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만세운동 유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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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북면 기사문리 188-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만세고개의 유래
양양의 기미만세운동은 1919년 4월 4일 양양의 장날부터 결행 남녀 노소, 종파신분의 구별없이 일심동체가 되어 연일 요원의 불길처럼 각 면으로 더욱 확산되었다.
동년 4월 9일 현북면에서도 궐기대회가 끝난 후 양양읍의 장 마당에 들어가서 그곳 군중과 장꾼들이 합세하여 만세운동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북면사무소 일부 관리들의 만류로 옥신각신하다가 그 계획을 변경하여 기사문리 주재소를 공격키로 하고 약 천명의 군중이 관고개(關峴) 길을 따라 넘어 선두는 이미 기사문리 주재소 앞에서 왜경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천지가 진동하는 만세를 연호하고 있었다. 이때 언덕 밑 계곡 숲속에서 미리 잠복하고 있던 일제 수비대와 경찰이 무차별 발포하여 현장에서 9명이 피살되고 20여명이 중경상을 당하였으니 그 참상은 천인이 공노할 만행이었다.
당시 이 고개는 "관고개"로 이름하여 일제시대까지 불러오다가 8.15 광복 후부터 이심전심 자연스럽게 "만세고개"란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명칭은 기미만세운동때 순국열사는 물론 당시 양양군민들의 희생적인 독립운동에서 발현된 이 고장의 고귀한 정신적 지주이며 실체이다.
새 천년 21세기 새벽을 여는 그 이름도 거룩한 "만세고개"여 영원하라!
2000년 3월 1일 글 양양문화원장 고경재
기미만세운동 유적비
1919년 4월 4일부터 발발한 양양의 만세운동은 함홍기, 권병연, 김학구 의사 등 3명이 경찰서 현장에서 왜경의 총칼에 피살된 후 연일 각 면으로 확산되었다.
동년 동월 9일 현북면에서도 궐기 대회를 마치고 양양으로 들어가 합세할 계획이었으나 지체한 시간 관계로 기사문리 주재소를 공격하기로 당초 계획을 변경하여 "관고개"를 넘어 주재소 앞에 이르러 만세를 연호하다가 미리 잠복하고 있던 일제 수비대와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현장에서 9명이 피살되고 11명이 중상을 당하였다.
[ 피살자 ] 현북면 하광정리 - 전원거, 중광정리 - 임병익, 명지리 - 홍필삼, 명지리 - 김석희, 어성전리 - 고대선, 어성전리 - 황응상, 미곡리 - 문종상
도천면 동초리 - 진원팔, 동초리 - 이학봉
[ 부상자 ] 현북면 하광정리 - 이봉우, 하광정리 - 김응옥, 상광정리 - 오세관, 상광정리 - 오문환, 상광정리 - 오세풍, 상광정리 - 황중칠, 어성전리 - 함병원, 어성전리 - 강춘실, 어성전리 - 정홍엽, 어성전리 - 김봉구, 미곡리 - 홍금석
우리는 이러한 일제의 잔악 무도한 만행을 잊지 않고 그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만세공원"을 조성하고 상징조형물을 설치하여 후손 만대에 길이 받들어 전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운다.
2000년 3월 1일 글 양양문화원장 고경재, 양양군수 오인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