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서두교회(3.1운동참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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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간촌리 197-1 익산서두교회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교회의 분립과 해외 선교, 역사 사적지 지정및 순교자 등재 초대 장로인 김성환 장로와 순교자 박병렬 장로의 신앙이 기초가 되어 익산서두교회에서 1936년 3월 20일 낭산면에 용기교회, 1946년 4월 27일 삼기면 용연리에 세광교회, 1953년 12월 5일 삼기면 서두리에 삼기교회, 1977년 5월 5일 황등면에 서부교회가 분립하였고, 또한 해외 선교에도 힘 써 1999년 12월 18일 몽골에 초이르 교회, 2000년 9월 22일 몽골에 에르덴 솜 교회, 2016년 9월 4일 필리핀 민다나오 서두헐 몬 교회를 설립하는 등 국내와 해외 복믐전파 자역에 큰 초석이 되어 왔다. 이러한 익산서두교회의 신앙적 헌신을 인정받아 2019년 12월 16일 대한예수장로회 합동 총회로 부터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 제16호 지정 및 (故) 박병렬장로 순교자 등재(총순 증104-0001호) 기념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2022년 8월 30일 세움
혹시 3.1운동참여교회 동판이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3.1운동 참여(100주년 기념) 익산서두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2001 한국교회대부흥 100주년 기념교회

한국 기독교 역사사적지 제16호 익산서두교회

순교자등재 총순증104-0001호
순교자 (故) 박병렬 장로
익산시 삼기면 간촌히 197-1 익산서두교회 항일독립운동기념 조형물을 찾았다.
항일독립운동과 익산서두교회
항일독립운동과 익산서두교회
익산서두교회의 설립과 마로덕 선교사 익산서두교회는 1898년 10월 10일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정정보가 전주 선교부에서 노래 전도를 하고 있던 최의덕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설립하게 되었다. 정정보는 심기면 서두리 546번지(현재 원서두 마을)에 기도처를 마련하고, 매일 같이 하나님께 가도하면서 당시 불교가 왕성했던 삼기면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온힘을 다하였다. 이 후 익산서두교회는 1922년 삼신학교를 설립하여 우리말과 민족교육과 신앙교육에 힘썼는데, 이 과정에서 마로덕 선교사의 노력과 공로가 컸다. 미로덕 선교사는 1902년 목포 선교부에서 전주선교부로 전임한 후, 1905년에 익산서두교회로 부임하였다. 일제강점기였던 이 시기에 마로덕 선교사는 여러 기도처와 교회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고 정정보를 도와 익산서두교회의 전도 사역에도 힘써 초대 당회장이 되었다.
김성환 장로의 신앙 활동 김성환 장로는 삼기면 서두리 576번지에서 부친 김인완과 모친 박성여 사이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할머니 정씨와 익산서두교회에 출석한 후, 마로덕 선교사의 지도로 믿음 생활에 힘써 1928년 영수로 세움을 받아 익산서두교회의 최초 직원이 되었다. 1933년 당회장 마로덕 선교사의 사회로 진행된 공동회의를 통하여 초대 장로가 되었으며, 이 후 익산서두교회와 지역교회의 복음 사역에 헌신을 다하였다. 4.3만세운동 참여와 익산서두교회 이리 지역의 3.1운동은 당시 익산군 오산면 남전교회의 집사인 문용기의 주도하에 익산서두교회 등 다수의 지역교회가 참여하였으며, 이 후 1919년 4월 3일 이리장날 만세운동에 익산서두교회의 박병렬 장로와 교인들이 참여하여 일제에 항거하였다.
신사참배 반대와 박병렬 장로의 순교 박병렬 장로는 마로덕 선교사의 신앙지도를 받으면서 익산서두교회 초대집사, 영수가 되었으며 김성환 장로와 함께 충성을 다하여 1935년 5월 7일 익산서두교회 2대 장로로 장립을 받게되었다. 장로로 시무하는 동안 신사참배 반대에 적극적으로 함여한 이유로 당시 삼기 주재소에 여러 번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은 후 이리경찰서에 이감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고문자국이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해 주시는 근거라는 고백으로 감사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해 1940년 9월 2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익산서두교회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