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병 전투지(상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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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220-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양평의병 전투지 - 상원사
1907년 후기의병 당시 양평의병의 근거지였던 곳이다. 일제가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면서 의병의 대일항전은 더욱 격화되었다. 이즈음 양평의병은 권득수, 조인환 의병장의 지휘 아래 용문산의 상원사를 비롯하여 용문사, 사나사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였다. 양평의병이 활발하게 항일전을 전개하자, 일제는 의병을 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양평의병은 1907년 8월 24일 일본 보병 제52연대 제9중대가 용문사를 습격해오자 상원사로 후퇴하여 항쟁하였다. 이때 상원사는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복원되었다.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220-5 상원사 양평의병전투지 상원사 의병전투지를 찾아가고 있다.
상원사 삼층석탑
대웅전(大雄殿). 석가모비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다.
상원사(上院寺)
○ 상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선사 본말사지」의 기록에 의하면 용문사와 같은 시기인 913년에 이미 성찰로서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 서기 1330년(충숙왕 17) 원증국사 태고보우(1301~1382)가 30세 때 이곳 선원에서 12가지 큰 서원을 세우고 정진하여 득력하였다.
○ 서기 1398년(태조 7) 조안이 중창하고 태조의 왕사였던 무학선사(1327~1405)가 왕사를 사양하고 내려와 이곳에서 수도하였고, 후에 효령대군이 이곳을 원찰로 삼고 수도 생활하였다.
○ 서기 1462년(세조 8)에 왕이 이곳에 순행하였는데, 이 때 담화전 법당 위로 누런빛이 하늘에 올라 백의관음으로 화현하였으며, 5색의 원광이 휘황하여 인근 사찰 승속과 30리 밖 주민들까지 이를 보고 몰려들어 찬탄 정례하였다 한다.
○ 서기 1907년(융희 원년) 이 지역이 항일의병의 근거지라 하여 일본군이 불을 질러 법당만 남고 전소되었으며, 서기 1918년에 주지 최화송 화상과 화주 차상원이 큰 방을 복원하였고, 1934년 주지 최경언이 증수하였으나 서기 1950년 한국전쟁 때 다시 전소되었다.
○ 서기 1969년에 주지 덕송 화상이 초막을 짓고 복원에 착수하였고 서기 1970년부터 주지 경한이 요사와 삼성각, 대웅전, 용화전을 차레로 복원하였다.
○ 서기 2001년 주지 청암 선사가 선원 세 채, 요사 두 채와 삼성각 대웅전을 증축 복원하고, 진입로 포장, 석축 공사를 하여 용문선원을 개원한 후 전국의 유수납자들이 수행정진 중이다.
「白衣관음현상」 세조 8년(1462) 10월. 미지산 상원사 행행(行幸)때에 담화전 상공운상에 출현한 "백의관음성상" 출처 「관음현상기」
양평의병 전투지 - 상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