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산16-1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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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서원을 지나 화봉산 정상 근처로 올라가면 안내문을 따라 병풍바위를 찾을 수 있다. 병풍바위에 새겨진 음각문과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천숙(天淑) 일심암(一心岩)
(2) 평양화표(平陽華表) - 평양은 요의 도읍지이고 화표는 요가 위정자에 대하여 민원을 표시하도록 길가에 세웠던 표목의 명칭이다. 여기에서 평양은 포천을 화표는 표지를 뜻한다.
(3) 대명천지 영력일월 조요학공 경승백사 계사춘 최익현위 유기일서(大明天地 永曆日月 祖堯學孔 敬勝百邪 癸巳春崔益鉉爲柳基一書) - 요와 순의 도를 이어받아 서술하여 밝히고 공자의 학문과 도를 배우노니 공격은 모든 사악을 이기노라. 계사년(1893년 고종 30) 봄에 최익현이 유기일을 위하여 쓰다.
(4) 이승응 이유선 솔 이규용 나유영 안항선 조성옥 위각솔표석이십육자 유기일지(李承膺 李裕譱 率 李圭容 羅有英 安恒善 趙性玉 爲刻率表石二十六字 柳基一志) - 이승응, 이유선이 이규용, 나유영, 안항선, 조성옥을 인솔하고 화표석에 26자를 새겼고 유기일이 기록하다라는 암각문.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평양화표(平陽華表)
- 평양은 요의 도읍지이고 화표는 요가 위정자에 대하여 민원을 표시하도록 길가에 세웠던 표목의 명칭이다. 여기에서 평양은 포천을 화표는 표지를 뜻한다.
- 평양은 요의 도읍지이고 화표는 요가 위정자에 대하여 민원을 표시하도록 길가에 세웠던 표목의 명칭이다. 여기에서 평양은 포천을 화표는 표지를 뜻한다.
천숙(天淑) 일심암(一心岩)
華峰山(화봉산)
평탄한 평야에 부채를 펴서 세운 듯한 형상의 화봉산(해발 182m)은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있으며, 큰 산은 아니지만 예로부터 영산이라고 하였으며, 꽃뫼(花山)라고 일려 내려오기도 한다. 이 산 동향은 수원산과 불정산이 있고 남향으로는 죽엽산이 있다. 서쪽을 바로보면 해룡산이 있고 북쪽으로 왕방산이 있다. 이 산 뒷편으로 청성산(반원산)과 서쪽으로 태봉산이 있어 삼봉이 마치 3형제를 맺은 것처럼 포천시 평야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다. 이 산 정상에는 동서북 3면이 높이 6자 넓이 6자 길이 12자 정도의 장방형 암벽으로 둘려 쌓여있고 바닥도 반석이 깔려 있으며, 남면만이 열려있어 마치 병풍을 둘러 친 듯 하다하여 병풍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이 병풍암에는 한말 명현 최익현 유기일 선생 등 선비들이 자주 찾던 흔적으로 유필문적이 음각되어 있다. 또한 이 산 남쪽 기슭에는 선조 조에 명상인 백사 이항복 선생을 배향한 화산서원이 있으며, 서쪽에는 성불암이 있다.
근래에는 아침 등산 코스로도 아주 적합하여 이 곳을 찾는 인근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화봉산에 정취를 더욱 돋보여 주고 있다.
평탄한 평야에 부채를 펴서 세운 듯한 형상의 화봉산(해발 182m)은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있으며, 큰 산은 아니지만 예로부터 영산이라고 하였으며, 꽃뫼(花山)라고 일려 내려오기도 한다. 이 산 동향은 수원산과 불정산이 있고 남향으로는 죽엽산이 있다. 서쪽을 바로보면 해룡산이 있고 북쪽으로 왕방산이 있다. 이 산 뒷편으로 청성산(반원산)과 서쪽으로 태봉산이 있어 삼봉이 마치 3형제를 맺은 것처럼 포천시 평야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다. 이 산 정상에는 동서북 3면이 높이 6자 넓이 6자 길이 12자 정도의 장방형 암벽으로 둘려 쌓여있고 바닥도 반석이 깔려 있으며, 남면만이 열려있어 마치 병풍을 둘러 친 듯 하다하여 병풍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이 병풍암에는 한말 명현 최익현 유기일 선생 등 선비들이 자주 찾던 흔적으로 유필문적이 음각되어 있다. 또한 이 산 남쪽 기슭에는 선조 조에 명상인 백사 이항복 선생을 배향한 화산서원이 있으며, 서쪽에는 성불암이 있다.
근래에는 아침 등산 코스로도 아주 적합하여 이 곳을 찾는 인근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화봉산에 정취를 더욱 돋보여 주고 있다.
이야기가 있는 경기도 - 대학자들이 만나던 바위(병풍바위)
옛부터 영산(靈山)인 화봉산 중턱에 있는 이 병풍바위는 위정척사운동의 표상 면암 최익현과 이 고장의 대학자 유기일이 자주 만나던 바위다. 이 바위에는 유기일의 시와 최익현의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포천군 가채리에서 태어난 면암은 74세에 항일의병운동을 일으켜 일본 경비대에 수감되었는데, 신발 밑에 우리 흙을 집어넣어 일본 땅은 절대로 밟지 않겠다고 했으며, 일본이 주는 음식은 쌀 한 톨 먹지 않고 대마도에서 거룩한 죽음을 맞았다.
옛부터 영산(靈山)인 화봉산 중턱에 있는 이 병풍바위는 위정척사운동의 표상 면암 최익현과 이 고장의 대학자 유기일이 자주 만나던 바위다. 이 바위에는 유기일의 시와 최익현의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포천군 가채리에서 태어난 면암은 74세에 항일의병운동을 일으켜 일본 경비대에 수감되었는데, 신발 밑에 우리 흙을 집어넣어 일본 땅은 절대로 밟지 않겠다고 했으며, 일본이 주는 음식은 쌀 한 톨 먹지 않고 대마도에서 거룩한 죽음을 맞았다.
이승응 이유선 솔 이규용 나유영 안항선 조성옥 위각솔표석이십육자 유기일지(李承膺 李裕譱 率 李圭容 羅有英 安恒善 趙性玉 爲刻率表石二十六字 柳基一志) 이승응, 이유선이 이규용, 나유영, 안항선, 조성옥을 인솔하고 화표석에 26자를 새겼고 유기일이 기록하다라는 암각문.
大明天地 永曆日月 祖堯學孔 敬勝百邪 癸巳春 崔益鉉 爲 柳基一 書
(대명천지 영력일월 조요학공 경승백사 계사춘 최익현 위 유기일 서)
- 요와 순의 도를 이어받아 서술하여 밝히고 공자의 학문과 도를 배우노니 공격은 모든 사악을 이기노라. 계사년(1893년 고종 30) 봄에 최익현이 유기일을 위하여 쓰다.
(대명천지 영력일월 조요학공 경승백사 계사춘 최익현 위 유기일 서)
- 요와 순의 도를 이어받아 서술하여 밝히고 공자의 학문과 도를 배우노니 공격은 모든 사악을 이기노라. 계사년(1893년 고종 30) 봄에 최익현이 유기일을 위하여 쓰다.