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종석 유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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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 2252
탐방로그
곽종석 유적비는 경남 거창에 있다.
면우 곽종석선생 유적비는 중촌리 마을회관 위쪽으로 올라가면 있으며, 면우선생 다전기적비에서 면우 곽종석선생 유적비까지는 130m로, 도보로 2분 정도 소요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선생 유적
이 곳은 한말 유림의 영수 면우선생께서 은거하던 곳이다. 선생은 조선 헌종 12년(서기 1846년) 경남 단성에서 태어나 삼가 신지방(신원면)과 태백의 금대등을 거쳐 건양 원년(선생 51세) 다전(茶田)에 정착하시어 여제(如劑)를 세우고 천여명의 문인에게 학문을 강술하였다. 음보(陰補)로 중추원 의관이 되고 참찬을 거쳐 시독관을 겸하였다. 선생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한 이진상(李震相)으로 부터 성리학을 이어받아 주리(主理)를 정론(定論)하셨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폐기와 매국노의 처형을 상소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비분 통곡하였으며 3.1운동때에는 전국 유림대표 137명을 창솔(倡率)하고 파리의 만국평화 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낸 후 옥고를 치르다가 74세를 일기로 여제에서 영면하셨다.
마을회관 앞에서 좀 더 올라가자 면우 곽종석 선생 유적비가 있었다.
면우 곽종석선생 유적비
이 유적비는 항일독립운동을 하시다가 51세 때부터 이곳에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하신 한말 유림 면우 곽종석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면우 곽종석 선생은 1846년 6월 24일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초포에서 출생하여 1905년 한일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본 조약의 체결에 앞장섰던 을사오적 참수를 상소하였고, 1919년 파리만국평화회의가 열릴때 한국유림 137인의 대표로서 한국독립청원서를 전달하여 한일합방의 부당성을 세계만방에 천명하는 등 일생을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으며 이로 인하여 왜경에 구금, 투옥되었다가 병보석되어 동년 8월 24일 거창군 가북면 다전 여재에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