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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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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55 애국지사 이비호의 묘를 찾아가고 있다. 도로에서 위성지도를 보면서 산 위로 올라가는 중이다. 산을 올라가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이 곳에 차를 세우고 왼쪽으로 올라갔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백저 진성이공의 휘는 비호시고 자는 자승이시니 퇴계선생 13대손이요 목사 동음공의 11대손이시다. 6대조는 휘 세사 호 만화헌지사시고 5대조는 휘 구서 호 자하 참봉이시며 고조는 휘 가순 호 하계 계응교시고 증조는 휘 휘발 호 응옹 현역이시며 조는 휘 만훈이시고 고는 휘 중선이시며 비는 전주유씨 치황의 따님이시다. 공은 고종 을미 9월 12일 안동하계리제에서 태어니시다. 어려서부터 글읽기를 좋아하셨으며 9세에 외난을 당하여 애성이 예를 넘으니 모두 어려운 일이라 기렸다. 16세 경술에 국치를 당해 공의 종조 향산공이 절식순국하시니 그 망석함이 어떠했으랴 드디어 기미 예안
만세운동이 터지니 공은 그 주역의 한 분이라 왜에 피체 2년의 옥고를 당하셨다. 왜의 폭학이 날로 심해졌으니 공은 종조 유천공고 종숙 기엄공의 독립운동을 도우시고 삼종 이고공 ○간공 유림단 활동등을 뒷바라지 하셨다. 족질 동봉공이 옥사하자 공은 장송가를 지어 동군과 함께 헛소리로 부르셨다니 망국의 한과 독립의 절규가 서렸으리라 마침내 을유광복을 맞으니 그 기쁨이 어떠하셨으랴만 국론은 나뉘고 세상은 달라지매 시사를 멀리하고 조상 유업을 보수키로 작족하셨다. 그 때의 일을 삼종 우어공이 계시 족형 제상만서로 남기시니 선훈을 지켜 敬을 바탕으로 수신하고 화를 귀히 여겨 제가하자는 다짐이렀다. ... 중략....광복
후 유공자 표창이 있다드르시고 대한제국의 臣子(신자)로서 구국일념이 없을 사람이 누구며 누대 국은을 입은 우리들이야 더 말할께 무엇이랴 하시고 기꺼하지않으셨다.독제문을 잘하셨고 여러 편의 시문을 남기셨다. 공과 같은 자품으로 때를 만나지 못해 초야에 묻히시니 비색한 고가에 남은 후생들이 한스러움을 이길 수 없다.
이제 나라의 뜻으로 비를 세워 삼가 공의 세계 대강을 기록하나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불초질이 하나를 줍고 열을 빠뜨리매 등에 땀이 흐를 뿐이다. 단기 4318년 을축 광복월 삼종질 원주 근찬 사자 진구 읍혈서
이제 나라의 뜻으로 비를 세워 삼가 공의 세계 대강을 기록하나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불초질이 하나를 줍고 열을 빠뜨리매 등에 땀이 흐를 뿐이다. 단기 4318년 을축 광복월 삼종질 원주 근찬 사자 진구 읍혈서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55 애국지사 이비호의 묘를 찾아가고 있다. 도로에서 위성지도를 보면서 산 위로 올라가는 중이다.
산을 올라가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이 곳에 차를 세우고 왼쪽으로 올라갔다.
獨立志士 白底 眞城李公之墓
독립지사 백저 진성이공지묘
독립지사 백저 진성이공지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