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동맹휴학의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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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과정리 199-4
탐방로그
경남 신원초등학교에서 있었던 동맹 휴학 의거는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후 이 사건의 목격자 및 주도자들의 증언에 의해 알려졌다고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거창군 신원면 과정리 199-4 신원초등학교 내 항일동맹휴학의거비를 찾았다.
항일동맹 휴학의거비
신원초등학교(당시 : 신원공립국민학교)의 항일동맹휴학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에 있던 1942년 10월 10일 5,6학년 학생들이 일제 식민지 민족말살교육에 항의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난 의거이다.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한국인 교장 이기영을 폭행하는 등 전회을 일삼던 일본인 교사 다카하시 마사히데의 탄압에 항쟁하여 의로운 기개로써 항일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일제 경찰은 초등학교에 불과한 5,6학년 학생 전원을 신원파출소(당시:주재소)와 양조장등으로 연행하여 3일동안 문초를 했고 주동자로 판명된 5명의 학생은 거창경찰서에 이송 무려 11일동안 미결수 감방에 구금까지 하면서 탄압했다. 이 동맹 휴학의거는 지금까지 역사의 뒤편에 가려져 있었다. 당시 의거에 직접 참가했다가 구금되었던 6학년 박순유, 박윤종, 신종섭, 서판수 5학년 정상술등 5명중 생존동문 박윤종, 서판수와 5학년생 박현기, 신성범 그리고 동문 16명의 증언으로 이 역사적 사실을 세상에 드러났다. 이 사건은 당시 태평양전쟁(1941)을 일으켜 학생들까지 전쟁에 동원하는 비상전시체제를 가동하던 일제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또한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극히 이례적으로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생들이 일으킨 유일한 동맹휴학으로 일제 식민통치아래에서 그들이 높이 들었던 항일의 횃불은 우리나라 학생 항일운동사에 길이 타오를것이다. 이에 신원초등학교 동문회에서는 항일동맹휴학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모든 동문의 뜻을 모아 이 자리에 빗돌을 세운다. 2004년 7월 일 조익현 짓고, 김래문 쓰다.
그 날을 기리는 시
언제 어디서든 우리 떳떳할 수 있음은 그때 신원 고을에서 조막손 앳된 마음에 민족 자존의 의기 솟구쳐 뜻을 행동으로 나타냈음이다.
군국주의 일본인 교원이 전시임을 빙자 이 교정에서 한국인 교장을 욕보이자 상급생들이 분연히 들고 일어나 동맹휴학으로 그 부당함을 규탄했거니
오, 1942년의 어둠이 우리 강토를 온통 덮씌울 수야 배달겨레 뜨거운 숨결을 속속들이 잠재울 수야
그날의 애틋한 의로움이 해해마다 꽃다이 되새겨져 여기 청정한 빗돌 하나 세우느니 민족혼이여, 이에 더욱 푸를지라
2004년 7월 일 신중신 짓고, 김래문 쓰다.
추진위원장 : 이일우 이무진
감사 : 이상근 홍승구
부위원장 : 김진석 김진묵
사무국장 : 임채삼
총무 : 임재동
항일 동맹 휴학 의거 비 건립

일제의 황국신민화 교육에 맞서 구국의 정신으로 동맹휴학을 일으킨 모교 선배님들의 이 저항운동은 일제시대 국내외서 일어난 수많은 저항 운동 중 초등학생이 일어킨 유일한 사건이다. 그러나 광복 후 지금까지 역사의 뒤꼍에 묻혀 있는 것을 여러 동문들의 도움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모교 동문들은 이 놀랍고 숭고한 정신이 깃든 선배님들의 저항운동을 영원히 기리고 귀감으로 삼고자 전 동문들의 뜻을 모아 빗돌을 세웠다.
2004. 7 기념비 건립 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