 많은 분노를 느끼고 언제나 우리의 조국과 문언이 짓밟힌 채 이렇게 당할 수 만 없다는 적개심에서 먼저 몇 동지와 뜻을 같이하여 항일 조국독립
대한독립 애국지사 청송 심공 재인 지묘
천왕산 한자락 양좌원에 자리한 합분은 고 독립지사 심재인 공과 배 강분선 여사 내외의 영면 유택이다. 공은 청송심씨로 세종대왕의 국구이신 청천부원군 익안효공 휘 온의 21세손이며 조의 휘는 상응이요. 1918년 무오 10월 6일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177번지 택에서 부 심수열과 모 김돈선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유시부터 청수한 용모에 재지와 정의성이 이범하였다. 공은 고성 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하고 은사 이구희 선생의 주선으로 1938년 일본 간조농업학교에 입학 재학 중 일본인들의 한국인 학생에 대한 심한 차별대우로 많은 분노를 느끼고 언제나 우리의 조국과 문언이 짓밟힌 채 이렇게 당할 수 만 없다는 적개심에서 먼저 몇 동지와 뜻을 같이하여 항일 조국독립
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고 1940년 임우칠 동지의 하숙집에서 공을 비롯한 박근철 이상만 박응구 이재관 외 10여 명의 동지들이 밀회하여 거사 실행을 위한 계획을 모의하고 공을 단장으로 재일학생단을 조직하여 국내외에서 활동 중 1942년 2월 경북 예천에서 이상만 외 몇몇 동지들이 밀회하던 차 심부름 아이의 실수로 예천경찰서 한국인 형사 고송이란 자에게 조직문서가 발각되어 나라 안팎에서 활동하던 80여 명의 단원 모두가 왜경에 체포되어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였다. 공은 대구형무소에서 약 1년간 미결수로 있다가 1943년 5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동지들 중 가장 많은 형량으로 징역 4년을 수형하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15 광복절을 맞아 출감되었다. 그러나 일찍 뜻한 바 입신 대망의 큰 꿈을 이루지도 못한 채 일제 치하의 무자비한 고문의 여독과 오랜 수형생활 끝에 체약으로 인하여 1950년 경인 6월 16일 33세의 짧은 향년으로 불행하게 생애를 마감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하늘도 무심타 않으리오. 모든 사실 행적은 당시 법원판결문을 비롯하여 경상남도 항일 독립운동 인물록 국가 독립유공자 공훈록 고성 향토수호사 및 고성인의 자랑편 등에 상기되었으며 1990년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 강씨는 진양 강형숙의 녀로 1917년 정사 1월 6일생이며 공과 혼인하여 천신만고의 한 세상을 사시면서도 정숙한 부덕과 인일기백 정신으로 어린 자녀 훈육에 최선을 다하며 문호 유지는 물론 사회에 필요한 인물로 모두 성취시키신 여장부였으며 2005년 음 정월 20일 향년 89세 입 고종하였다. 슬하에는 남 진표 의표와 녀 갑자를 두어 진표는 김녕 김대권의 녀 미옥을 처로 맞아 자 성민과 효민 녀 현정을 두고 의표는 평택 임승택의 녀 순옥을 처로 맞아 자 일민과 현민을 두고 녀 갑자는 진양 강성래와 혼인하여 자 성완을 두었다. 또한 장남 진표는 새마을운동가로서 농협조합장 등 농민운동가로서 지역사회의 충직한 역군으로 새마을동장 협동장을 차남 의표는 이 나라의 중수 언론인으로서 민주화운동의 유공자로서 국민훈장 목란장을 각각 받아
1가 3부자 모두가 국가 유공 훈장으로 빛났으니 이는 참으로 고금에 한견지사라 아니할 수 없도다. 공의 효자 형제가 선친을 조실하고 그간 효도 한 번 못한 애한을 가슴에 묻어오다가 별세 반백년을 이미 넘기면서 묘비 건립을 도모하고 각석할 글을 여에게 간청하기에 그 효사지청을 저버릴 수 없어 불문하나마 삼가 가우서술하여 생시 공께서 국난의 위기 앞에서 일신의 영달과 안위를 돌보지 않고 오직 보국위충의 일념으로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던 불굴의 애국정의 사상은 만고의 귀감으로 영원히 빛나리라
서기 2005년 을유 정월 일 건수
고성문화원 향토사연구원장 허태동 지음
서기 2005년 을유 정월 일 건수
고성문화원 향토사연구원장 허태동 지음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산99 선영 애국지사 심재인의 묘를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