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항쟁의사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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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 623-1
탐방로그
오산시 수청동 623-1 오산대역 건너편 공원에 위치한 삼일독립항쟁의사 추모비를 찾았다. 오산역 앞에 있었던 것이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3.1독립항쟁의사 추모비 건립 취지문
3.1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에 의해 독립선언서 선포식이 거행된 후 3월 28일 오산장날을 기하여 전개되었습니다. 오산역광장에서 8의사 주도하에 800여명군중이 집결하여 오산역사, 우편소, 주재소, 면사무소, 금융조합, 일본인 상점, 주택 등 다수를 습격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몰아냄으로써 일본경찰에 체포, 고문 및 징역을 받았다. 이는 일제의 치욕적인 무단통치에 항거하여 우리의 민족정신을 드높인 역사적 사건입니다. 오산의 3.1독립만세운동을 기리고 항쟁의사들의 구국정신을 후예들에게 길이 물려주고자 합니다. 이에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 84주년을 맞이하여 위대한 선열들의 독립정신가 민족혼을 영원히 기념하고자 뜻있는 시민들의 중지를 모아 오산의 3.1독립만세운동 발상지인 오산역 광장에 이 추모비를 건립니다.
단군기원 4336(서기 2003)년 3월 28일 건립
오산 3.1독립항쟁의사 추모비 건립추진위원회 회장 김주원
오산 3.1독립항쟁의사추모비 건립추진위원회 회원 헌성비
명예회장 박신원(오산시장), 고문 공신택(전 성균관유도회 오산지부 회장), 구욱회(전 성균관유도회 오산지부 회장), 신종삼 (전 화성궐리사 도유사), 윤좌영(해평윤씨 외삼미 종중 고문), 최성식(전 오산시 의료보험조합 대표이사), 한세택(전 오산읍장), 회장 김주원(독산성복원보존회 회장). 부회장 김덕일(전 화성문화원장), 황갑용(오산시 자원봉사단체협의회 회장), 자문위원 이기룡(오산문화원장), 기획위원 이이호(향토사학자), 홍보위원 주현중(새마을운동 오산시지회 회장), 재정위원 이병옥(라이온스 오산·화성 부총재), 감사 이병대(오산농협 이사), 사무국장 최병기(독산성복원보존회 사무국장), 회원 가재창(우림건설 대표), 강용해(예비역 소령), 강원식(경도일보 지방국장), 강치순(오산새마을금고 이사장), 강판관(진주강씨 은열공파 이사), 공남식(오산 3.1 독립항쟁의사 유족대표), 공대식(민성마트 대표), 권영철(책할인매장 대표), 권영학(책할인매장 부장), 권영헌(회사원), 권태성(전 오산종합시장 협의회장), 권호증(전 오산시 의용소방대장), 김귀남(자운당), 김금선(전 궐동 새마을여성협의회장), 김금자(오산시 새마을부녀회장), 김명자(모경당), 김명환(오산시 문화공보담당관), 김봉수(하나은행 오산지점 차장), 김선종(광산김씨 평정공안공파 종손), 김언응(농협중앙회 오산·화정지부장), 김연수(전 오산대학장), 김영진(광산김씨 사온직장공파 종회장), 김월순(심현당), 김윤영(전 오산운암라이온스클럽 회장), 김은배(김해김씨 파종회 이사), 김은순(청은당), 김익(충효연합회 감사), 김재성(LG상사 패션사업팀 과장), 김재술(안동김씨 종친회 이사), 김종대(김해김씨 파종회 이사), 김지순(효현당), 김창성(제일상사 대표), 김효순(오산시립 도서관 운영위원), 남경식(문인), 문의호((주)동아 정기 대표이사 사장), 문회월(전 세마동 부녀회장), 문희철(송암), 민명기(정안당), 민병태(한미은행 오산지점장), 박금주(전 신장동 대한어머니회 회장), 박기원(전 운암공인중계사), 박대용(현대사 대표), 박덕원(한국과학기술연구소 부장), 박동우(오산제일신협 이사장), 박병팔(밀양박씨 파종회 이사), 박숙자(전 남촌동 부녀회장), 박승복(오산 대우센타 대표), 박영자(전 대원동 새마을협의회장), 박영주(도원), 박용을(밀양박씨 종친회 감사), 박인규(354-B지구 위원장), 박장원(문인), 박지순(성심약국 약사), 방명석(온양방씨대종회 이사), 배성애(성균관 여성유도회 오산지부 회장), 백남은(오산역 안내), 변영일(한국자유총연맹 오산지부장), 서성원(종합건설(주)건일 대표), 서순옥(청연당), 서위택(오산농협 감사), 선근명(금호타이어 오산대리점 대표), 손현수(오산역 부역장), 송영문(대한자원 대표), 송일현(한건상사 대표), 송정자(전 오산시 어머니합창단장), 신건호(오산시 지역경제과장), 신웅호(서울은행 오산지점장), 신재익(오산농협 역전지, 점장), 신정호(창암), 심상효(대한노인회 오산지회장), 안병숙(성균관 여성유도회 오산지부 부회장), 안재균(한국타이어(주) 오산대리점 대표), 안재숙(오산농협 감사), 안정옥(전 중앙동 새마을여성협의회장), 양철영(경도일보 기자), 엄감용(전 세마동 체육진흥회장), 엄정섭(전 화성군평통자문위원), 엄태완(링크빌 대표), 여운남(오산운암라이온스클럽 회원), 오명국(청암), 오명훈(가배교역 대표), 오화분(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오산시협의회장), 원갑준(서울일보 기자), 원대식(오산농협 이사), 원용진(전 동탄골프동우회 초대회장)
忠信禮義 故鄕烏山 충신례의 고향오산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 공약삼장(公約三章)
ㅡ. 금일(今日) 오인(吾人)의 차거(此擧)는 정의인도(正義人道) 생존존영(生存尊榮)을 위하는 민족적(民族的) 요구(要求)이니 오직 자유적(自由的) 정신(精神)을 발휘(發揮)할 것이요 결(決)코 배타적(排他的) 감정(感情)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ㅡ. 최후(最後)의 일인(一人)까지 최후(最後)의 일각(一刻)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意思)를 쾌(快)히 발표(發表)하라.
ㅡ. 일절(一切)의 행동(行動)은 가장 질서(秩序)를 존중(尊重)하야 오인(吾人)의 주장과 태도(態度)로 하여금 어디까지든지 광명정대(光明正大)하게 하라.
조선건국(朝鮮建國) 4252(서기 1919)년 3월 1일 선포 / 단군기원(檀君紀元) 4336(서기 2003)년 3월 28일 건립
오산 3.1독립항쟁의사 추모비 건립추진위원회 / 회장 김주원
오산 3.1독립항쟁의사추모비 건립추진위원회 회원 헌성비
회원 원유형(원주원씨 대성공파 종회장), 유강진(초평동 바르게살기협의회장), 유관진(전 오산시장), 유승덕(전 한국자유총연맹 오산지부장), 유승배(기계유씨 파종회 회장), 유시광(수원역 관리역장), 유윤수((주)경성 대표), 유을노(초평동 자문위원장), 유종진(창원유씨 대종손), 유한준(선경합판목재 대표), 윤기환(파평윤씨 소정공백천공파 이사), 윤봉숙(전 오산어린이집 초대회장), 윤신원(오산도시개발공사 이사), 윤영생(오산역장), 윤영선(대원동 노인회장), 윤진국(서울장례식장 대표), 윤태수(파평윤씨 판도공파 안성종회장), 이경훈(LG상사(주) 과장), 이광기(한미은행 오산지점 과장), 이기웅(합천이씨대종회 이사), 이대용(전농협중앙회 오산·화성시 지부장), 이동수(홍주이씨대종회 이사), 이동원(신문기자), 이명재(오산시청), 이병규(오산 청원회장), 이병렬(동양가구 대표), 이병익(바르게살기 중앙동협의회장), 이봉춘(수원보훈지청장), 이선훈(전주이씨 파종회 이사), 이성환(농협중앙회 과장), 이수웅(대한 베트남 참전전우회 오산·화성 지대장), 이순영(전 경기도의회의원), 이승우(LG증권(주) 과장), 이영옥(혜연당), 이영한(한주 카센타 대표), 이용우(경기도의회 의원), 이우면(인화재 대표), 이원규(전 한국문인협회 오산지부장), 이원장(오산농협 세마지점장), 이유성(오산농업협동조합 조합장), 이윤세(새마을주유소 대표), 이재홍(남산건설 대표), 이정묵(녹색환경운동연합 오산시협의회 회장), 이정원(대원동 43통장), 이진경(전 보호관찰소 오산시협의회장), 이진호(정문사 대표), 이창원(화성석재 대표), 이천식(녹색환경운동연합 오산시협의회 사무국장), 이형모(오산도시개발공사 대표이사), 이희수(전 오산테니스협회 회장), 임광형(전 오산로타리클럽 회장), 임대호(성균관 유도회 오산지부 회장), 임재장(전 오산·화성 이미용사협회 초대회장), 장기순(오산시 새마을 부녀회장), 전완봉(정선전씨 51세손), 전홍열(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오산지회장), 정규철(주정씨파종회 이사), 정영무(오산 중앙라이온스클럽 회장), 정영숙(성균관 여성유도회 오산지부 감사), 정주현(오산 3.1 독립항쟁의사 유족대표), 정창용(신흥 종합설비공사 대표), 정창현(한나라당 오산·화성지구당 위원장), 정팔기(성호레포츠 대표), 정명호(오산 3.1 독립항쟁의사 유족), 정명암(오산 3.1 독립항쟁의사 유족), 정예현(오산 3.1 독립항쟁의사 유족), 정순자(오산 3.1 독립항쟁의사 유족), 정성현(오산 3.1 독립항쟁의사 유족), 조석태(함안조씨파종회 이사), 조인규(오산의제21 사무국장), 조한구(우림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조희순(자경당), 지운영(충주지씨파종회 이사), 지치대(전 오산라이온스클럽 회장), 최기우(경주최씨관과정공파종회 이사), 최문규(학생), 최영락(오산제 학인), 최영식((주)대지건축설계사무소 소장), 최영화(전주최씨평도경절공파종회 이사), 최원헌(초평동 새마을협의회장), 최종해(전주최씨 평도지평공파), 탁병옥(광산탁씨 대종회 이사), 탁태환(남촌제 학인), 표기호(오산제 학인), 표완섭((주)광명상사 대표), 표준석(오산제 학인), 한귀동(오산문화원 이사), 한기일((주)신도시스템 대표), 한완우(기아자동차 사원), 한완호(한국이알에이(주) 사원), 한충일(삼인건설 대표), 허승수(김해허씨파종회 이사), 허재희(오산시여성단체협의회장), 허훈(충남설비 대표), 홍군의(남양홍씨파종회 이사), 홍석곤(향남촌 수직제 확인), 홍석온(백호체육관 관장), 홍진주(백완당), 황경수(자연보호 오산시협의회장), 황선재(하나은행 오산지점 차장), 황현철((주)오현전산유통 대표), 황현태(한아름상사 대표)
국민건강보험공단 오산지부. 연안김씨 오산종중회. 오산농업협동조합. 오산농협. 오산우진회. 오산로타리클럽 3750지구. 이화다이아몬드공업(주). 충장공 권율도원수종회.
후원 : 오산시. 오산문화원. 수원보훈지청. 오산역. 수원역
오산시 수청동 623-1 오산대역 건너편 공원.삼일독립항쟁의사 추모비를 찾았다.
오산역 앞에 있었던 것이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다.
三.一獨立抗爭義士追慕碑(3.1 독립항쟁의사 추모비)
三.一獨立抗爭義士追慕碑(3.1 독립항쟁의사 추모비)
음기
가족의 단결과 사랑이 없이 유지될 수 있는 가정이 없듯이 국민의 부지와 수호가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국가는 고금에 있지 않다. 가까운 은감의 예를 든다면 조선의 존망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육백년 동안 온 국민의 부지의 성과 수호의 덕에 힘입어 태산의 안과 반석의 고를 구가하던 조선국의 사직이 서사동점에 의한 표류물이 되어 마침내 도이의 절병지화를 피하지 못하니 비록 기수소치라 말할 수 있으나 만약 국민의 부지와 수호가 전일을 유지했다면 절병의 화를 어찌 이처럼 쉽게 당하였겠는가? 왕사를 통하여 볼 때 허다한 내란과 외우를 겪으면서도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면면히 지켜온 한반도의 한 민족이 작게는 조선종사의 재건을 위하여 무거운 돌을 뚫고 나오는 죽순처럼 열화 속에서 단련된 강철처럼 목전의 신고를 불구하고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 자주를 만인 앞에 호소하고 천하에 선포하는
음기
가족의 단결과 사랑이 없이 유지될 수 있는 가정이 없듯이 국민의 부지와 수호가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국가는 고금에 있지 않다. 가까운 은감의 예를 든다면 조선의 존망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육백년 동안 온 국민의 부지의 성과 수호의 덕에 힘입어 태산의 안과 반석의 고를 구가하던 조선국의 사직이 서사동점에 의한 표류물이 되어 마침내 도이의 절병지화를 피하지 못하니 비록 기수소치라 말할 수 있으나 만약 국민의 부지와 수호가 전일을 유지했다면 절병의 화를 어찌 이처럼 쉽게 당하였겠는가? 왕사를 통하여 볼 때 허다한 내란과 외우를 겪으면서도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면면히 지켜온 한반도의 한 민족이 작게는 조선종사의 재건을 위하여 무거운 돌을 뚫고 나오는 죽순처럼 열화 속에서 단련된 강철처럼 목전의 신고를 불구하고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 자주를 만인 앞에 호소하고 천하에 선포하는
운동을 거행하였으니 서기는 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 이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동시이기하고 부단이계하여 약 백여일 동안 이구동성으로 터저나온 대한독립만세라는 온 국민의 함성이 팔역에 울려 퍼지니 당시 우리 고장 오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의거에 참여한 지역의 지사 의인이 매우 많았지만 왜도의 의적말살 공작으로 후세에 전하지 못한 점 불소하니 애석한 일이다. 오늘날 오산시 민족운동사에 기재된 만세운동 주모자 명단에는 팔의사의 성명만이 황황하게 기록되어 있어 뒷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모두 건국공로 훈장을 받았다. 그 면모와 내용을 살펴보면 의사 김경도는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에 거주하는 농민으로 일년육개월의 형을 받았고 의사 정규환은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에 거주하는 농민으로 일년의 형을 받았고 의사 김용준은 수원군 성호면 금암리에 거주하는 삼십팔세 농민으로 육개월의 형을 받았고 의사 안락순은 수원군 성호면 세교리에 거주하는 삼십팔세 농민으로 역시 육개월의 형을 받았고 의사 유진홍은 수원군 성호면 세교리에 거주하는 사십사세 농민으로 징역 육월에 집행유예 이년을 받았고 의사 공칠보는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에 거주하는 삼십육세 농민으로 태형 구십대를 받았고 의사 이성구는 수원군 일형면 조원리에 거주하는 이십오세 농민으로 일년 팔개월의 형을 받았고 의사 이규선은 진위면 봉남리에 거주하는 이십오세 농민으로 역시 일년 팔개월의 형을 받았으니 비록 형량의 경중은 있으나 팔의사의 위국충심과 보국의지만은 대소의 차가 있었겠는가? 혹 독립만세의 장거가 왜정하게 있었던 한민족의 일시적으로 폭발한 항거지사라 말할지 모르겠으나 이 당당한 민족정기와 단단한 애국정신은 단군 개국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만년 동안 조차전패의 사이에도 간단 없이 우리 한민족의 심중에 면면히 간직되었던 것으로 비록 일거에 광복지영을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이 만세운동을 효시로 천신만고 투쟁 끝에 마침내 나라의 광복을 성취하고 일제를 퇴치하여 삼십육년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팔의사의 숭고한 위국충심과 투철한 보국의지로 얻은 보람이 아니겠는가? 그 짐은 곧 우리 한민족의 불멸하는 일월이고 그 지는 곧 우리 한국가의 장존하는 산하이다. 이같이 거룩한 의적을 후인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뜻에 우리 지역민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비를 새겨 거인래객의 이목이 많은 이곳 오산 역전 광장에 건립
하니 비록 만시지탄이 없지 않으나 팔의사의 위대한 위국정신과 거룩한 구국위업은 이곳 지역민 심중의 일월과 산하가 되어 영전할 것이니 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여. 정금지경(整襟之敬)의 예를 갖출지어다.
단군기원 4336(서기 2003)년 3월 28일 건립
철성후인 이리호 삼가 짓고
평강후인 채규선 삼가 음기 쓰다
고성후인 이석환 삼가 전면 쓰다
오산자원봉사단체협의회장 황갑룡 감수
오산시새마을금고이사장 강치순 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