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치서 묘

4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산7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의사(義士)는 연안 차씨로 고려말 학자로 충신이며 절신으로 두문동칠십이인(杜門洞72仁)의 한사람으로 유명한 문절(文節)공 차원부(車原頫 1320~?)선생의 후손이다. 지평현 상동면 죽장리(지금의 양평군 양동면 계정리) 둔말에 포군(砲軍)인 조부와 부, 그리고 의사 등 삼대가 살았다. 의사의 조부는 (음) 1895년(乙未) 11월 28일 이춘영 안승우, 김백선 등이 주도하여 지평의병을 창의함에 의연(毅然)이 참여하여 출정하였으나 소식을 알 수 없자 다음해인 1896년에 의사의 부친은 부친의 소식도 알
아낼 겸 자신도 나라를 위하여 초개(草芥)와 같이 몸을 던지겠다며 의병에 참여하였다. 의사의 부친은 먼촌 형벌되는 차도선 의병대장이 함경도와 만주에서 홍범도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의병진에 뛰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는 약관에 홀로 계시는 조모와 모친을 모시고 10여 성상동안 성실하게 가업을 꾸려가야만 했다. 이후 이웃마을의 박광천(朴光天, ?~1910) 의병으로부터 조부 소식은 알길이 없고 부친은 만주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의사는 조부와 부친의 원수를 갚고 나라를 위하여 살생성인하겠다며 조모와 모, 처와 두 딸등 가족을 남겨두고 박광천 의병을 따라 이인영이 이끄는 의병부대(김상진의 부대라는 설도 있음)인 13도 창의대진소에 소속되어 경기도의 여주, 양근, 지평과 강원도의 홍천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가족의 안위가 궁금한 나머지 야음을 틈타 집에 들렀다가, 일본순사를 피해 달아나다 순사가 쏜 총 총탄을 맞아 순절하고 말았다. 둔말마을 뒷산 중턱, 북서쪽을 등지고 남동쪽을 바라보는 건좌손향(乾坐巽向)에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장사를 지냈으니 삼대가 의병에 참여하여 사생취의(捨生取義)했던 것이다. 돌보는
이 없어 실묘 위기에 있던 지사의 묘는 을미의병성역화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안상복)가 찾아 벌초하고 표석을 설치하였다가 양평군의 지원으로 2016년 5월에 이곳 양평의병묘역으로 이장하고 비로소 오늘에 비석을 세워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길이 기리고자 한다.
2017년 정유 10월 27일 양평문화원 양동분원장 최봉주 근찬
양평군의 지원을 받아 (사)양평의병기념사업회가 세움
의병 연안차공 치서 지묘
三代 抗日義兵 車致瑞 義士 之墓 配 順興安氏 合祔
(3대 항일의병 차치서 의사 지묘 배 순흥안씨 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