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남면 갑둔리 351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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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군 남면 갑둔리 351 동경대전경 진판 간행터 안내판을 찾아가고 있는데, 네비게이터는 계속 직진하라고 나오는데 '동경대전 간행터 [각판소터]'라는 안내판을 만났다.
네비게이터에 처음에 입력되었던 인제군 남면 갑둔리 351는 저 숲속이라고 가르키면서 안내를 종료한다. 351번지라고 나오는 숲속을 살펴보니, 길이 있도, 안내판 등도 보인다.아마도 군 작전지역이어서 길을 제대로 안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들어가는 길이 없다. 계속 직진을 하면서 왼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았다. 군부대 훈련장소로 보이는데, 문이 열려있었다.왼쪽으로 들어가보니, 원래 왔었던 길과 평행하게 원래 왔었던 방향으로 가는 길이 연결되어있었다. 이 길로 가면, 숲속으로 보이던 길과, 안내판이 있을것으로 보였다. 조금 가자 숲속으로 보였던 안내판이 나타났다. 공방은 멸실되었고 터만 남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니 문화재청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인제 동경대전 간행터 정보로 연결되어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http://m.cha.go.kr/public/commentary/culSelectDetail.do?VdkVgwKey=23,00890000,32&pageNo=77010000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http://m.cha.go.kr/public/commentary/culSelectDetail.do?VdkVgwKey=23,00890000,32&pageNo=77010000
네비게이터에 처음에 입력되었던 인제군 남면 갑둔리 351는 저 숲속이라고 가르키면서 안내를 종료한다.
351번지라고 나오는 숲속을 살펴보니, 길이 있도, 안내판 등도 보인다.
계속 직진을 하면서 왼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았다. 군부대 훈련장소로 보이는데, 문이 열려있었다.
왼쪽으로 들어가보니, 원래 왔었던 길과 평행하게 원래 왔었던 방향으로 가는 길이 연결되어있었다.
이 길로 가면, 숲속으로 보이던 길과, 안내판이 있을것으로 보였다.
이 길로 가면, 숲속으로 보이던 길과, 안내판이 있을것으로 보였다.
조금 가자 숲속으로 보였던 안내판이 나타났다.
동경대전 간행터 공방터(東經大全刊行址 [工房址])
➊ 동경대전 간행 공방터 ➋ 동경대전 간행 각판소터 ➌갑둔리 보호수(소나무) ➍최시형 피신처(성황거리)
인제 『동경대전(東經大全)』 간행 공방터
인제 『동경대전(東經大全)』 간행 공방터
공방터는 『동경대전』을 간행할 당시 실제 목판 새기는 작업을 수행하던 곳이다. 1860년 경주에서 창도된 동학은 초기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영해.영덕.영일.청도.대구.단양등 경상도 지역과 충청도 일부 지역에서 주로 포교되어 점차 교세를 확장하였으나 1864년 동학 교조 최제우가 처형되면서 동학은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다. 당시 최제우의 가족과 최시형을 비롯한 주요 제자들은 흩어져 주로 강원도 지역에서 은거하면서 다시 활발하게 포교활동을 전개하여 강원도 지역은 제2의 창도지라고 할 만큼 주요 동학 포교지가 되었다. 특히,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교세가 확장되면서, 인제지역은 동학 지도부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이와 같이 교세 확장이 이뤄지자, 최시형은 교조 최제우의 글 등 동학관련 중요 자료를 모아 편집하는 한편, 경전간행을 추진해 갑둔리 김치운의 집에서 각판소를 설치하였다. 이곳 공방터는 경전간행을 위해 목판을 새기는 작업을 하였던 곳으로 김치운의 숙부댁이었다, 18860년 6월 목판본으로 『동경대전』을 간행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제 지역을 중시으로 강원도 지역의 동학교도인이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경전 간행은 동학의 부흥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에 한국사에서 큰 역사적 의미가 있다. 서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는 『동경대전』 간행사업을 총괄하던 각판소터가 있다.
김치운(金致雲) : 족보상 성명은 김현규(金顯雲)奎)이며, '치운(致雲)'은 김현규의 자(字)이다.
공방터는 『동경대전』을 간행할 당시 실제 목판 새기는 작업을 수행하던 곳이다. 1860년 경주에서 창도된 동학은 초기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영해.영덕.영일.청도.대구.단양등 경상도 지역과 충청도 일부 지역에서 주로 포교되어 점차 교세를 확장하였으나 1864년 동학 교조 최제우가 처형되면서 동학은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다. 당시 최제우의 가족과 최시형을 비롯한 주요 제자들은 흩어져 주로 강원도 지역에서 은거하면서 다시 활발하게 포교활동을 전개하여 강원도 지역은 제2의 창도지라고 할 만큼 주요 동학 포교지가 되었다. 특히,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교세가 확장되면서, 인제지역은 동학 지도부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이와 같이 교세 확장이 이뤄지자, 최시형은 교조 최제우의 글 등 동학관련 중요 자료를 모아 편집하는 한편, 경전간행을 추진해 갑둔리 김치운의 집에서 각판소를 설치하였다. 이곳 공방터는 경전간행을 위해 목판을 새기는 작업을 하였던 곳으로 김치운의 숙부댁이었다, 18860년 6월 목판본으로 『동경대전』을 간행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제 지역을 중시으로 강원도 지역의 동학교도인이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경전 간행은 동학의 부흥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에 한국사에서 큰 역사적 의미가 있다. 서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는 『동경대전』 간행사업을 총괄하던 각판소터가 있다.
김치운(金致雲) : 족보상 성명은 김현규(金顯雲)奎)이며, '치운(致雲)'은 김현규의 자(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