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흥 집

4

주소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6-3
탐방로그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6-3에 위치한 춘추민속관을 찾았다. 춘추민속관의 별채가 바로 독립유공자 범재 김규흥 선생의 생가라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춘추민속관
춘추민속관의 별채가 독립유공자 범재 김규흥 선생의 생가이다.
독립운동가 애국지사 범재 김규흥 선생님 생가
춘추민속관의 유래

이 지역은 옥천군의 옛 소재지로 관아, 향교가 있었고 양반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곳이나 지금은 한옥 형태의 주택이 남아있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이 고택은 두 채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 건물은 문향헌으로 애국지사 범재 김규흥(혁명정부 도독부 총참의겸 육군소장)선생의 생가로 1760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풍김씨 가승 기록에 의하념 와가 85칸, 초가 12칸으로 되어있다. 오른쪽 건물은 우국지사 괴정 오상규(구 한말 탁지부 국장)이 거처한 곳이다. 상량문에는 숭정기원후 사병진 십이월(1856년 12월, 철종 7년)이라는 글귀가 선명히 적혀 건축연대를 알려주고 있다. 숭정은 중국 명나라 말 황제 의종의 연호로 건축연도를 표기한 것이다.
현재는 우물정자의 별채 문향헌과 안채, 행랑채, 뒷간, 우물 55칸과 체험관 등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마당에는 정승집의 상징인 회화나무(일면 벽사목)가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역사의 흐름을 지켜오고 있다. 지금은 문화관광부와 충청북도, 옥천군의 도움으로 새롭게 다듬어 춘추민속관 이름으로 전통 한옥체험(숙박, 전통혼례, 한옥짓기 체험학교, 한옥마실 체험 프로그램)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신해혁명에 참가한 독립운동가 김규흥 선생!
옥천읍 문정리 출신 독립운동가 범재 김규흥 선생. 김규흥 선생은 1911년 중국뿐만 아니라 아사아 민주공화제의 시작을 알린 중국 제1차 신해혁명의 주역으로 참가해 광동 혁명정부로부터 참의, 고문원 관직까지 받은 우리 고장의 위대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일찍이 신문물을 깨쳐 죽향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람 창명학교를 세웠고,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건으로, 그동안 김규흥 선생의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 연구를 통해 첫 한국인 참가자로 김규흥 선생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평생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독립운동을 지원해온 김규흥 선생, 우리 고장의 자긍심을 높여줄 선생의 생애를 들여다보며 광복 제67주년을 맞은 2012년, 우리 역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춘추민속관
문향헌(聞香軒)의 유래

이 지역은 옥천군의 옛 소재지로 관아와 객사, 향교가 있었고, 양반들이 주로 많이 모여 살아 양반고을이라 불리워졌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옥 형태의 주택이 많이 소실되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현재 이 고택은 두 채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 건물은 문향헌으로 애국지사 범재 김규흥(凡齋 金奎興, 1872년-1936년) 선생이 태어나신 유서 깊은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1760년(영조36년)에 건립된 것으로, 와가(瓦家) 85칸과 초가(草家) 12칸으로 되어 있다. 「청풍김씨 가승(家乘)」. 오른쪽 건물은 우국지사 괴정 오상규(槐庭 吳相奎) 선생이 거처한 곳으로 상량문에는 숭정기원후사병진십이월(崇禎記元後四丙辰十二月 - 1856년 12월 - 철종7년)이라는 글귀가 선명히 적혀 있어 건축연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숭정은 중국 명나라 말, 황제 의종의 연호로 건축 연도를 표기한 것이다. 현재는 우물정자(井)의 문향헌과 행랑채, 뒷간, 우물 등 55칸과 체험관이 보존되어 있다. 마당에는 정승집의 상징인 회화나무(일명 선비나무, 벽사목)가 오랜 세월의 흐름을 지켜오고 있어 그 역사적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지금은 문화관광부와 충청북도, 옥천군의 도움으로 새롭게 다듬어 춘추민속관이란 이름으로 전통 한옥체험업(전통혼례, 한옥학교, 민박, 한옥마실음악회 등)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2010년 6월 13일 옥천군 향토유적 春秋民俗館(춘추민속관)
춘추민속관(春秋民俗館)

옥천군 향토유적 제2009-5
소재지: 충북 옥천군 옥천읍 향수3길 19(문정리 6-1,2)

이 고택은 사간원 정언을 지낸 김치신(金治信)이 176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자신의 호를 따서 문향헌(聞香軒)이라 불렀다. 구한말 그의 5대손이며 독립운동가인 김규흥 참봉이 살던 97칸의 큰 고택으로, 문향헌은 ㅁ자 형태이며 각채는 모두 85칸의 기와집과 12칸의 반초가.반기와집이었다 한다. 1910년대에 대한제국의 탁지부 출납국장 출신인 괴정(槐庭) 오상규(吳相奎)가 매입하여 그의 차남인 오윤묵(吳允默)이 일부 증축하였으나 현재 ㅁ자형의 안채와 별채만 남고 선비의 상징인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마당에 있어 운치를 자랑한다. 한때 대원군이 머물기도 한 이고택은 박정희 대통령이 영부인 육영수 생가를 방문할 때 수행원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