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 394
- 탐방로그
- 이포리 헌병주재소 3.1운동 만세시위지 안내판을 찾기 위해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 394에 왔다. 이포헌병주재소는 1917년 8월 1일 여주헌병분대 이포파견소로 설치되었다가 1918년 4월 1일 이포헌병주재소로 바뀌었다. 3·1운동 후인 1919년 8월 20일 이포 경찰관주재소로바뀌었다. 해당 건물은 멸실되었으며, 시위지의 현재 위치는 금사지구대 건물 우측으로,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이포리 헌병 주재소
3.1운동 만세 시위지
3.1운동 만세 시위지
이포리 헌병 주재소 3.1운동 만세 시위지.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이포로 4
이포리 헌병 주재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여주에서는 최초로 3.1운동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으로, 금사면 이포리 주민들이 시위를 전개한 곳이다. 여주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늦은 1919년 4월 1일 이포리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포리 헌병 주재소앞에 모인 주빈 3,000 여 명은 시위하다가 주재소를 습격하였고, 군중들은 서류와 기물을 파괴하는 등 분위가는 점차 격화되었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본 헌병들의 발포로 시위대는 해산하였으며, 이때 10명이 체포되었다. 4월 2일에도 시위는 벌어져 37명이 체포되었다. 일제는 이포에서 전개된 3.1운동 만세 시위를 경기도에서 '광포(狂暴)한 사례로 꼽을 만큼 여주 주민의 강렬한 투쟁정신을 보여주는 시위였다.
이포리 헌병 주재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여주에서는 최초로 3.1운동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으로, 금사면 이포리 주민들이 시위를 전개한 곳이다. 여주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늦은 1919년 4월 1일 이포리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포리 헌병 주재소앞에 모인 주빈 3,000 여 명은 시위하다가 주재소를 습격하였고, 군중들은 서류와 기물을 파괴하는 등 분위가는 점차 격화되었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본 헌병들의 발포로 시위대는 해산하였으며, 이때 10명이 체포되었다. 4월 2일에도 시위는 벌어져 37명이 체포되었다. 일제는 이포에서 전개된 3.1운동 만세 시위를 경기도에서 '광포(狂暴)한 사례로 꼽을 만큼 여주 주민의 강렬한 투쟁정신을 보여주는 시위였다.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 394 금사파출소건너편 이포리 헌병주재소 3.1운동 만세시위지 안내판을 찾았다.
파출소앞쪽 길건너 맞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