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거제시 하청면 실전리 산68-3
- 탐방로그
- 서환수 기념비는 경남 거제에 있으며, 서환수(徐桓洙)의 이명은 한자만 다른 서환수(徐煥洙)와 서정수(徐丁洙)가 있다. 애국지사 서환수선생 기념비 근처에는 칠천도 다리 버스 정류장이 있으며, 360m 떨어져 있어 도보로 5분 정도 소요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천품이 호방하고 재기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명망을 받았으나,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를 맞아 의기가 북받치어 한갓 낭인생활로 울화를 풀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 불혹을 넘긴 1930년 나라를 위해 몸 바치기로 결심하고, 동지 유쾌동(柳快東)과 함께 「국치를 잊지 말고 독립운동에 투쟁하자」라는 격문을 대구 시내 일원에 부착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 역 8개월의 형을 치르게 된다.
출옥 후에도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향리의 주민 뿐 아니라 일가친척들조차 선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원했지만 오로지 그의 일념은 조국의 독립에 뜻을 두었기에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어렵고 힘든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옥고에서 얻은 고문 후유증으로 1940년 8월 13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대구에서 서거하셨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8월 15일 제 58회 광복절을 맞아 선생에게 대통령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 고장은 선생이 태어난 터전이요, 조국광복을 위해 불타는 정성을 가꾸신 곳이다. 선생의 드리우신 그 높은 정신을 천추에 전하고자 뜻있는 분들이 성력을 모아 선생을 기념하는 비를 세운다.
2009년 12월 일
하청면지 편찬위원회 위원장 활석(活石) 김백훈 근찬
출옥 후에도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향리의 주민 뿐 아니라 일가친척들조차 선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원했지만 오로지 그의 일념은 조국의 독립에 뜻을 두었기에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어렵고 힘든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옥고에서 얻은 고문 후유증으로 1940년 8월 13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대구에서 서거하셨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8월 15일 제 58회 광복절을 맞아 선생에게 대통령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 고장은 선생이 태어난 터전이요, 조국광복을 위해 불타는 정성을 가꾸신 곳이다. 선생의 드리우신 그 높은 정신을 천추에 전하고자 뜻있는 분들이 성력을 모아 선생을 기념하는 비를 세운다.
2009년 12월 일
하청면지 편찬위원회 위원장 활석(活石) 김백훈 근찬
애국지사 서환수(徐桓洙) 선생 기념비
애국지사 서환수(徐桓洙) 선생 기념비
나라를 잃은 원통함과 비분강개함이 누구에게나 없으라마는 여기 하청 땅에서도 분연히 몸을 일으켜 조국 독립운동에 큰 자취를 남기신 분이 계시니 바로 서환수 선생이시다.
선생은 달성인(達城人)으로 이름은 환수(桓洙)요 자(字)는 환수(煥洙) 또는 정수(丁洙)로 1888년 3월 1일 거제시 하청면 연구리 386번지에서 서석찬(徐錫贊) 공의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나라를 잃은 원통함과 비분강개함이 누구에게나 없으라마는 여기 하청 땅에서도 분연히 몸을 일으켜 조국 독립운동에 큰 자취를 남기신 분이 계시니 바로 서환수 선생이시다.
선생은 달성인(達城人)으로 이름은 환수(桓洙)요 자(字)는 환수(煥洙) 또는 정수(丁洙)로 1888년 3월 1일 거제시 하청면 연구리 386번지에서 서석찬(徐錫贊) 공의 장남으로 태어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