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각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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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산23-5
탐방로그
심상각 선생의 묘소는 선생의 집의 우측 뒤편에 있다. 집 주변에는 표창장, 훈장증 비석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우산 선생은 이 고장 3.1운동을 주도하시고 상해 임정에 참여하시다가 10년 만에 환국 후 향토 후진 양성에 헌신하시여 일생을 통하여 국가 민족을 위한 일념으로 청렴무욕하신 사표이시며 청송심씨 시조 23대손이시고 명조 청양군의 13대손이시다. 배위 구여사는 부군이 망명 중 온같 고난을 겪으신 현모양처이시니 슬하에 1남 2녀를 두시엿다.
서기
1888년 12월 10일 생, 1954년 11월 10일 서거 67세
1889년 3월 7일 생, 1969년 7월 20일 서거 81세
심상각 선생의 묘소는 집 뒤쪽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집의 우측 뒤편
지나가는 길에 사헌부 대사헌 청양군 청송심공 신도비가 보인다.
우산 심상각(又山 沈相恪) 1888~1954
경기도 파주 출신.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우산(又山).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에 생가와 묘소가 있으며, 오늘날 파주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추앙받고 있다. 1919년 3월 파주에서 펼쳐진 대규모 만세운동을 주도했는데 3월 27일 2천명의 시위군중이 광탄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후 조리면 봉일천리 공릉장터로 행진하여 그곳에 있던 1천여 시위군중과 합세, 봉일천 헌병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벌였다. 파주3.1만세운동을 주도한 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상해농업전문학교에 적을 두고 신교육을 받으면서 당시 파주 출신으로 상해임시정부 내무부 장관인 박찬익 선생의 협조로 임시정부에 참여,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이듬해인 1920년 임시정부의 법무총장인 신규식 선생이 조직한 동제사에 가입, 상해 일원에서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임시정부 활동을 마감하고 국내에 돌아와서는 고향인 파주시 광탄면 광탄보통학교(廣灘普通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하여 후진 양성을 위한 육영사업에 전념하였다. 그 후 선생은 자신과 함께 만세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동지들을 위한 위령제를 거행하는 등 애국선열들의 선양사업에 노력하다가 1954년 11월 9일 향년 6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해 정부에서는 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으며, 1991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0년 6월 6일 손자 재만(載萬) 설립.
이곳의 GPS상의 주소는 광탄면 산 23-5이다.
건국훈장 독립유공자 심상각 애족장
右(우)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헌신한 공이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 규정에 의하여 훈장을 추서함
서기 1991년 4월 13일 대통령 노태우
우산 청송심공 상각지묘 배 능성구씨 연상 부우

국가포상 제45476호 국가독립유공에 대한 대통령포상 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