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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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장탄리 914
탐방로그
정주동산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 실향민 모임인 정주군민회에서 운영중인 공원묘역이다. 이곳에는 3·1 운동 민족대표인 이승훈, 이명룡, 김병조 선생의 추모비가 같이 서 있었다. 겨례의 스승 남강 이승훈 선생 추모비는 평북 정주 출신 실향민 모임인 정주군민회에서 조성한 사설 공동묘지인 정주동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2013년 12월 25일 세워졌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현창사업
1930년 남강 동상 건립(정주 오산학교 교정)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1974년 남강 동상 건립(서울 어린이대공원)
1982년 남강 흉상 건립(서울 오산학교 교정)
1984년 남강문화재단 설립
1986년 남강어록비 건립(독립기념관 경내)
1991년 남강교육상 제정
1998년 제1회 겨레의 스승으로 선정(한국교총)
1999년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
1999년 남강기념관 준공(서울 오산학교 교정)
2001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2004년 남강 가족 안장식 거행
유언
내 유해는 땅에 묻지 말고 생리 표본을 만들어 학생들을 위해서 쓰게 하라.
겨례의 스승 남강 이승훈 선생 추모비
세운날 : 2013년 12월 25일
남강 이승훈 선생 약력
선생은 1864년 3월 25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5세부터 보부상으로 장사를 시작하여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청일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으나 35세에는 평양에 큰 상사를 개설하고 국제무역상으로의 입지를 굳혔다.
을사조약에 이어 1907년 고종이 강제퇴위되자 망국의 한을 느끼며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때부터 고향 정주에 오산학교를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기 시작했으며, 신민회 총감과 태극서관 관장을 역임하는 등 애국활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에 무관학교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이어서 105인 사건에도 주모자라 하여 계속 투옥되었으나 5년 만에 출옥하고, 이듬해에 오산 교회 장로가 되어 기독교 활동과 함께 사회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에는 33인의 대표로 3.1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일제에 체포되어 세번째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에도 조선교육협회 창립, 제4대 동아일보 사장 역임, 물산장려운동 확산 등 사회운동과 이상향 실현을 위해서 힘쓰다가 1930년 5월 9일에 67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독립운동과 교육활동
1907년 신민회 가입, 강명의숙과 오산학교 설립
1910년 오산학교 제1회 졸업생 배출
1911년 무관학교 사건으로 제주도 유배
1912년 105인 사건으로 투옥
1915년 5년 만에 가출옥, 평양신학교 수학
1916년 오산교회 장로 장립
1919년 3.1운동 주도로 투옥, 일경의 방화로 오산학교 전소, 폐허화
1922년 33인 중 마지막으로 가출옥, 조선교육회 창립 주도, 민립대학 설립운동 참여
1924년 동아일보 제4대 사장 역임, 물산장려운동 주도
1925년 재단법인 오산학원 이사장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