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 414
- 탐방로그
- 김봉기 의병장 추모비는 1992년 3월 31일 신둔면 면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였으며, 신둔초등학교 정문 옆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인 신둔체육공원으로 이전하였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義兵將 通訓大夫 監役 瑞興金公 鳳基 追慕碑(의병장 통훈대부 감역 서흥김공 봉기 추모비)
의병장 서흥김공 봉기 추모비명
공은 1859년 기미에 김공 희의 장남으로 신둔면 남정리에서 탄생하셨다. 본명은 인곤이며 대한말 조정에서 등임하여 통훈대부 감역으로 있었으니 때는 바야흐로 대한왕조 500년 종사가 풍전등화와 같은 시기였노라. 교활한 일본은 명치유신이래 국력을 길러 수구 개화 양론으로 정쟁만을 일삼던 우리의 조정을 깔보고 청로를 군사력으로 물리친후 이 땅을 방약무인 지경으로 종횡무진 짓밟아왔다. 명성황후 민비를 시해하였고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하여 통감정치를 시행하더니 정미년 해아밀사 사건을 트집 잡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소위 신협약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내정 전반을 마음대로 하였으며 마침내는 대한의 군대마저 해산시켜 버렸다. 우리 조정의 권신들 중에는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매국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감해하는 자가 허다하였으니 국가의 장래가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해산당한 군인들을 위시하여 전국 각지에 우국지사들이 궐기하여서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만회하고자 일본군과 죽기
공은 1859년 기미에 김공 희의 장남으로 신둔면 남정리에서 탄생하셨다. 본명은 인곤이며 대한말 조정에서 등임하여 통훈대부 감역으로 있었으니 때는 바야흐로 대한왕조 500년 종사가 풍전등화와 같은 시기였노라. 교활한 일본은 명치유신이래 국력을 길러 수구 개화 양론으로 정쟁만을 일삼던 우리의 조정을 깔보고 청로를 군사력으로 물리친후 이 땅을 방약무인 지경으로 종횡무진 짓밟아왔다. 명성황후 민비를 시해하였고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하여 통감정치를 시행하더니 정미년 해아밀사 사건을 트집 잡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소위 신협약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내정 전반을 마음대로 하였으며 마침내는 대한의 군대마저 해산시켜 버렸다. 우리 조정의 권신들 중에는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매국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감해하는 자가 허다하였으니 국가의 장래가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해산당한 군인들을 위시하여 전국 각지에 우국지사들이 궐기하여서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만회하고자 일본군과 죽기
로써 항쟁하였으니 이것이 정미의병이며 후일 조국을 광복케 한 독립군의 초가 된 것이다. 1907년 7월 20일 공께서는 우리 동포가 일본인으로부터 받는 압박을 아푸게 여기고 안연히 보고 참을 수 없어 친일매국하는 적신들을 향하여 우리들이 충의의 지사를 일으키고 충의의 칼이 너희들의 머리를 베고 조시에서 너희들의 배를 갈라 우리 황상의 분을 씻고 우리 국민을 위하여 복수하겠다고 감연히 선언하고 또한 그들의 죄상을 밝히되 을사오조약으로 우리 이천만 동포가 노예의 지경으로 몰려 들어가게 한 죄, 다시 7조약을 맺어 일본을 위하여 충성을 바친 죄, 황상을 위협하여 강제로 선위토록한 죄, 일체의 권리를 원수의 나라 일본에게 양도치 않음이 없는 죄, 국무가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고 통감부 만찬회와 일본인과의 교섭으로만 능사를 삼는 죄, 통감만 알고 군부를 모르는 체하며 일본만 알고 자기 나라를 모르는 체하는 죄, 일본에 아부하여 조국의 이해를 묻지 않고 다만 자기 일신의 부귀만 도모하는 죄 등 무려 25개 항목의 죄상을 낱낱이 열거 성토하고서 향리인 이천으로 내려와 이근풍 주하용 임옥녀 신규희 조상현 원효상 윤평순 등과 몽의한 후 공은 진찰장의 임을 맡고서 모집된 포군 70을 이끌고 우선 이천읍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기병대를 습격하였다. 다시 광주로 이동하여더니 총대장 이근풍이 도주하였음에 의병의 추앙을 받아 공이 그 중임을 맡게 되였다. 군세가 점점 늘어 음죽 죽선 안성 양지 광주 양주 양근 등지로 불몰하면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지대한 타격을 주었으면서도 공의 부대는 별로 피해를 본 것이 없다 하였으니 공의 신묘한 전법을 알 만할 일이다. 그러나 군자가 없어 매양 지나가는 마을에서 식사의 제공을 받게 되었으니 작전상 지장이 막대하였다. 1907년 9월 2일 공의 부대가 양주 가곡에 이르렀을 때 홍병수라는 친구를 맞나 그 꾀임에 속아 한성에 부호 홍세영 집으로 군자를 얻고자 잠입하였던 바 군자는 고사하고 경서로 밀고되어 포박되기에 이르렀다. 석재로다 투옥되어 6개월간이나 모진 고문을 당하였으나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의연한 자세로 일본과 일본에 아부하는 친일적신들의 죄행을 힐책하였다. 1908년 3월 13일 평리원법정에서 대장이 되어 중인을 거느리고 난을 일으킨 죄를 물어 교수형이 선고되었으니 슲으다. 크게 충절을 지키던 공은 평생 영사를 못다 이루고 한 많은 망국의 고혼이 되신 것이다. 춘풍추우 83개 성상 이제 우리는 공께서 청사에 남기신 빛나는 충절의 공훈을 이 빗돌에 새겨 세인으로 하여금 다시 옷깃을 가다듬고 슲은 고혼을 추모하고자 함이니라.
단기 4325년 서기 1992년 임신 3월 31일 음 2월 28일 한천회 근수
이천향교전교 나주인 나기창 근찬 전면 석봉 한호 자집 후면 신둔면 유도회장 김해인 김흥율 근서
추모비건립추진위원 명예회장 나기창 회장 박창선 부회장 김문영 감사 이혜찬 한영수 간사 김희원 면장 권영학 지서장 이효찬 신둔국민학교장 이은우 도암국민학교장 허황 농업협동조합장 송영진 우체국장 이수인 군의원 박선기 예비군중대장 김선옥 홍석표 한기창 천광호 김흥율 김완식 김유봉 이정하 문준식 남궁용기 이광호 정윤필 이현호 김성연 김종철 이윤섭 조행춘 김해식 차수영 김진원
석책은 장군의 향리인 남정1리 주민의 정성으로 마련된 것이며 서흥금 문중 안성종친 일동과 이천의 의영 해식 철영 진영 원식 달영 석한 석길 천영 대영 만영 원영 화영 석풍 제씨의 물심양면 협찬하신 성의가 또한 지대하였음을 밝혀둔다
이천향교전교 나주인 나기창 근찬 전면 석봉 한호 자집 후면 신둔면 유도회장 김해인 김흥율 근서
추모비건립추진위원 명예회장 나기창 회장 박창선 부회장 김문영 감사 이혜찬 한영수 간사 김희원 면장 권영학 지서장 이효찬 신둔국민학교장 이은우 도암국민학교장 허황 농업협동조합장 송영진 우체국장 이수인 군의원 박선기 예비군중대장 김선옥 홍석표 한기창 천광호 김흥율 김완식 김유봉 이정하 문준식 남궁용기 이광호 정윤필 이현호 김성연 김종철 이윤섭 조행춘 김해식 차수영 김진원
석책은 장군의 향리인 남정1리 주민의 정성으로 마련된 것이며 서흥금 문중 안성종친 일동과 이천의 의영 해식 철영 진영 원식 달영 석한 석길 천영 대영 만영 원영 화영 석풍 제씨의 물심양면 협찬하신 성의가 또한 지대하였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