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 산13-2
- 탐방로그
- 문창숙 선생 위령비는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 산 13-2 황해도 신계군 망향동산 내에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2016년 4월 22일 건립
이윤상 헌정
이윤상 헌정
갈랫길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소나무 아래에 위령비가 있다.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 산 13-2 황해도 신계군 망향의 동산 내 문창숙 의사 위령비, 망향비를 찾아가고 있다.
양갈래 길을 만났다. 왼쪽 멀리 묘비들이 보인다.
망향비와 문창숙 선생 위령비가 나란히 서 있었다.
망향비
여기는 어디메뇨. 저기는 어디메뇨. 임진강 저 너머로 아련히 보이는 내 고향 이 모두 내 나라 내 땅인데 오고 가지 못하누나. 그 옛날 뛰놀든 정든 내 고향 선열들의 넋이 어리고 조상의 뼈가 묻힌 곳 우리들의 잔뼈가 굵어진 곳. 나 어찌 잊을소냐. 꿈인들 잊을소냐. 오늘도 못잊어 손수건 적시노라. 오곡백과 풍성하고 백세 청풍 그윽한 우리들의 고향. 목화꽃 곱게 피고 조밥 맛있는 내 고향으로 가련다. 지금은 모실 수도 뵐 수도 없는 조상님들과 가족들을 사모하며 고향을 그리는 한 이 돌보다 더 굳게 맺혔노라. 고향의 부조님이여. 타계하신 영혼들이여 가족 친지들이여. 만나는 그날까지 무강하시기를 빌며 이산의 아픈 한 맺힌 실향민의 뜻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 먼저 잠드신 영혼들을 위로코저 이 동산에 비를 세우노라. 통일이여 어서오라. 통일이여 오라.
- 서기 1985년 11월 일 립 황해도 신계군민회 회원 일동
- 서기 1985년 11월 일 립 황해도 신계군민회 회원 일동
문창숙 의사 위령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신계군민회 회원 일동
신계군민회 회원 일동
문창숙 의사의 약력과 공적
1898년 신계군 마서면에서 출생하다.
1919년 3.1운동 때 만세시위에 앞장섰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만주로 망명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수료하다
1922년 국내에 잠입하여 평북지방에서 일경을 습격 살해하고 악질 친일파를 처단하다
1923년 참의부(독립운동단체) 중대부사가 되어 소대장으로 부하 17명을 이끌고 집안현 일대에서 일본군 밀정을 색출 사살하는 등의 항일활동을 하다
1924년 참의부 중대장으로 소수의 부하와 함께 국내에 진입. 왜적과 수차 교전하고 동년 5월 압록강 국경지대를 시찰중이던 사이토 총독 일행을 습격하다
1927년 12월 평북 강계지방에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피체 이듬해 고등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동년 4월 23일 평양형무소에서 30세를 일기로 순국하다
1977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3등급인 독립장이 추서되다
1898년 신계군 마서면에서 출생하다.
1919년 3.1운동 때 만세시위에 앞장섰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만주로 망명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수료하다
1922년 국내에 잠입하여 평북지방에서 일경을 습격 살해하고 악질 친일파를 처단하다
1923년 참의부(독립운동단체) 중대부사가 되어 소대장으로 부하 17명을 이끌고 집안현 일대에서 일본군 밀정을 색출 사살하는 등의 항일활동을 하다
1924년 참의부 중대장으로 소수의 부하와 함께 국내에 진입. 왜적과 수차 교전하고 동년 5월 압록강 국경지대를 시찰중이던 사이토 총독 일행을 습격하다
1927년 12월 평북 강계지방에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피체 이듬해 고등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동년 4월 23일 평양형무소에서 30세를 일기로 순국하다
1977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3등급인 독립장이 추서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