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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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 269
탐방로그
조용하/조용한 형제의 묘소를 찾기 위해 경기 양주시 남면 황방리 269에 왔다. 조소앙 선생의 형제들 중 조용하, 조용주, 조용한 세 분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으나, 조용주 선생께서는 중국에서 돌아가셨고, 한국에는 묘소가 없는 상태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장손 정래는 가족들과 뜻을 모아 영전에 비를 세우다. 비문은 영제 덕제가 짓고 방제 글을 쓰다.
1996년 8월 11일 건립
장남 영제, 자부 한필정, 손자 정래, 손자 범래, 손녀 미애
차남 덕제, 자부 송봉순, 손자 성래, 손자 경래, 손녀 미영
장녀 영○, 서 김대선, 손자 인래, 손녀 길래
조용한 선생의 묘는 조소앙 선생의 가묘 뒤쪽 능선에 있었다.
孺人 仁同張氏 養善 之墓(유인 인동장씨 양선 지묘)
咸安趙公 鏞漢 之墓 孺人 海州吳氏 祔左
(함안조공 용한 지묘 유인 해주오씨 부좌)
공의 본관은 함안이요 호는 운파로서 조선왕조때 생육신의 일원이신 어계 조려의 16대손인 정규 부친과 반남박씨 필양 모친의 6남 1녀 중 4남으로 1894년 10월 3일 경기도 연천군 남면 황방리에서 출생하시다. 공은 위로 용하 소앙 용주 형과 아래로 용진과 누이동생 용제 끝으로 시원 동생을 두시였고 공의 소년기에는 국내로는 독립협회의 해산 국모의 시해사건 등 일제의 탄압정책이 날로 극심하여 지고 국외에서는 일로청 등의 열강에 시달려 날로
국운이 쇠퇴하여 가고 급기야는 로일전쟁 발발 을사보호조약 강제체결을 하는 등 일본의 잔악상이 극에 달하는 격동의 세월을 지냈으며 큰형의 귀국과 국제정세를 구전심수한 공은 격분하여 형들을 따라 항일투쟁에 동참 임정의 활동 자금조달을 위해 경성 영동의 김홍제 공과 경기 진위군 오인영 공과 활동 중 1920년 3월 2일 일경에게 피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시고 출감 재차 상해로 망명 형제분들과 합류 영국 버스회사에 위장 취직하고 일제의 정보를 수집 임정에 제보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1933년 6월 일시 귀국을 목적으로 상해 일본 영사관에 가셨다가 영영 실종되어 오늘에 이르럿는바 참으로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조국의 광복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며 영민하셨으리라. 1990년 광복절 정부는 공의 조국 광복에 이바지한 공로를 높이 찬양하여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 오재순은 1900년 11월 29일 참봉 오기선 공의 장녀로 경기 시흥군 동면에서 출생하시고 1917년 1월 용한공과 결혼 슬하에 2남 1녀를 두시였다. 부군 생존시에는 이국 망명지에서 젊으실 때 부군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으셨고 홀로 되신 후 3남매를 기르시고 가르쳐 성가시키는데 평생 갖은 고초를 겪으시고 1983년 9월 2일 차남 덕제 집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