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연교리 34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扶閼齋(부알재)
성암사(聖巖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1호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연교리
한말의 우국지사 이주환과 그의 스승인 송병선, 송병순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다.
송병선[1836~1905]은 송시열의 9세손이며 송병순의 형이다. 조선 후기 문인이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고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송병선은 국권을 빼앗긴 뒤 자결하였다. 이주환은 고종 황제가 서거하자 자신의 민적을 찢어버리고 침류정에서 사세시(辭世詩) 한 수를 남기고 순국했다.
이 세사람을 배향하기 위해 1924년에 사당을 건립했는데, 사당은 맞배지붕의 목조기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고 만인재도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 재실 건축으로서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항일운동사와 관계된 인물의 역사적인 기념지이자 향토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로서 현재 거창의 유림들을 교육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1호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연교리
한말의 우국지사 이주환과 그의 스승인 송병선, 송병순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다.
송병선[1836~1905]은 송시열의 9세손이며 송병순의 형이다. 조선 후기 문인이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고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송병선은 국권을 빼앗긴 뒤 자결하였다. 이주환은 고종 황제가 서거하자 자신의 민적을 찢어버리고 침류정에서 사세시(辭世詩) 한 수를 남기고 순국했다.
이 세사람을 배향하기 위해 1924년에 사당을 건립했는데, 사당은 맞배지붕의 목조기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고 만인재도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 재실 건축으로서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항일운동사와 관계된 인물의 역사적인 기념지이자 향토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로서 현재 거창의 유림들을 교육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成仁門(성인문)
萬仞齋(만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