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내원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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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산62-1
탐방로그
묘를 찾아가는 길에 박인호 선생, 박내홍 선생, 박광호 선생 등 박내원 선생 가족들의 묘가 있다. 길을 찾는 데 이정표로 사용하면 좋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위쪽으로 올라가려는데 그 아래에 몰랐었던 묘소가 있었다.
哲庵朴來哲之墓(철암 박내철지묘) 경주김씨 부좌

위쪽에 있는 박광호선생의 묘비문등에 의하면 박광호선생의 첫째 아드님이시다. 즉 박내원선생의 형님이 되신다. 위치는 박광호선생 묘소 바로 아래쪽이다.
박인호선생 묘소를 찾는 중에 만났었던 애국지사 박내원선생의 부친이시 박광호선생 묘소
密陽朴公光浩之墓(밀양박공 광호지묘)
박내원선생의 묘소는 박광호선생의 아래쪽이면서, 박인호선생이 왼쪽방향이지만, 오른쪽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올라왔던 길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니 묘소가 보였다.
천도교 종법사 梵菴朴來源之墓(범암 박내원지묘), 한양조덕자부좌
천도교 종법사 梵菴朴來源之墓(범암 박내원지묘), 한양조덕자부좌
광복 전후사를 통하여 일제시에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해방후에는 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해 감옥을 집삼아 왕래하여 80평생을 항쟁으로 일관하신 천도교의 큰 별 우춘 박내원선생 이곳에 고이 누워 계시다. 초창기 조선노동운동의 조직화에 힘쓰신 신념과 민족의 자주독립 성취에 한몸을 바치신 열정과 그리고 투쟁의 기반을 민족구성체의 대동화합에 두신 성찰 선생께서 남기신 참된 뜻은 뒤따르는 동지들의 맥박을 이루어 기필코 자주통일의 그날을 쟁취할 힘으로 재생하리라.

단기 4323년 6월 10일 6.10독립투쟁 64주년에 유족과 친지 후배 동지들이 삼가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광복 전후사를 통하여 일제시에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해방후에는 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해 감옥을 집삼아 왕래하여 80평생을 항쟁으로 일관하신 천도교의 큰 별 우춘 박내원선생 이곳에 고이 누워 계시다. 초창기 조선노동운동의 조직화에 힘쓰신 신념과 민족의 자주독립 성취에 한몸을 바치신 열정과 그리고 투쟁의 기반을 민족구성체의 대동화합에 두신 성찰 선생께서 남기신 참된 뜻은 뒤따르는 동지들의 맥박을 이루어 기필코 자주통일의 그날을 쟁취할 힘으로 재생하리라.

단기 4323년 6월 10일 6.10독립투쟁 64주년에 유족과 친지 후배 동지들이 삼가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4235년 음11월 13일 敎祖伸寃伏閤(교조신원복합)의 疏首(소수)며 동학군이신 광호공의
2자로 탄생 4315년 2월 17일 80세로 환원
4235년 음11월 13일 敎祖伸寃伏閤(교조신원복합)의 疏首(소수)며 동학군이신 광호공의
2자로 탄생 4315년 2월 17일 80세로 환원
주요행적
19세 한양노조연맹집행위원장,
20세 조선조동총동맹본부 상무 집행위원,
24세 6.10독립투쟁주동 징역 5년.
58세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 부의장,
5.16후 징역 7년 서울교구장 재단이사장 종법사
주요행적
19세 한양노조연맹집행위원장,
20세 조선조동총동맹본부 상무 집행위원,
24세 6.10독립투쟁주동 징역 5년.
58세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 부의장,
5.16후 징역 7년 서울교구장 재단이사장 종법사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산62-1 애국지사 범암 박내원의 묘를 찾았다.
차를 세울만한 곳이 없어 밖에 세워두고 걸어가야 한다.
위성지도를 보면서, 아래쪽의 박내홍선생, 박인호선생, 박광호선생의 묘소를 지나야 한다.
박인호선생의 양자이신 애국지사 박내홍선생의 묘소
玄波 朴來弘, 綾城具氏仁媓之墓(현파 박내홍, 능성구씨인황 지묘)
춘암상사 박인호선생의 묘
법종 춘암상사 박인호 묘
박내원선생의 부친이신 박광호선생의 묘소는 박인호선생 묘소 바로 오른쪽 위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