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산7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乙未義兵 砥平守城將 順興安公 鍾曄 之墓 配 草溪鄭氏 祔左
(을미의병 지평수성장 순흥안공 종엽 지묘 배 초계정씨 부좌)
(을미의병 지평수성장 순흥안공 종엽 지묘 배 초계정씨 부좌)
乙未義兵 砥平守城將 順興安公 鍾曄 之墓 配 草溪鄭氏 祔左
(을미의병 지평수성장 순흥안공 종엽 지묘 배 초계정씨 부좌)
(을미의병 지평수성장 순흥안공 종엽 지묘 배 초계정씨 부좌)
을미의병 호좌의진 지평수성장 순흥안공 종화의 자는 원춘, 호는 가곡이다. 동방 유종인 문성공 안동의 21세손이고 병자절신이며 양동 입향조 동오공 광욱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윤옥 어머니는 청송심씨로 지평현 상동면 석곡리에서 1864년 5월 21일 출생하였다.
한학에 조예가 깊어 지평향교 학관으로 후학양성에 노력하던 중 1895년 을미에 왜에 의하여 국모가 시해당하고 국왕이 친일 간신들에 의하여 강제로
한학에 조예가 깊어 지평향교 학관으로 후학양성에 노력하던 중 1895년 을미에 왜에 의하여 국모가 시해당하고 국왕이 친일 간신들에 의하여 강제로
상투를 자르는 등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양동에서 괴은 이춘영, 하사 안승우, 포군 김백선 등이 지평의병을 창의출병 할 때 참여하여 물자지원에 적극 나섰고, 호좌의진에서는 지병수성장으로 의병소모와 군수물자 지원에 적극 활약하다가 친일파들의 방해와 협박에 수없이 괴롭힘을 당하였다.
1907년 정미에는 이인영 의병장이 양동에서 13도창의군을 창설할 때 물심양면으로 협조하였고 다음 해인 1908년 병신 1월 24일 땅거미 질 무렵 귀가 도중 노상에서 친일패당으로 추정되는 자객에 의하여 변사하니 44세였다. 양동면 석곡리의 작은가마골 자좌에 있던 묘를 2018년 4월 30일, 공의 구(救) 정신을 선양하고 체혼(體魂)의 평안을 위하여 양평군의 지원을 받아 양평을미의병국정신현창회에서 이곳 석곡리 산 74번지 양평의병묘역 자좌에 천장하였다. 배위 초계정씨 사이에 생 1남 하니 승만인데 일제의 압박과 가난으로 강원도 산골을 전전하다가 하세하여 묘는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백아곡 공동묘지에 안장했는데 실전했다.
1907년 정미에는 이인영 의병장이 양동에서 13도창의군을 창설할 때 물심양면으로 협조하였고 다음 해인 1908년 병신 1월 24일 땅거미 질 무렵 귀가 도중 노상에서 친일패당으로 추정되는 자객에 의하여 변사하니 44세였다. 양동면 석곡리의 작은가마골 자좌에 있던 묘를 2018년 4월 30일, 공의 구(救) 정신을 선양하고 체혼(體魂)의 평안을 위하여 양평군의 지원을 받아 양평을미의병국정신현창회에서 이곳 석곡리 산 74번지 양평의병묘역 자좌에 천장하였다. 배위 초계정씨 사이에 생 1남 하니 승만인데 일제의 압박과 가난으로 강원도 산골을 전전하다가 하세하여 묘는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백아곡 공동묘지에 안장했는데 실전했다.
손자는 수영, 도영이고 손녀들은 김해인 김지남, 전주인 이삼채, 청송인 심종학에 출가하고 증손 정호, 정배, 정순은 수영의 소생이고, 창희, 숙희, 미희, 윤희, 보희, 영희는 도영의 소생이며, 현손 재홍, 재경은 정호 소생이다.
2018년 4월 일 양평을미의병정신현창회 회장 이복재 근찬
2018년 4월 일 양평을미의병정신현창회 회장 이복재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