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729-1
- 탐방로그
-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729-1에 위치한 백낙열 선생 집 터를 찾았다. 이곳에는 2018년에 경기도에서 건립한 경기도 항일유적지 안내판과 화성시에서 건립한 안내판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 백낙열 선생의 집 터 안내판은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729-2에 위치하고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백낙열 집 터(白樂烈 집 터)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729-1
백낙열 집 터는 독립운동가 백낙열이 살았던 곳이다. 백낙열은 1865년 12월에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에 김성렬, 안종후 등과 함께 서울에서 열린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4월 3일에 장안면 석포리에서 차희식 등이 주도한 시위가 본격화되었다. 당시 수촌리 이장을 지내던 백낙열은 마을 주민들에게 시위를 알리면서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때 우정면사무소와 화수 주재소를 습격하여 집기류와 공문서를 파기하였고 일본인 순사 1명을 처단하기도 하였다. 시위 후 체포를 피해 계룡산 등지를 전전하며 3년간 숨어 지내다 1937년 1월에 사망하였다.
백낙열 집 터는 독립운동가 백낙열이 살았던 곳이다. 백낙열은 1865년 12월에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에 김성렬, 안종후 등과 함께 서울에서 열린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4월 3일에 장안면 석포리에서 차희식 등이 주도한 시위가 본격화되었다. 당시 수촌리 이장을 지내던 백낙열은 마을 주민들에게 시위를 알리면서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때 우정면사무소와 화수 주재소를 습격하여 집기류와 공문서를 파기하였고 일본인 순사 1명을 처단하기도 하였다. 시위 후 체포를 피해 계룡산 등지를 전전하며 3년간 숨어 지내다 1937년 1월에 사망하였다.
백낙열 집터
이곳은 화성 지역에서 만세 운동을 했던 백낙열이 살던 집이 있던 곳이다. 백낙열은 장안면, 우정면 지역의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장안면 수촌리 출신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지역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화성 지역 만세 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수촌리 구장이었던 백낙열은 1919년 4월 3일 수촌리 주민들에게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우정면 사무소를 파괴하고 화수리 주재소를 파괴할 때 앞장서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정부는 백낙열의 공훈을 기려 2002년에 건국 포장을 수여했다.
이곳은 화성 지역에서 만세 운동을 했던 백낙열이 살던 집이 있던 곳이다. 백낙열은 장안면, 우정면 지역의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장안면 수촌리 출신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지역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화성 지역 만세 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수촌리 구장이었던 백낙열은 1919년 4월 3일 수촌리 주민들에게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우정면 사무소를 파괴하고 화수리 주재소를 파괴할 때 앞장서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정부는 백낙열의 공훈을 기려 2002년에 건국 포장을 수여했다.
안내판에 소개된 주소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729-1는 안내판이 있던 곳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이 폐가이다.
안내판이 있는 주소는 경기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729-2이다.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729-1 애국지사 백낙열의 집터 안내판을 찾았다.
이곳에는 경기도에서 건립한 경기도 항일유적지 안내판과 화성시에서 건립한 것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