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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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 252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류관순 열사 동상 명문

한국의 딸 류관순은 우리 민족 정기의 화신이다.
일천구백십구년 기미 삼월일일
어린 여학생의 몸으로 태극기를 높이 드니
여섯 고을이 향응하고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니
왜적의 총칼이 보이지 않아
아우내 장터가 피로 물들었다.
왜병에게 잡힌 몸이 되었으나
자유를 굳게 주장하여
왜적의 재판을 거절하니
적의 법관도 크게 놀랐다.
칠년의 최고형을 받고
옥중에서도 용감히 투쟁하다가
마침내 피살되니
그 때 나이 겨우 열일곱
아 아 슬프다
인간의 생애는 비록 짧으나
천상의 성녀로서
거룩한 그 정신은
이 나라에 수호신이 되어
이 겨레와 함께
영원히 살리로다·····

서기 1983.10.12.
류제연 글을 짓고 인영선 글을 쓰고
이종각이 조각하다
유관순 열사 유적(柳寬順 烈士 遺蹟)

사적 제230호
소재지: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 252

이곳은 기미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유관순(1902~1920) 열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영혼을 추모하는 곳이다.
열사는 1902년 12월16일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씨의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이소제이다.
이화학당에 다니던 중 서울의 3.1만세 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919년 4월 1일 3천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운동인 아우내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 최종판결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투쟁하다가 갖은 폭행과 고문에 못이겨 1920년 9월 28일 순국하였다. 1969년부터 유적지를 조성하였으며 1972년에 건립한 추모각을 비롯하여 생가, 봉화탑, 독립기념비, 동상, 영정, 초혼묘, 유관순 열사 기념관 등 관련 유적이 있다.
추모각
류관순 기념관
유관순 열사의 생애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의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이소제이다.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던 중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여하였다.
조선총독부의 휴교령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 온 열사는 인근 지역 주민들과 연락하여 4월 1일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열사는 시위현장에서 부모를 잃고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을 거쳐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 1주년을 맞아 서대문감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20년 9월 28일 열사는 일제의 가혹한 폭행과 고문에 못 이겨 순국하였다. 열사의 시신은 이화학당 주선으로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하였으나 후에 망실되었다.
정부는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연보
1902. 12. 16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출생
1915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에 편입
1918. 4 이화학당 고등과 입학
1919 국현숙, 김희자, 김복순, 서명학 등과 결사대를 만들어 나라를 위해 몸 바칠 것을 맹세
1919. 3. 1 서울 기미독립만세운동 참가
1919. 3. 5 남대문역(서울역) 학생단 시위운동 참가
1919. 3. 13 총독부 휴교령으로 귀향
1919. 4. 1 아우내독립만세운동 주도, 일본헌병에게 체포
1919. 5. 9 공주지방법원에서 실형 선고받고 후에 항소
1919. 6. 30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 선고
1920. 3. 1 서대문감옥에서 독립만세운동 전개
1920. 9. 28 서대문감옥에서 순국
1962. 3. 1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2002. 12. 16 유관순 열사 탄신 100주년
아우내독립만세운동
3월 13일 유관순은 사촌 언니인 유예도와 함께 귀향하여 고향에서 아우 내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유관순은 아버지 유중권을 비롯하여 조인원, 김구용 등 20여명의 동네 유지들과 4월 1일 아우내 장날 정오에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논의하고 인근 각 면, 촌에 연락기관을 두고 대규모 독립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3월 31일 유관순은 용두리 매봉산에 봉화를 올렸으며 주변 24개 지역에 서도 일제히 봉화를 올려 호응하였다.
4월 1일 조인원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유관순을 필두로 한 3천여명의 군중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병천 주둔 일본헌병들과 지원군이 일제히 사격을 가하여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포함해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 252 유관순 열사 사우
殉國少女 柳寬順 烈士 招魂墓 奉安紀念碑
순국소녀 류관순 열사 초혼묘 봉안기념비
순국소녀 류관순 열사 초혼묘와 존영상을 봉안하면서

3.1독립선언으로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주 자존의 기치 아래 4.1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의 주역 류관순 애국소녀가 일제의 잔인무도한 고문과 만행으로 목숨을 거두는 순간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우리나라 독립은 막을 수 없다. 너희들은 반듯이 망하고야 말 것이다.」 이 한마디를 남기고 피살 당하시니 때는 1920년 10월 12일. 천추에 한이 서린 애석한 날이기도 하다. 이뿐이랴. 채 피여보지도 못한 한떨기 꽃봉우리 열일곱살 처녀 류관순은 사지가 육시로 찢기고 유택마저 파헤처저 흔적없이 망실 당하였으니 동서고금에 또 이런 일이 있으랴. 이 엄청난 현실 앞에 열사의 원한과 민족의 분노를 무엇으로 푸르오리까? 침략자 일제의 천인공로할 만행과 인류 역사에 다시없는 단말마적 폭악을 엄히 규탄하면서 순국소녀 류관순 열사의 고혼마저 편히 쉴 유택없이 70여성상이 무관심 속에 흘렀음을 우리 모두 자책과 애통한 민족의 분노를 금할길 없어 열사의 한맺힌 원한을 풀어드리고 영혼을 위로하여 영구히 잠드실 초혼묘와 존영상을 봉안하고 봉화대 등정로를 준공하여 순국소녀 류관순 열사의 숭고한 우국충정과 정신을 기리 받들고 빛내고저 역사의 현장 이곳에 겨레의 이름을 빌어 엄숙한 마음으로 이 비를 세우노라.

1990년 4월 초하루 의거일을 맞이하여
건립 류관순 열사 기념사업회
회장 류근창 위원장 김재홍
비문 아관 김재홍 짓고 무림 김영기 씀
협찬 최원석 김승연 김정례 배종렬 최승진 엄상호 장수홍 김인득 이운일 윤석금 오영록 윤병로 윤병조
柳寬順 烈士 像(류관순 열사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