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 산21-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독립항쟁유공자
용인의 3.1만세운동. 용인은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고 나라를 지켜낸 고장이다. 처인성에서 살리타가 이끄는 몽골군을 격퇴하여 몽골의 침략을 막아낸곳. 으 곳이 바로 용인이었다. 용인 사람들에게는 반외세.구국항쟁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왔고, 그 정신이 되살아났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3.1운동의 횃불을 치켜 든 것이다. 1919년 3월 1일.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한 독립선언이 발표되었다.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독립국'임을 선언한 것이다. 독립을 선언한 후,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3.1운동이었다...중략.. 이 과정에서 안종각, 최우돌, 성략상을 비롯하여 35명이 사망하였고, 실종자 139명, 부상자 502명, 투옥자 65명등 직접 피해를 당한 사람이 741명에 달했다.
순국자 안종각, 최우돌, 성락상, 투옥자 이덕균,김구식,권종목,황경준,최상근,안명옥,김은수,이은표,이인하,정규목,홍종욱,홍종엽,한영규,김운식,이용환,김성남,김영달,김창연,임원호,김경운,이인봉,김병선,이웅한,장지선,장병식,조용산,황덕재,황찬경,황덕재,황찬경,변용섭,박흥도,박흥준,강신복,한승원,허충태,김춘일,박희적,이병연,이태현,이범기,이상철,이은상,오경렬,서천길,안재섭,권홍규,이도해,홍재택,강춘석,권병선,김영대,김원배,김현주,남연찬,윤만쇠,윤승보,이달순,이희대,정원규,진기회
용인의 3.1만세운동. 용인은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고 나라를 지켜낸 고장이다. 처인성에서 살리타가 이끄는 몽골군을 격퇴하여 몽골의 침략을 막아낸곳. 으 곳이 바로 용인이었다. 용인 사람들에게는 반외세.구국항쟁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왔고, 그 정신이 되살아났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3.1운동의 횃불을 치켜 든 것이다. 1919년 3월 1일.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한 독립선언이 발표되었다.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독립국'임을 선언한 것이다. 독립을 선언한 후,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3.1운동이었다...중략.. 이 과정에서 안종각, 최우돌, 성략상을 비롯하여 35명이 사망하였고, 실종자 139명, 부상자 502명, 투옥자 65명등 직접 피해를 당한 사람이 741명에 달했다.
순국자 안종각, 최우돌, 성락상, 투옥자 이덕균,김구식,권종목,황경준,최상근,안명옥,김은수,이은표,이인하,정규목,홍종욱,홍종엽,한영규,김운식,이용환,김성남,김영달,김창연,임원호,김경운,이인봉,김병선,이웅한,장지선,장병식,조용산,황덕재,황찬경,황덕재,황찬경,변용섭,박흥도,박흥준,강신복,한승원,허충태,김춘일,박희적,이병연,이태현,이범기,이상철,이은상,오경렬,서천길,안재섭,권홍규,이도해,홍재택,강춘석,권병선,김영대,김원배,김현주,남연찬,윤만쇠,윤승보,이달순,이희대,정원규,진기회
용인시 원삼면 좌항리 산21-1 원삼좌전고개 용인 3.1만세운동 기념탑공원
용인3.1만세운동기념탑 건립취지문
용인은 애국충절의 고장이다. 고려시대 몽고군의 2차 침입을 물리치는 결정적 승기를 잡은 처인성 대첩지가 바로 용인에 자리하며, 동학농민운동과 의병활동, 3.1만세운동, 해외독립투쟁에 이르기까지 충의정신으로 스스로를 불태우며 나라와 민족을 외세와 불의로부터 지켜낸 수많은 선열들이 용인에 있었다. 용인 한말 의병으로 맹활약을 펼친 임옥여, 이익삼,오인수 의병장등을 배출했고, 의병들은 용인에서만 35회 이상 일본제국 및 헌병에 맞서 격전을 치렀다. 또한 순국열사 이한응과 민영환, 애구계몽활동을 펼친 근대 개화기 언론인 류근,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길러낸 여준과 망명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오의선, 의열단 활동을 한 남정각, 신민부를 주도한 김혁, 항일 무장투쟁의 선두에 섰던 오광선, 이흥광등 수많은 용인의 인물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특히 용인의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1일 원삼면과 양지면의 경계인 좌전고개에서 그 만세의 횃불이 타올라 3일부터 4월까지 총13회에 걸쳐 13,200여명의 주민이 격렬한 저항을 펼쳤으며, 사망자 5명, 실종자 139명, 부상및 상해자 502명, 수형자 65명에 이르는 등 용인은 가장 격렬하게 외세에 맞서 싸운 고장중 하나이다. 용인은 3.1만세운동당시 시위가 전개되었던 경기도 22개 부,군에서 두 번쨰로 많은 지역민이 참여한 고장으로 우리의 선조들은 역사의 고비마다 나라의 독립과 자존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외세와 불의에 맞서 싸웠다.
이에 우리는 3.1운동의 역사를 되새기고 3.21용인만세항쟁으로 일제에 항거한 용인의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독립정신을 기리고 용인의 얼과 자긍심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이 기념탑을 건립한다. 2011.3.1 용인시장
용인은 애국충절의 고장이다. 고려시대 몽고군의 2차 침입을 물리치는 결정적 승기를 잡은 처인성 대첩지가 바로 용인에 자리하며, 동학농민운동과 의병활동, 3.1만세운동, 해외독립투쟁에 이르기까지 충의정신으로 스스로를 불태우며 나라와 민족을 외세와 불의로부터 지켜낸 수많은 선열들이 용인에 있었다. 용인 한말 의병으로 맹활약을 펼친 임옥여, 이익삼,오인수 의병장등을 배출했고, 의병들은 용인에서만 35회 이상 일본제국 및 헌병에 맞서 격전을 치렀다. 또한 순국열사 이한응과 민영환, 애구계몽활동을 펼친 근대 개화기 언론인 류근,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길러낸 여준과 망명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오의선, 의열단 활동을 한 남정각, 신민부를 주도한 김혁, 항일 무장투쟁의 선두에 섰던 오광선, 이흥광등 수많은 용인의 인물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특히 용인의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1일 원삼면과 양지면의 경계인 좌전고개에서 그 만세의 횃불이 타올라 3일부터 4월까지 총13회에 걸쳐 13,200여명의 주민이 격렬한 저항을 펼쳤으며, 사망자 5명, 실종자 139명, 부상및 상해자 502명, 수형자 65명에 이르는 등 용인은 가장 격렬하게 외세에 맞서 싸운 고장중 하나이다. 용인은 3.1만세운동당시 시위가 전개되었던 경기도 22개 부,군에서 두 번쨰로 많은 지역민이 참여한 고장으로 우리의 선조들은 역사의 고비마다 나라의 독립과 자존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외세와 불의에 맞서 싸웠다.
이에 우리는 3.1운동의 역사를 되새기고 3.21용인만세항쟁으로 일제에 항거한 용인의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독립정신을 기리고 용인의 얼과 자긍심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이 기념탑을 건립한다. 2011.3.1 용인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