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순 동상

4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삼천동 28-79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춘천시 삼천동 469-15 공지천 의암공원 의암 유인석 선생 동상.
춘천시립도서관에 있었던 애국지사 윤희순 지사의 동상이 이곳으로 이전되었다고 해서 찾았다.
의암 유인석 선생 동상의 앞쪽 맞은편에서 윤희순 지사의 동상을 찾을 수 있었다.
윤희순 의사 동상

윤희순의사는 1860년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16세에 춘천시 남면 발산리 항골에 거주하는 류제원과 결혼하여 춘천으로 이거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일제의 침략과 내정간섭에 항거하여 전국 각지에서는 항일 구국운동이 전개되었다. 윤희순의사의 시아버지인 류송석이 춘천의병으로 출정하자 자신도 적극적으로 의병을 돕기 위해 마을 부녀자들과 군량을 지원하고, [안사람 의병가], [병정의 노래] 둥울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1907년 정미의병이 의거하자 윤희순 의사는 군자금을 모아 의병을 돕는 한편, 화약과 탄환을 만들거나 군사훈련에 동참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 의병항쟁에 참여하였다. 1910년 나라가 일제에 병탄되자 윤희순 의사의 가족은 중국 서간도로 이주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특히 동창학교의 분교인 노학당(老學堂)을 설립하여 50여명의 항일 투쟁 인재를 양성하였고, 중국 일대에 흩어진 동지들을 모아 조선독립단 및 가족부대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 아들 류돈상이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순국하자 윤희순 여사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들, 손자 등이 선대의 유훈을 이어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4대에 걸쳐 60여년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항일투쟁에 헌신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윤희순 여사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기리며 널리 선양하고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일제강점의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1990년 11월 7일 이 동상을 건립하였다.
윤희순 의사 동상

윤희순의사는 1860년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16세에 춘천시 남면 발산리 항골에 거주하는 류제원과 결혼하여 춘천으로 이거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일제의 침략과 내정간섭에 항거하여 전국 각지에서는 항일 구국운동이 전개되었다. 윤희순의사의 시아버지인 류송석이 춘천의병으로 출정하자 자신도 적극적으로 의병을 돕기 위해 마을 부녀자들과 군량을 지원하고, [안사람 의병가], [병정의 노래] 둥울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1907년 정미의병이 의거하자 윤희순 의사는 군자금을 모아 의병을 돕는 한편, 화약과 탄환을 만들거나 군사훈련에 동참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 의병항쟁에 참여하였다. 1910년 나라가 일제에 병탄되자 윤희순 의사의 가족은 중국 서간도로 이주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특히 동창학교의 분교인 노학당(老學堂)을 설립하여 50여명의 항일 투쟁 인재를 양성하였고, 중국 일대에 흩어진 동지들을 모아 조선독립단 및 가족부대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 아들 류돈상이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순국하자 윤희순 여사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들, 손자 등이 선대의 유훈을 이어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4대에 걸쳐 60여년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항일투쟁에 헌신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윤희순 여사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기리며 널리 선양하고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일제강점의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1990년 11월 7일 이 동상을 건립하였다.
윤희순 상
혼불

맥국 산하에
별 하나 반짝 거렸네
암흑시대 민족의 앞길 밝혔네
여의내 골에
왜적을 무찔렀던 혼불
안사람 의병가의 함성은 울려퍼졌네
만주 벌판에
대한의 딸은 일어서네
봉의산 처럼 높이 봉화를 올리고있네

김영기 글
해주윤씨

1860년 윤익상씨의 따님으로 태어나다. 구한말 의병장 외당 유홍석 선생의 며느리.
춘성군 가정리 여의내골을 중심으로 여성 의병으로서 활약하다.
화승총에 쓰이는 화약을 만들다.
의병가를 지어 일제 침략에 대한 분노를 확산시키다.
격문을 써서 일본군에 항거하다.
1910년 일본의 한국 침탈로 중국으로 망명.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참가하다. 1935년 요동에서 돌아가시다.

백윤기 만듬
이만진 글씨
강원도지사 이상룡 도움
한국여성 예림회 강원도지부 세움
1990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