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 79-10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이은상 호 노산
1903~1982 경남 마산
마산 노산동 출신으로 교육가 이승규 선생의 차남이다. 1918년 부친이 관계한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 창신학교 시절 안확의 민족주의와 국학에 대한 연구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일제하에 낭만적 민족주의자로서 전통 시조를 계승하여 많은 시조를 창작, 기행문 등을 통해 조선의 자연을 노래, 우리말을 지키려 노력하였으나 3.15의거를 폄훼하는 등 친독재 전력이 있다.
1918. 마산 창신학교 졸업
1923. 연희전문학교 문과 수학
1925.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부 청강
1932 〈동아일보〉 기자 지냄
1945. 〈효남신문〉 창간
1955. 이충무공 기념사업회장 지냄
1964. 예술원상 수상
1970.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1970. ‘노산문학상’ 제정
1982. 사망, 금관문화훈장 추서, 국립묘지 안장
1903~1982 경남 마산
마산 노산동 출신으로 교육가 이승규 선생의 차남이다. 1918년 부친이 관계한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 창신학교 시절 안확의 민족주의와 국학에 대한 연구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일제하에 낭만적 민족주의자로서 전통 시조를 계승하여 많은 시조를 창작, 기행문 등을 통해 조선의 자연을 노래, 우리말을 지키려 노력하였으나 3.15의거를 폄훼하는 등 친독재 전력이 있다.
1918. 마산 창신학교 졸업
1923. 연희전문학교 문과 수학
1925.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부 청강
1932 〈동아일보〉 기자 지냄
1945. 〈효남신문〉 창간
1955. 이충무공 기념사업회장 지냄
1964. 예술원상 수상
1970.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1970. ‘노산문학상’ 제정
1982. 사망, 금관문화훈장 추서, 국립묘지 안장
쌈지공원 애국지사 안내판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 79-10에 위치하지만, 매우 넓은 지역이므로 찾기가 쉽지 않다. 본 사진 속 안내판은 상남동 140-11 노산동민원센터 근처에 있는 것으로, 이 안내판을 참고하여 찾아가야 한다.
본 안내판 속 좌측의 '옛 라디에이터 공장' 표시 옆에 있는 '쌈지공원'에 애국지사 안내판이 위치한다.
안내판에서 가리키던 '옛 라디에이터 공장' 앞의 '쌈지공원'이다. 여기에 애국지사 안내판이 있다.
안확 호 자산
1886 ~ 1946 서울
항일기의 국학자, 훈민정음의 악리(樂利) 기원설 제시 민족문화의 장점 발견이 곧 독립의 길이라는 신념으로 국학연구에 몰두했고, 고구려 문학/시조/향가/미술사 등에 관한 연구활동을 펼쳤다.
1902. 경성관립중학교 입학
1904. 국학연구 시작
1910, 마산창신학교 근무
1914. 창신학교 교가 작곡
1916. 조선국권회복단 마신지부장 맡음
1917. 〈조선문법〉을 펴냄
1919. 기미만세의거(3.1운동때) 마산시위 주동
1929. 훈민정음 악리기원설 제기, 가시(歌詩) 갈래 설정
1934. 진단학회찬조위원, 창씨 개명 거부
1926. 급환으로 사망
1886 ~ 1946 서울
항일기의 국학자, 훈민정음의 악리(樂利) 기원설 제시 민족문화의 장점 발견이 곧 독립의 길이라는 신념으로 국학연구에 몰두했고, 고구려 문학/시조/향가/미술사 등에 관한 연구활동을 펼쳤다.
1902. 경성관립중학교 입학
1904. 국학연구 시작
1910, 마산창신학교 근무
1914. 창신학교 교가 작곡
1916. 조선국권회복단 마신지부장 맡음
1917. 〈조선문법〉을 펴냄
1919. 기미만세의거(3.1운동때) 마산시위 주동
1929. 훈민정음 악리기원설 제기, 가시(歌詩) 갈래 설정
1934. 진단학회찬조위원, 창씨 개명 거부
1926. 급환으로 사망
이윤재 호 환산
1883~1943 김해
우리는 꼭 바라고 나아갈 희망 한 가지가 있다. 그를 여기에서 기다랗게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를 리 없다. 이 희망만은 어느때 까지든지 꼭 이루고야 말리라는 것까지도 잘 안다. 우리는 이 희망을 이루면 잘 살고, 이루지 못하면 잘살지 못할 것까지도 안다. (중략) 그리하여 너니 나니 가리지 말고 오직 한 깃발 아래 모여서 저기 보이는 한 목표를 향하여 서로 손목 잡고 나아가자. 이것이 신년에 정할 조선 민족의 만전 지계라 부르짖는다.
- 1927년 원단에 선생이 신년의 희망을 밝힌 글 중에서(「동광」 제9호, 1927.1)
1914. 창신/의신여학교 재직 창신학교 교가 작사
1919. 기미만세의거 참가, 옥고 겪음
1932.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 편집과 발행
1934. 한글맞춤법통일안 선포, 보급운동에 힘씀
1940.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완성
1943. 12월 8일 일제강점기 수감 생활 중 사망
1962.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1883~1943 김해
우리는 꼭 바라고 나아갈 희망 한 가지가 있다. 그를 여기에서 기다랗게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를 리 없다. 이 희망만은 어느때 까지든지 꼭 이루고야 말리라는 것까지도 잘 안다. 우리는 이 희망을 이루면 잘 살고, 이루지 못하면 잘살지 못할 것까지도 안다. (중략) 그리하여 너니 나니 가리지 말고 오직 한 깃발 아래 모여서 저기 보이는 한 목표를 향하여 서로 손목 잡고 나아가자. 이것이 신년에 정할 조선 민족의 만전 지계라 부르짖는다.
- 1927년 원단에 선생이 신년의 희망을 밝힌 글 중에서(「동광」 제9호, 1927.1)
1914. 창신/의신여학교 재직 창신학교 교가 작사
1919. 기미만세의거 참가, 옥고 겪음
1932.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 편집과 발행
1934. 한글맞춤법통일안 선포, 보급운동에 힘씀
1940.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완성
1943. 12월 8일 일제강점기 수감 생활 중 사망
1962.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김윤경 호 한결
894~1969 경기도
평생 한글연구와 교육사업을 통해 나라사랑의 길을 실천하였고, 주시경 선생의 인격과 학문에 깊은 감화를 받아 외솔 최현배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민족 정신 선각의 길을 걸었으며, 그의 교육사상은 우리 민족의 한글, 민족의 역사, 조선 여정의 정신을 교육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1913.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 교사
1922. 기미만세의거(3.1운동) 참가, 조선어연구회를 조직
1948. 『나라말본』과 『중등말본』 편찬
1952. 문교부 사상지도원 전문위원 등 선임
1955. 연세대 명예 문학박사 학위
1963. 문화훈장 대한민국장 수상
1969. 사망
894~1969 경기도
평생 한글연구와 교육사업을 통해 나라사랑의 길을 실천하였고, 주시경 선생의 인격과 학문에 깊은 감화를 받아 외솔 최현배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민족 정신 선각의 길을 걸었으며, 그의 교육사상은 우리 민족의 한글, 민족의 역사, 조선 여정의 정신을 교육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1913.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 교사
1922. 기미만세의거(3.1운동) 참가, 조선어연구회를 조직
1948. 『나라말본』과 『중등말본』 편찬
1952. 문교부 사상지도원 전문위원 등 선임
1955. 연세대 명예 문학박사 학위
1963. 문화훈장 대한민국장 수상
1969. 사망
이극로 호 고루
1897~1982 경남 의령
일제하 한글 운동의 1인자이자 조선어학회의 지도자 해방 후 남한의 한글정책의 기틀을 만들고, 1948년 북행하여 북한의 언어정책을 지도하였고, 결과적으로 남/북 모두의 한글정책의 기반을 다지고, 남/북 언어정책의 이질화를 막았다.
1910. 마산 창신학교 수학
1927. 독일 베를린 철학부 졸업/조선어사전 완성
1942.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투옥
1945. 조선어학회장, 건민회위원장을 지냄
1947. 민주독립당을 창당
1948. 북한 제1차 내각 소상을 지냄
1962. 조선문학연구소 소장
1966. 조국전선중앙위원회 의장 지냄
1970.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1982. 사망
1897~1982 경남 의령
일제하 한글 운동의 1인자이자 조선어학회의 지도자 해방 후 남한의 한글정책의 기틀을 만들고, 1948년 북행하여 북한의 언어정책을 지도하였고, 결과적으로 남/북 모두의 한글정책의 기반을 다지고, 남/북 언어정책의 이질화를 막았다.
1910. 마산 창신학교 수학
1927. 독일 베를린 철학부 졸업/조선어사전 완성
1942.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투옥
1945. 조선어학회장, 건민회위원장을 지냄
1947. 민주독립당을 창당
1948. 북한 제1차 내각 소상을 지냄
1962. 조선문학연구소 소장
1966. 조국전선중앙위원회 의장 지냄
1970.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1982. 사망
이승규 호 남하
1860~1922 경남 마산
시국 강연회를 통해 나라 사랑과 역사의식을 고취시켰고, 마산지역 독립운동에 앞장선 일제강점기 교육자이며 민족운동가이다.
1906. 마산 이주하여 손안로 선교사와 창신학교의 전신인 독서숙 설립
1908. 창신학교 부교장 맡음,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마산 최초 양식건물 상남동 새 교사 건립
1913. 의신여학교 설립, 창신학교 유지회 조직
1914. 시국강연회 개최
1919 대한독립만세운동 참가
1922. 사망
1860~1922 경남 마산
시국 강연회를 통해 나라 사랑과 역사의식을 고취시켰고, 마산지역 독립운동에 앞장선 일제강점기 교육자이며 민족운동가이다.
1906. 마산 이주하여 손안로 선교사와 창신학교의 전신인 독서숙 설립
1908. 창신학교 부교장 맡음,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마산 최초 양식건물 상남동 새 교사 건립
1913. 의신여학교 설립, 창신학교 유지회 조직
1914. 시국강연회 개최
1919 대한독립만세운동 참가
1922.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