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오산시 내삼미동 산71
- 탐방로그
- 애국지사 백명흠의 묘는 가족공동묘로 수원백씨 선영에 안장되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독립애국지사 백명흠
수원백씨 30세손
수원백씨 30세손
독립애국지사 백명흠
수원백씨 30세손
수원백씨 30세손
자 승복, 자부 김희순, 손 명식, 손부 심성분, 증손 윤석, 형석
손 호식, 손부 최종희, 증손 재현 재윤
손 영숙, 손서 박찬준
손 정숙, 손서 한동운
손 인숙, 손서 임종운
손 헤원, 손서 김병석
자 승덕
자 승만, 자부 이양금, 손 종혁, 증손 교린
손 원선, 손서 황호영
손 원상
녀 승분, 사위 김길준
손 호식, 손부 최종희, 증손 재현 재윤
손 영숙, 손서 박찬준
손 정숙, 손서 한동운
손 인숙, 손서 임종운
손 헤원, 손서 김병석
자 승덕
자 승만, 자부 이양금, 손 종혁, 증손 교린
손 원선, 손서 황호영
손 원상
녀 승분, 사위 김길준
공 1909년 2월 16일 생, 1936년 7월 6일 졸
경기도 수원 태생인 백명흠은 1927년 신간회의 창립에 감화를 받아 항일과 구국투쟁을 결심하고, 반일단체를 조직하기 위해 유인물을 제작하여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인천지역에 집중적으로 살포하였다. 그는 이러한 활동으로 일경의 요주의 감시대상 인물로 지목되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다가 1935년 2월 서울로 잠입하였다. 서울에 온 그는 동지규합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여 서울청년회 회원인 안중의 아들 안승락을 만나 그에게 돈을 전달하고, 같은 해 5월 초순경 서울 종로3가에 있는 중앙병원을 구입하여 의사 권 모씨로 하여금 병원을 운영하게 하고 자금조달에 힘썼다. 한편 그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태창직물, 동수제사, 암촌제사 등 각 공장에 취업시켜 이들을 중심으로 노동조합 결성을 추진하였으나, 일경에 피체되고 말았다. 그는 일경들의 악동한 고문으로 인해 빈사상태로 1936년 7월 6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석방되었으나 그날 오후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며 1996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며 1996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백명흠
본적 : 경기도 수원군 안용면 안녕리 37번지
자택 : 경기도 수원군 성호면 세교리
1916년 : 독서제에서 한문 수학
1922년 : 서울한성학원 입교
1924년 : 서울한성학원 졸업
1926년 : 배 밀양박씨(난희)와 결혼
1930년 :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유인물 배포활동
1935년 : 종로3가 7번지 소재의 중앙의원을 구입하여 개업. 인천대창직물, 동수제사, 암촌제사 등에 노동조합을 결성
2009년 6월 20일 건립
본적 : 경기도 수원군 안용면 안녕리 37번지
자택 : 경기도 수원군 성호면 세교리
1916년 : 독서제에서 한문 수학
1922년 : 서울한성학원 입교
1924년 : 서울한성학원 졸업
1926년 : 배 밀양박씨(난희)와 결혼
1930년 :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유인물 배포활동
1935년 : 종로3가 7번지 소재의 중앙의원을 구입하여 개업. 인천대창직물, 동수제사, 암촌제사 등에 노동조합을 결성
2009년 6월 20일 건립
제1묘
26세 수원백공 치수 유인 밀양박씨 지묘
27세 수원백공 낙원 유인 여산송씨 지묘
28세 통정대부 수원백공 남주 숙부인 김해김씨 숙부인 전주이씨 지묘
26세 수원백공 치수 유인 밀양박씨 지묘
27세 수원백공 낙원 유인 여산송씨 지묘
28세 통정대부 수원백공 남주 숙부인 김해김씨 숙부인 전주이씨 지묘
(29세) 자 형기 영기 홍기
(30세) 손 정현 용현 명현 봉현 대현 수현 태현
(31세) 증손 승록 승인 승복 승문 승로 승근 승일 승만 승진 승환 승언 증주 승소
(30세) 손 정현 용현 명현 봉현 대현 수현 태현
(31세) 증손 승록 승인 승복 승문 승로 승근 승일 승만 승진 승환 승언 증주 승소
독립유공자
30세 5대 白公明鉉(명현) 배 밀양박씨 신위
31세 6대 자 : 承福(승복)·承萬(승만)
30세 5대 白公明鉉(명현) 배 밀양박씨 신위
31세 6대 자 : 承福(승복)·承萬(승만)
구 유엔군 초전기념비 아래 수원백씨 선영 애국지사 백명흠(백명현)의 묘가 보인다.
백씨문중의 유래
백씨의 시조인 宇經(우경)의 자는 擎天(경천)이며,號(호)는 松溪(계)이시다. 공은 원래 당나라 소주의 사람으로 첨의사 이부상서의 관직이었으나, 당시 간신배의 모함으로 신라로 건너오셨으며, 신라 선덕왕 원년, 서기 780년 경신년이었다.
현재, 松溪公派(송계공파)는 29개파로 분류되어 있으며, 그중 우리의 시조 1세는
白公昌稷(백공창직)이시며 中郎將公派(중랑장공파)이셨으나, 이후 16세 白公仁傑(백공인걸) 선조께서 "문경공파"로 분파되었으며, 당시 棠山公系(당산공계)로 분류되어 오늘날 우리 후손은 "文敬公派 棠山公系"(문경공파 당산공계)로 내려오고 있다.
본 납골묘는 안녕동과 정남에 거주하고 있는 "수원백씨 안정화수회"로서 25세 白公圭鎭(백공규진) 선조를 1대로 상단에 모시고 있으며, 26세 白公致洙(백공치수), 27세 白公樂源(백공낙원), 28세 白公南周(백공남주) 선조를 제1 납골묘로 하였고, 제2 납골묘는 28세 白公南召(백공남소)의 선조를 납골묘 중앙에 모시었고, 29세 후손부터는 납골묘 정면남쪽을 중심으로 모시었고 31세부터는 사망순서대로 입골하도록 하였다.
2007년 12월 23일 현재, 25세(1대)에서 33세(9대)까지 백씨문중 계보인원은 119명이며
현재에 이르러 25세(1대)의 후손은 약 500여명으로 "수원백씨 안정화수회"의 계보는 뒷면과 같다.
백씨의 시조인 宇經(우경)의 자는 擎天(경천)이며,號(호)는 松溪(계)이시다. 공은 원래 당나라 소주의 사람으로 첨의사 이부상서의 관직이었으나, 당시 간신배의 모함으로 신라로 건너오셨으며, 신라 선덕왕 원년, 서기 780년 경신년이었다.
현재, 松溪公派(송계공파)는 29개파로 분류되어 있으며, 그중 우리의 시조 1세는
白公昌稷(백공창직)이시며 中郎將公派(중랑장공파)이셨으나, 이후 16세 白公仁傑(백공인걸) 선조께서 "문경공파"로 분파되었으며, 당시 棠山公系(당산공계)로 분류되어 오늘날 우리 후손은 "文敬公派 棠山公系"(문경공파 당산공계)로 내려오고 있다.
본 납골묘는 안녕동과 정남에 거주하고 있는 "수원백씨 안정화수회"로서 25세 白公圭鎭(백공규진) 선조를 1대로 상단에 모시고 있으며, 26세 白公致洙(백공치수), 27세 白公樂源(백공낙원), 28세 白公南周(백공남주) 선조를 제1 납골묘로 하였고, 제2 납골묘는 28세 白公南召(백공남소)의 선조를 납골묘 중앙에 모시었고, 29세 후손부터는 납골묘 정면남쪽을 중심으로 모시었고 31세부터는 사망순서대로 입골하도록 하였다.
2007년 12월 23일 현재, 25세(1대)에서 33세(9대)까지 백씨문중 계보인원은 119명이며
현재에 이르러 25세(1대)의 후손은 약 500여명으로 "수원백씨 안정화수회"의 계보는 뒷면과 같다.
수원백씨 태정화수회 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