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 374-25
- 탐방로그
-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 안내판, 동판을 찾기 위해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 374-25에 왔다. 해당 사적은 백암우체국 공중전화부스 옆에 위치한다. 백암면사무소(외사면사무소)는 이후 신축 이전하여 멸실되었고, 현재는 해당 자리에 백암우체국이 들어서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 374-25 백암우체국 공중전화 옆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 안내판, 동판을 찾았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外四面事務所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로201번길 16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외사면 주민 3,0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31일에 백암리를 비롯한 외사면 주민들이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를 잇달아 습격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발포하면서 시위대는 해산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 1명이 죽고 여려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밖에 백암리에서는 4월 2일에도 주민 5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였다가 해산하였고, 3일에도 시위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행되지는 못하였다.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外四面事務所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로201번길 16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외사면 주민 3,0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31일에 백암리를 비롯한 외사면 주민들이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를 잇달아 습격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발포하면서 시위대는 해산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 1명이 죽고 여려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밖에 백암리에서는 4월 2일에도 주민 5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였다가 해산하였고, 3일에도 시위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행되지는 못하였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外四面事務所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로201번길 16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외사면 주민 3,0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31일에 백암리를 비롯한 외사면 주민들이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를 잇달아 습격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발포하면서 시위대는 해산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 1명이 죽고 여려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밖에 백암리에서는 4월 2일에도 주민 5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였다가 해산하였고, 3일에도 시위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행되지는 못하였다.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外四面事務所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로201번길 16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외사면 주민 3,0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31일에 백암리를 비롯한 외사면 주민들이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를 잇달아 습격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발포하면서 시위대는 해산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 1명이 죽고 여려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밖에 백암리에서는 4월 2일에도 주민 5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였다가 해산하였고, 3일에도 시위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행되지는 못하였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外四面事務所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로201번길 16
1919년 3월 31일에 외사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外四面事務所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로201번길 16
1919년 3월 31일에 외사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