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문산리 산 6-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이신 은재 신석구 선생
신석구(申錫九, 1875~1950)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미원면 금관리 출신이다. 호는 은재(殷哉)를 사용하였다. 1907년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가 되어 서울 등지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1919년 2월 중순경, 서울 수표교교회 목사로 재임 중 3.1운동의 계획을 전해 듣고 기독교측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하였다. 2월 28일 손병희의 집에서 열린 민족대표의 최종 모임에 참석하였고, 3월 1일 독립선언서에 참가한 뒤 일제에 피체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종교 활동과 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며, 광복 후 북한에서 공산당에 항거하다가 희생당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미원면 금관리 출신이다. 호는 은재(殷哉)를 사용하였다. 1907년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가 되어 서울 등지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1919년 2월 중순경, 서울 수표교교회 목사로 재임 중 3.1운동의 계획을 전해 듣고 기독교측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하였다. 2월 28일 손병희의 집에서 열린 민족대표의 최종 모임에 참석하였고, 3월 1일 독립선언서에 참가한 뒤 일제에 피체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종교 활동과 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며, 광복 후 북한에서 공산당에 항거하다가 희생당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