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창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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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평택시 죽백동 141-3
탐방로그
평택시 죽백동 43으로 알려진 애국지사 이규창(李奎昌)의 묘소를 찾았다. 그런데 이 곳은 묘소가 있을만한 곳이 아니고 과수원이다. 부근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님께 사연을 설명하니 묘소의 위치를 알려주셨다. 아주머니에 따르면 삼밭 뒤쪽으로 묘소가 있다고 한다. 묘 안내판에도 과수원 주소가 적혀있으나, 실제 묘의 주소는 평택시 죽백동 141-3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愛國志士 陽城李公 奎昌 之墓 配 奉化鄭氏 合祔
(애국지사 양성이공 규창 지묘 배 봉화정씨 합부)
애국지사 양성이공 규창 선생 묘비문
산중난초는 스스로 감추었으되 그윽한 향기는 멀리 풍기고 우국열사가 그 자취는 감추었으되 공훈과 명성이 후세에 현창함은 인과응보의 천정 이치가 않이리요. 공의 관은 양성이며 시조 휘 수광은 송조의 특진 김오위 대장군 상주국공이시며 려조의 삼중대광보국 양성군이시다. 상주국공의 7세손 정의대부 총랑 상서응 양상장군의 18세손이며 증조 휘는 필주이요 조고 휘는 상규며 고휘는 관섭이니 호는 운치요 양성 문묘 직원의 장남으로 서기 1900년 경자 3월 17일 고고의 성을 발하니
휘 규창이요 호는 성남이시다. 공은 충문대가의 후예로서 능시능문하고 청렴강직하신 의사이시니 어찌 시대의 비운 경술국치의 민욕을 좌시하랴. 항시 국권회복을 염원하시드니 서기 1919년 기미 3월 1일 조국광복의 민족함성이 나자 공은 결사구국을 다짐하며 이곳 원곡장성 3.1운동 선봉에 서섰다. 시는 동년 4월 1일 원곡면 소재지에 운집한 천여 군중 선두에서 서 대한독립만세을 고창하며 양성면으로 진격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기관인 면사무소 경찰관 주재소 우편소 등을 산산 파괴하고 충화하며 일본인 등을 완전 축출하였으니 이는 민족적 설분이요. 독립투사의 개가였으리라. 연이 슬프도다. 국권 없는 민족이요 적손공권 엇찌하랴. 공은 왜적에게 피체되여 형언할 수 없는 비인도적 악형 끝에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시여 장장 2개 성상의 옥고를 치루셨으니 공의 약관 20세시였다. 이 엇찌 통탄지사가 아니리요. 근세조국광복과 더불어 3.1운동 독립유공자로 발탁되시어 서기 1980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추서를 받으시니 이 또한 충문 대가의 후광이리라. 오호라. 공은 6남을 남기시고 서기 1970년 경술 4월 7일 서거하시며 배위 봉화정씨는 서기 1973년 계축 6월 13일에 졸하시어 이곳 만년 유택에 합봉하시니 번영된 오늘의 조국에서 어찌 고 위훈을 잊으랴. 서기 1984년 정부의 애국지사 묘소 단장 지원 계획에 의하여 이 비를 세우도다.
서기 1984년 갑자 중추 경주후인 이종두 지음
자 석종 세종 경종, 자 갑종 항종 택종, 손 영하 영상 영제 영은, 손 영호 영돈 영찬 영표
서기 1984년 11월 일 수립
애국지사 이규창 선생 묘 위치는 과수원 주소로 되어있지만, 이곳의 실제 주소는 평택시 죽백동 141-3 이다.

애국지사 이규창 선생 묘지 안내판(위치 : 평택시 죽백동 43번지) 50m
애국지사 이규창 선생의 묘
성명 : 이규창(李奎昌) / 생존기간 : 1900.2.17.~1970.6.20. / 출생지역 : 경기도 안성
서훈 : 건국훈장 애족장(1990) 대통령표창(1977)
본관(本貫)은 양성(陽城)이다. 시조는 상주국공(上柱國公)이 양성군(陽城君)에 봉(封)해진 이수광(李秀匡)의 25세손이다. 1919년 양성면(陽城面) 원곡면(元谷面) 일대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횃불을 들고 일제에 항거하였으며, 원곡면 사무소의 건물을 파괴.주재소를 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1년3개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경기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