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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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545-1
탐방로그
여주시 천송동 545-1에 위치한 여주박물관 외부에는 유세열(류세열) 의병장의 손자인 류주현의 문학비도 찾아볼 수 있었다.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며 여주의 독립운동가와 여주의 3.1운동, 국권회복을 위한 여주인들의 투쟁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여주박물관
여주의 독립운동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3.1운동을 계기로 통합된 독립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여주 출신 독립운동가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대신면 보통리 출신의 조성환은 임시정부 국무위원겸 군무총장을 역임했으며, 한국광복군 창설에 기여하였다. 금사면 주록리 출신의 엄항섭은 임시정부 외무위원회 위원장과 선전부장을 역임하였으며, 김구의 판공비서로서 그의 활동을 적극 지워하였다. 엄항섭의 부인으로 본적을 여주로 옮긴 연미당과 딸 엄기선은 여성독립운동가로 임시정부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여주 출신의 이규학은 임시정부 내무부 경무과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광복군 중령으로 국내진입작전을 준비하였다.
여주의 3.1운동

여주 사람들의 3.1운동은 3월부터 시작되었다. 이포 출신의 홍병기는 민족대표 중 1인으로 서울에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독립선언식에 참여하였다. 3월 말 조병하는 여주 읍내에서 여주의 첫 번째 만세운동을 계획하였지만 일제경찰에게 체포되면서 실패하였다. 본격적인 여주 지역에서의 만세운동의 시작은 4월부터였다. 4월 1일 금사면 이포에서 3천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여주 읍내와 북내면, 능서면, 흥천면, 개군면 등 여 전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3.1운동 기간 최소 7,000여 명 이상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당시 여주 인구(약 6만명)의 12%나 되는 대규모의 인원이었다. 여주 만세운동은 일제경찰에 의해 경기도 만세시위의 '흉포(凶暴)'한 사례로 뽑힐 정도로 격렬하였으며, 이는 여주 주민들의 강렬한 투쟁 정신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국권회복을 위한 여주인들의 투쟁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여주에서도 1896년 초에 북내면 출신 심상희를 대장으로 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여주민들은 의병에 적극 가담하여 중요한 인적, 물적 기반이 되었고, 여주의병도 충청도지역까지 진출하여 광주, 이천 등지의 의병들과 연합전선을 형성해 크게 기세를 올렸다. 이후 여주의병들은 정미의병 항쟁기간인 1907년에서 1909년까지 일본 목선을 습격하고 여주읍을 점령하는 등 많은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항일의병운동이 전국적 규모로 확대되던 시기에는 북내면 출신 이인영이 13도 총대장으로 추대되어 연합전선을 형성하였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벌어지자 여주 곳곳에서도 동시다발적인 만세운동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