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독립운동유적(성낙중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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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698-9
탐방로그
그의 이름은 성낙성(成樂星)이라고 오기되어 있었고, 이런 탓에 많은 용인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조차 그 이름을 성낙성, 성낙상(成樂象) 등으로 혼동하던 상황이었다. 다만 그의 손자가 보관 중인 자료 덕분에 그 본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공께서는 명문유가에 태어나 효행심이 투철하며 타에 모범이 되는 분으로 일미 3.1독립만세운동이 불어 닥치자 용인군 외서면민에 애국심을 일깨워 300여명과 만세시위를 선봉이 되여 지휘하던 중 왜군의 흉탄에 25재로 순국하셨으니 거룩한 뜻이 빛나 추모비를 건립하노라.
2016년 3월 19일
성낙중 순국선열의 묘소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행군이에 있다.
원삼주유소의 건너편이다.
국도변에서 창녕성씨 집성촌 마을 쪽으로 들어가는 길에 손쉽게 만날 수 있었다.
GPS 상의 주소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698-9 행군이 마을 입구이다.
[용인독립운동유적] 순국선열 성낙중의 묘 -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698-9
이곳은 순국선열 성낙종(成樂衆, 1894~1919) 선생이 안장된 묘역이다. 1919년 용인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성낙중 선생은 원삼면 사암리와 맹리 주민 등 약 300여 명과 함께 백암리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는 선두에 서 있었다. 전날 면사무소가 습격당해 격양된 일제 헌병은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이에 성낙중 선생은 쏟아지는 총알에 순국하셨다. 그의 행적은 오랫동안 묻혀있었지만 2013년 우연히 발견된 '3.1운동 시 피살자 630명 면단'을 통해 발굴되었다. 그의 이름은 성낙성(成樂星)이라고 오기되어 있었고, 이런 탓에 많은 용인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조차 그 이름을 성낙성, 성낙상(成樂象) 등으로 혼동하던 상황이었다. 다만 그의 손자 성기홍 선생이 보관 중인 자료 덕분에 그 본명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처(www.mpva.go.kr) 공훈록 자료에서는 성낙중 선생에 대한 공적사항이 조회되지 않는다.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사이트에서만 공적사항을 간단하게나마 조회할 수 있다.
二十四世 昌寧成公 樂衆 之墓 配 孺人 陽城李氏 根行 附
(24세 창녕성공 낙중 지묘 배 유인 양성이씨 근행 부)
자 대경, 손 지홍 지동
2000년 2월 립
고 1894년 을미 3월 17일 생, 1919년 기미 2월 30일 졸
비 1891년 신묘 1월 11일 생, 1973년 임자 12월 2일 졸
순국선열 3.1운동 유공자 창녕성공 휘 낙중 지묘
배위 양성이씨 근행 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