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346-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雙山義兵祠(쌍산의병사)
의병마을, 최초 모의장소, 무기 제작소 가는 길 ↑ 300m
화순 쌍산 항일의병 유적
국가지정 사적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 12번지 일원
이곳은 구한말 당시 일본군과 맞서 싸운 의병활동의 본거지이다. 이곳 일대를 쌍산 또는 쌍봉, 쌍치라 부르고 있는데, 1907년 음력 3월 9일, 양회일(梁會一), 임창모(林昌模), 안찬재(安賛在), 이백래(李白來), 임노복(林魯福), 임상영(林相永) 등이 주축이 되어 거병한 이후 1909년 9월까지 약 2년 반 동안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 시 잔존병력 모두가 순국하기까지 작전상의 거점이었다. 이들 의병들은 이곳 산속 중등마을 계당산 기슭에 의병성을 쌓고 막사를 지어 의병촌을 구축하는 한편 총, 칼 등 무기를 직접 제작하여 능주, 화순, 동복으로 출병하여 왜경과 전투를 벌이는 등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곳이다. 유적으로는 임노복이 거주하였고 의병장 양회일과 창의를 모의했던 건물과, 의병성, 막사터, 무기제작소, 유황굴 등이 남아있다.
국가지정 사적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 12번지 일원
이곳은 구한말 당시 일본군과 맞서 싸운 의병활동의 본거지이다. 이곳 일대를 쌍산 또는 쌍봉, 쌍치라 부르고 있는데, 1907년 음력 3월 9일, 양회일(梁會一), 임창모(林昌模), 안찬재(安賛在), 이백래(李白來), 임노복(林魯福), 임상영(林相永) 등이 주축이 되어 거병한 이후 1909년 9월까지 약 2년 반 동안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 시 잔존병력 모두가 순국하기까지 작전상의 거점이었다. 이들 의병들은 이곳 산속 중등마을 계당산 기슭에 의병성을 쌓고 막사를 지어 의병촌을 구축하는 한편 총, 칼 등 무기를 직접 제작하여 능주, 화순, 동복으로 출병하여 왜경과 전투를 벌이는 등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곳이다. 유적으로는 임노복이 거주하였고 의병장 양회일과 창의를 모의했던 건물과, 의병성, 막사터, 무기제작소, 유황굴 등이 남아있다.
화순 쌍산 항일의병 유적지 현황
① 의병마을 증동
: 의병장 양회일이 의병을 최초로 모의했던 마을로 당시 주민들이 직접 돌을 날라 막사터를 만들었던 의병마을이다.
② 대장간터
: 보성에서 철광석을 가져와 제련하여 직접 총 등 무기를 제작했던 곳이다.
③ 유황굴
: 탄약을 만들기 위해 유황을 채취했던 곳이다.
④ 막사터
: 의병들이 단체로 숙식하며 훈련했던 곳으로 이곳에서 능주, 화순, 동복 등으로 출병하였던 곳이다.
① 의병마을 증동
: 의병장 양회일이 의병을 최초로 모의했던 마을로 당시 주민들이 직접 돌을 날라 막사터를 만들었던 의병마을이다.
② 대장간터
: 보성에서 철광석을 가져와 제련하여 직접 총 등 무기를 제작했던 곳이다.
③ 유황굴
: 탄약을 만들기 위해 유황을 채취했던 곳이다.
④ 막사터
: 의병들이 단체로 숙식하며 훈련했던 곳으로 이곳에서 능주, 화순, 동복 등으로 출병하였던 곳이다.
화순 쌍산 항일의병 유적지 현황
① 의병마을 증동
: 의병장 양회일이 의병을 최초로 모의했던 마을로 당시 주민들이 직접 돌을 날라 막사터를 만들었던 의병마을이다.
② 대장간터
: 보성에서 철광석을 가져와 제련하여 직접 총 등 무기를 제작했던 곳이다.
③ 유황굴
: 탄약을 만들기 위해 유황을 채취했던 곳이다.
④ 막사터
: 의병들이 단체로 숙식하며 훈련했던 곳으로 이곳에서 능주, 화순, 동복 등으로 출병하였던 곳이다.
① 의병마을 증동
: 의병장 양회일이 의병을 최초로 모의했던 마을로 당시 주민들이 직접 돌을 날라 막사터를 만들었던 의병마을이다.
② 대장간터
: 보성에서 철광석을 가져와 제련하여 직접 총 등 무기를 제작했던 곳이다.
③ 유황굴
: 탄약을 만들기 위해 유황을 채취했던 곳이다.
④ 막사터
: 의병들이 단체로 숙식하며 훈련했던 곳으로 이곳에서 능주, 화순, 동복 등으로 출병하였던 곳이다.
敬慕門(경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